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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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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생물학] 후유증 생각않는 ‘완치자’라는 말

탈모, 미각·후각 상실, 브레인 포그 등 심각한 코로나19 후유증
‘완치자’는 후유증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적 시선 만들어
등록 2020-09-22 11:01 수정 2020-09-25 01:16
코로나19에 감염되기 전 알리사 밀라노의 모습(왼쪽)과 밀라노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최근 모습. 연합뉴스, 알리사 밀라노 트위터 동영상화면 갈무리

코로나19에 감염되기 전 알리사 밀라노의 모습(왼쪽)과 밀라노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최근 모습. 연합뉴스, 알리사 밀라노 트위터 동영상화면 갈무리

몇 년 전 여름, 대상포진에 걸렸습니다. 겪어본바 대상포진의 악독함에 대한 풍문은 과한 것도 헛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고통은 딱 불에 덴 상처를 사포로 문지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더 무서운 것은, 이 통증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대상포진을 앓은 일부 환자는 피부 병변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통증만 유령같이 남는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 남을 수 있습니다. 대상포진을 앓은 뒤 신경통이 심한 경우, 아예 해당 부위의 신경 감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끔찍한 만성 통증을 유발합니다. 그래서 대상포진 치료는 되도록 빨리 항바이러스 치료를 해서 후유증이 남는 걸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끔찍한 후유증 남기는 대상포진, 수두의 후유증

아이러니한 점은 이렇게 끔찍한 후유증을 남기는 대상포진 자체가 애초에 수두의 후유증이라는 것입니다. 수두는 주로 어린아이가 잘 걸리는 바이러스성 질환인데 열·근육통과 함께 전신에 붉은 발진이 돋습니다. 수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병이 나아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인체의 신경절에 길게는 수십 년씩 숨어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지는 틈을 타서 다시 비집고 올라와 대상포진을 일으킵니다. 즉, 수두와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동일해서 수두에 면역력이 없는 어린아이가 대상포진 환자와 접촉하면 수두에 걸리며, 수두 바이러스와 접촉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대상포진도 일으키지 않지요. 그러니 대상포진 뒤 신경통은 수두에서 대상포진을 거쳐 생기는 후유증의 후유증인 셈입니다.

후유증(後遺症)이란 “어떤 병을 앓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병적인 증상. 뇌중풍에서의 손발 마비, 뇌염에서의 정신적·신체적 장애 따위”라고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몸을 다치게 한 초기 원인이 사라지고 그로 인한 병증이 회복된 뒤에도, 때때로 그로 인한 다른 문제가 아주 오랫동안 남아서 고통을 주는 것이 후유증입니다. 후유증이 원래 질병보다 더 심각하게 다가오는 일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2020년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둘러싼 후유증 이야기가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8월26일 영국 일간지 <더 선>은 브리스틀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으로 치료받고 퇴원한 환자 중 다수가 발병 전에는 없었던 다양한 후유증을 호소한다는 기사를 실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기사에서는 탈모, 열감, 설사, 갈증, 흉통, 불면증, 환각, 발가락 이상(Covid-toe·발가락 주변 피부가 자주색으로 변하고 물집이 잡히는 현상), 오한, 방향감각 상실, 브레인 포그(Brain Fog·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멍한 현상), 호흡 곤란, 근육통, 빠른맥, 구토, 부정맥 등 무려 16가지나 되는 후유증을 열거했습니다. 이외에 핑크 아이(Pink Eye·결막이 붉게 충혈되는 현상), 관절 통증, 미각·후각 손실도 코로나19 후유증으로 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부분 조사가 일부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 수준의 연구였기에, 앞서 언급한 증상이 모두 코로나19 후유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몇몇 증상은 강력한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고열 없고 젊은 나이일수록

세계 각국 의료진의 보고를 통해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지목되는 것 중 대표적인 탈모 증상은, 미국의 아역 출신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짧은 영상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1분30초 정도 되는 짧은 동영상에서 밀라노는 자신이 코로나19를 앓은 뒤 탈모가 시작됐다면서, 실제 자기 머리를 빗어 한 움큼의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보여줘 화제가 되었지요. 미국 대학병원은 코로나19 감염자 중 4분의 1 정도가 탈모 증상을 호소했다는 설문 결과를 발표해 이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코로나19로 인한 탈모는 바이러스 자체가 모근을 공격해 영구적 탈모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열로 인한 스트레스와 인체의 위기 반응 결과로 나타난 일시적 현상으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만약 집에 불이 난다면 우리는 집 안의 모든 물을 끌어다가 불을 끄는 데 쓰고 샤워나 빨래는 뒤로 미루는 것처럼, 우리 몸의 가용 자원은 무한정하지 않기에 우리 몸은 종종 질병과 싸울 때 일시적으로 머리카락이나 손발톱을 자라게 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다른 데 돌려쓰곤 합니다. 이전에도 심한 열병을 앓은 뒤 그 후유증으로 머리카락이 빠지는 일이 드물지 않았기에, 코로나19 역시 심한 고열을 동반하므로 열과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 후유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주목할 만한 후유증은 후각·미각 상실입니다. 후각·미각 상실은 코로나19 후유증이라기보다 초기 증상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요즘 학생들이 아침에 등교하기 전 의무적으로 체크해야 하는 학생건강 자가진단 항목에도 코로나19 증상으로 후각·미각 소실을 꼽습니다. 특히 코로나19 감염의 대표 증상인 고열이 없는 경우,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의 환자일수록 후각과 미각을 잃는 비율이 높았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비강(콧구멍에서 목젖 윗부분에 이르는 빈 곳)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오는 1차 통로인데, 콧속에 들어왔다고 바이러스가 바로 인체 내부로 유입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이 잠긴 집에 꼭 들어가야 하는데 열쇠가 없다고 벽을 부술 수는 없습니다. 설사 그게 가능하더라도, 벽을 부수기보다 집 안 어딘가에 잠기지 않은 창문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는 ACE-2라는 수용체가 바로 이 열린 창문 역할을 합니다. ACE-2 수용체는 비강 점막에 다른 부위보다 월등히 많이 분포했기에 이곳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가 대량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주변 조직에 염증 반응을 일으켜 후각 신경이 기능하지 못하고, 비강과 연결된 구강에도 영향을 미쳐 미각 신경까지 기능을 못합니다. (그래서 마스크를 쓸 때는 입뿐만 아니고 코도 항상 가려야 합니다!)

