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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역사 속 논쟁을 꿰는 <대논쟁 한국사>

등록 2020-09-19 04:59 수정 2020-09-21 01:28

역사에서 시대 구분의 통상적 기준은 왕조(국가)의 명멸, 또는 사상·문명의 대전환이다. 역사 저술가 김종성은 구체적 기록이 남아 있는 고조선 말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2100여 년의 우리 역사를 ‘논쟁’이라는 새 기준으로 들여다본다. <대논쟁 한국사>(위즈덤하우스 펴냄)에서다. ‘고조선부터 해방 정국까지, 한국사를 들썩인 아홉 번의 대논쟁’(부제)을 추려 그 배경과 경과, 영향까지 고갱이를 정리했다.

중국(한)에 맞선 위만조선의 항전론-화친론, 신라의 국교 채택과 권력관계를 다룬 신선교-불교, 고구려의 서진론 대 남진론, 과거제를 둘러싼 고려 왕실과 호족의 갈등, 우주 만물의 근원을 따진 조선 사림파의 이기론(理氣論), 해방 정국의 찬탁-반탁 등 시대를 반영한 치열한 논쟁은 단순히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지배집단과 국가의 운명이 걸린 문제였다.

지은이는 “대논쟁은 그 시대의 내부 문제나 모순을 있는 그대로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내부 모순을 은폐하기도 하는’ 전쟁과 다른 점에 주목했다. 각 사회의 주도 세력이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과 논리로 맞붙은 대논쟁은 해당 사회의 구조와 모순, 변화 방향 등을 여실히 드러내며 당대의 사회변동을 이해하는 새로운 통찰력을 준다는 것이다. 장구한 역사 속, 서로 다른 논쟁을 한 흐름으로 이어가는 서술이 돋보인다.

기원전 108년 중국(한)에 멸망하기 직전, 위만조선에선 중국(연) 이주민 출신 왕실과 토착민 귀족 세력이 각각 항전론과 화친론으로 맞섰다. 논쟁은 토착 세력의 승리로 끝났다. 한나라는 조선에 직할령 한사군을 설치하며 형식적 지배권을 얻었지만, 정작 이 논쟁의 최대 수혜자는 기득권을 이어받은 토착 세력이었다.

수양제의 대군을 격파한 고구려 명장 을지문덕이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진 것도 국운을 건 대논쟁과 관련 있다.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팽창하자, 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은 장수왕이 대륙을 향하던 기존 서진 정책을 접고 남진 정책을 추진한 것.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긴 것도 이때다. 무신 세력은 서진론을 굽히지 않았고, 연개소문은 쿠데타로 실권을 쥔 뒤 중국에 맞섰다. 그러나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됐고, 좁은 한반도에서 백제와 신라까지 삼국이 각축하는 시대가 열리고 말았다.

고려 4대 왕 광종이 지방의 강력한 호족 세력을 견제하려 논란을 뚫고 과거제를 전격 시행했는데, 이는 한민족의 엘리트 계급이 무사에서 문관으로 교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조선에서 신진사대부로 성장한 사림 유학자들이 벌인 이기론 논쟁도 ‘백성’(氣)과 ‘국가 질서’(理) 중 어느 것이 앞서는지에 대한 이견을 바탕으로 치열한 권력 다툼의 전장이 됐다. 구한말 격변의 시대, 선비들은 ‘조선은 이(理), 서양은 기(氣)’로 본 위정척사파와 ‘동도서기론’을 내세운 실용적 개화파로 나뉘어 맞서기도 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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