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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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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온라인여행

코로나 시대 전세계의 거리감을 무너뜨리는 온라인 여행,
여행의 근본을 흔드는 새로운 여행을
등록 2020-09-26 01:15 수정 2020-10-06 23:03
에어부산은 착륙하지 않고 정해진 노선을 운항하는 ‘체험비행’ 상품을 선보였다. 연합뉴스

에어부산은 착륙하지 않고 정해진 노선을 운항하는 ‘체험비행’ 상품을 선보였다. 연합뉴스

새로운 일상이 요구되는 코로나 시대, 여행도 예외는 아니다. 비록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관광지를 마음껏 활보하지는 못하지만, 온라인으로도 다른 세계를 체험하는 여러 ‘비대면 여행’ 콘텐츠가 나오고 있다. 과거에도 여행 콘텐츠가 있었지만 섬세한 연출과 최신 영상 기술로 공감각적인 생생함을 더하거나,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여러 시공간을 향유하는 사람이 늘었다. 비대면 여행의 세계로 떠나보려 한다.

에어비앤비 온라인 체험 홈페이지

에어비앤비 온라인 체험 홈페이지

여행지를 뜯고, 맛보고, 즐기고

‘비대면 여행’의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과거 여행에 대한 ‘추체험’이다. 그간의 여행 사진과 영상을 꺼내 보며 추억하는 것은 물론, 3차원(3D) 지도인 ‘구글 어스’로 방문했던 여행지를 찾아가는 방법이 있다. 미국 뉴욕, 일본 도쿄 등 세계의 대표 도시들을 실제 거니는 듯한 시점으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유튜브 채널 ‘노마딕 앰비언스’(Normadic Ambience)가 인기다.

여행사들은 발 빠르게 이런 욕구를 겨냥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마이리얼트립, 해피칼리지 등 여행 플랫폼이 출시한 ‘가이드와 함께하는 랜선 투어’가 대표적이다. 실시간 스트리밍(재생)으로 가이드와 참여자가 서로 의사소통하며 여행하는 상품도 있다.

중국 유튜브 채널 타오바오는 ‘타오바오 라이브’를 통해 5세대(5G) 기술을 활용한 고품질 영상으로 티베트 달라이라마 궁전의 옥기, 자기, 용포 등 건축물의 세세한 표현을 카메라에 담는 방식의 콘텐츠를 개발했다. 현재까지 타오바오 라이브에 가입한 관광지는 칭다오 삼림 야생동물원 등 1천 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유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는 메인 홈페이지에 여행 특가 상품 대신 현지인에게 배우는 요리, 스리랑카 사파리 체험 등 관광을 넘어 각국의 생활방식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프랑스 관광청 홈페이지 메인

프랑스 관광청 홈페이지 메인

전세계를 ‘지금, 여기’로

여행지를 관광하기보다 세계의 ‘지금, 여기’를 날것으로 감상할 수 있는 ‘중계’ 콘텐츠도 인기다. 세계 곳곳의 주민이 자신들의 집 창밖 풍경을 공유하는 사이트 ‘윈도 스와프’(Window Swap)가 대표적이다. 다른 나라의 주민 입장이 되어 그 동네의 이국적인 풍경, 그곳 언어와 동물 소리 등 생활 소음까지 경험할 수 있는 점이 매력 포인트다.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를 비추는 유튜브 ‘어스캠’(Earthcam) 채널의 실시간 중계 영상도 있다. 타임스스퀘어를 고정 화면으로 송출하는 영상은 지루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항상 사람이 붐비는 장소로 나왔던 거리가 한산한 것만으로도 볼거리가 된다.

각국 관광청 누리집을 접속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360도로 펼쳐지는 프랑스 파리의 파노라믹뷰를 감상할 수 있는 프랑스 관광청의 랜선 투어가 그렇다. 핀란드 관광청은 핀란드 현지인에게서 행복 노하우를 배운다는 콘셉트의 ‘렌트 어 핀(Rent a Finn) 캠페인’을 진행했다. 국내에서도 ‘남산서울타워’와 ‘에버랜드 라이브’ 채널이 운영 중이다. 유튜브에서 ‘world live camera’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중계 콘텐츠가 수두룩해, 자기 취향에 맞게 골라 볼 수 있다.

유튜브 갈무리

유튜브 갈무리

여행의 설렘, 공항에서부터

‘무알코올 맥주’는 약 복용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마시지 못할 때 괜찮은 대안이다. 알코올을 섭취하지 않아도 실제 맥주 용기와 비슷한 디자인과 맛 등을 통해 ‘취한 기분’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행 분위기’에 초점을 맞춰 즐기는 콘텐츠도 있다.

공항 대기실의 웅성거림, 비행기 이착륙 소리 등을 듣는 ‘공항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자율감각쾌락반응’으로, 보통 일상 소음을 재현한 것), 공항 탑승 수속부터 이륙, 비행, 착륙 등의 과정을 체험하는 ‘공항 롤플레이’가 유명하다. 또 친구와 침대에 함께 엎드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여행 메이크업을 해주는 ‘여행 상황극 ASMR’도 나와 있다. 심지어 여권 내지부터 여권 케이스 등의 표면을 ‘태핑’하는(두드리는) ‘여권 ASMR’까지 등장했다. 이 정도면 여행을 구성하는 요소는 거의 다 불러들인 것 같다.