보통 감기나 독감에 걸려도 냄새를 맡는 능력이 떨어지는데 이 경우 코막힘 때문에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생겨나는 부수적인 현상이라면, 코로나19의 경우 코막힘과 콧물 없이 그저 후각 수용체가 마비돼 일어나는 직접적인 증상입니다. 천만다행히도 연구진의 조사 결과, ACE-2 수용체는 비강 내 점막에만 있을 뿐 후각 신경이나 미각 신경에는 존재하지 않아 코로나19로 인한 후각·미각 상실도 일시적인 증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육부에서 제공하는 학생용 자가진단 항목. 코로나19 의심 증상으로 후각·미각 소실이 있다.

교육부에서 제공하는 학생용 자가진단 항목. 코로나19 의심 증상으로 후각·미각 소실이 있다.


급성 호흡기 질환이라기보다 급성 염증성 질환

코로나19의 또 다른 후유증은 브레인 포그 현상입니다. 브레인 포그란 말 그대로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멍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으로, 기억력과 집중력이 저하되고 명료하게 생각할 수 없는 증상을 말합니다. 코로나19 회복자들은 몸이 나았음에도 이전에 하던 일에 다시 집중할 수 없어서 곤란을 겪거나, 이로 인한 우울과 만성적인 피로에 지친다고 호소합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원인에 대해서는 최근 코로나19에 대한 관점을 재정의해야 한다는 주장과 맞물려 함께 제시되고 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코먼웰스대학의 마수드 만질리 교수는 메타분석(동일 주제 연구 결과를 종합 분석) 연구를 통해, 코로나19는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급성 호흡기 질환이라기보다는 전신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급성 염증성 질환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환자에게서 후각·미각 상실, 브레인 포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쉽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1차로 외부에 노출된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 바이러스가 비강과 구강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켜 후각·미각 상실을 일으킨 뒤 몸속으로 침투, 폐를 자극해 폐렴을 일으키고, 신체에서 발생한 전방위적 염증 반응은 중추신경계에 있는 혈뇌장벽을 무너뜨려 뇌까지 침투하고, 뇌에서도 염증 반응을 일으켜 그 후유증으로 인지기능과 주의력, 기억력이 저하되는 브레인 포그 현상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질병관리청은 날마다 브리핑을 통해 확진자와 사망자 그리고 완치자 수를 발표합니다. 2020년 9월15일 발표 기준, 우리나라의 총확진자 수는 전날보다 106명 늘어난 2만2391명이며, 사망자는 367명, 완치자는 1만8878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퍼지는 실제 완치자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이들이 과연 ‘완치’됐는지 의문이 듭니다. 여기서 완치자란 유전자 검사 결과, 더 이상 체내에 코로나19 바이러스 조각이 발견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 경우에도 실제 몸 상태가 이전과 동일하게 돌아와 모든 치료를 완전히 ‘끝낼’ 만큼 회복됐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완치자’에는 완벽히 나아서 건강을 되찾았다는 뜻이 있어 오히려 사회적 차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완치자란 단어는 코로나19로 발생한, 다양한 (때로 질병만큼 견디기 괴로운) 후유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적 시선을 만들 가능성이 크니까요.

인류 전체에 사회·정신적 후유증

인간의 몸은 부품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기계가 아니며, 각각의 세포와 조직이 순환계와 호흡계와 신경계와 내분비계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돼 통합적으로 조직된 복합체입니다. 그렇기에 이 중 하나만 이상이 생겨도 그 여파는 다른 조직과 시스템에 영향을 미칩니다. 병변을 원래대로 회복해놓더라도, 이미 시스템 전체로 퍼져나간 교란 신호를 완전히 수습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거죠.

이제 코로나19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전세계적인 집단 증상이 돼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원래 삶을 되찾기 위해서는 확진자 개개인의 후유증뿐 아니라 사회 전체, 나아가 인류 전체의 사회적·정신적 후유증까지 세심하게 살펴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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