항공업계에서는 ‘목적지에 착륙하지 않는 목적’의 ‘체험 비행’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국내 항공사에선 에어부산이 처음 특정 지역에 착륙하지 않고 정해진 노선을 운항하는 체험 비행을 선보인다. 승객 처지에선 체험 비행으로 탑승 경험뿐 아니라 기내식과 기내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다. 기내 면세품도 살 수 있어 ‘여행 기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중국의 중화항공은 어린이가 승무원 출국 체험을 할 수 있는 비행 상품을 내놓았다.

항공사는 아니지만, 일본 가상현실(VR) 업체 ‘퍼스트 에어라인’도 VR로 ‘체험 비행’을 제공한다. 실제 기내를 본뜬 체험 부스에는 기내식, 기내 엔터테인먼트 등 서비스도 마련돼 있다. 목적지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VR 헤드셋을 쓰고 하와이 등의 관광지를 가상 여행하는 식이다.

집순이 브이로그 유튜브 검색 결과 화면

집순이 브이로그 유튜브 검색 결과 화면

데꾸테리어, 방구석 여행하기

우리가 머무는 집을 충분히 즐기는 ‘방구석 여행’도 비대면 여행 콘텐츠로 인기다. 부동산 동영상으로 남의 집을 구경하는 것은 ‘코로나 시국’에 다른 공간을 그리워하는 절실함이 어려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했을 때는 집에서 보내는 일에 전문가인 ‘집순이’들이 이전의 일상 브이로그 콘텐츠에 더해 ‘24시간 밀착 브이로그’ 콘텐츠를 앞다퉈 내놓았다. 다양한 취미와 요리로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400번을 저어야 완성된다는 달고나커피 만들기나 초상화 그리기, 자수, 춤추기 등 온라인 취미 수업도 연관 콘텐츠로 소개되며 자신만의 취미를 발견하는 이가 늘고 있다. 또 재택근무, 온라인 강의가 일반화하면서 실내 작업 공간을 편하게 조성하거나 ‘데꾸테리어’(데스크를 꾸며서 인테리어 효과를 내는 것)도 요즘 트렌드다.

유튜버 denis shiryaev 메인 페이지

유튜버 denis shiryaev 메인 페이지


시간 여행하기

공간뿐 아니라 시간을 여행하는 콘텐츠도 나왔다. 20세기 프랑스, 독일의 거리를 찍은 흑백 영상을 색채 복원 기술로 재현한 유튜버 데니스 시르예프의 콘텐츠는 원본 영상보다 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유튜브에 ‘인공지능 채색’으로 검색하면 우리나라 유튜버가 비슷한 콘셉트로 근대 도심을 복원한 영상도 감상할 수 있다.

이외에 ‘랜선 여행’을 주제로 한 노래(폴킴의 <집돌이>, 레인메이커의 <랜선 여행>), ‘여행 노래 모음’을 들으며 음악으로 여행을 감각하기도 한다. 하늘길이 막히니 다른 길이 열렸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만으로 이동하며 ‘여행 경로’를 다르게 체험하고 후기를 공유하는 콘텐츠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행의 뉴노멀 상상하기

온라인 여행은 랜선만 연결된다면 갈 수 있기에 저렴하고 친환경적인 면이 크다. 랜선 여행에서 나아가, 여행의 뉴노멀(새 표준)을 근본적으로 상상하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먼저 지금 코로나 시국이 무분별한 환경파괴로 이어진 사태라는 점에서 과거의 ‘저탄소 녹색관광, 생태관광’ 등 대안 관광 담론이 다시 떠오른다. 개인 차원에선 비행기 탑승 거부를 선언하는 유명인이 나타나고 있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배를 타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간 사례가 그렇다.

스웨덴에서는 비행기 여행의 부끄러움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을 뜻하는 ‘플뤼그스캄’(flygskam) 운동이 일기도 했다. 탄소배출량 감소를 위해 비행기 대신 기차 등의 교통수단을 장려하는 움직임이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국제항공 운송 부문의 탄소배출 동결을 목표로 하는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 이행을 결의하기도 했고, ‘항공환경세’ 도입을 검토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호텔업계에서도 재생에너지 발전, 친환경 제품을 쓰며 ‘에코 호텔’을 표방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젠더 관점으로 새로운 도시여행을 기획한 경우도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제작한 도시여행 가이드북 <2020 젠더, 도시를 만나다>(Gender+City Travel)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모색하는 여성과 공동체를 소개했다(문의 02-3156-6133).

재난이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듯이, 여행도 항상 평등하지 않았다. 우리는 머물 곳을 전전하는 노숙인을 두고 ‘여행’한다고 하지 않는다. 여행하려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정주의 공간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방구석 여행도 활동하기엔 비좁은 원룸이나 고시원에 사는 이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기존에도 이동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던 장애인이나 험지로 나 홀로 여행을 꿈꾸기 어려웠던 여성 등은 코로나 시국 이전의 여행이 그립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로 ‘예측 불가능성’을 꼽는다. ‘코로나 시대’라는 낯선 시공간에 도착한 지금, 다른 차원의 여행을 상상하고 꾸리는 일 역시 여정의 일부이지 않을까. 우리는 늘 그렇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도우리 작가 wrd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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