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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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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이 사랑한 작가 권여선② ‘내면의 우물에서 길어올린 밥’

등록 2020-08-14 11:13 수정 2020-08-25 07:02
월간 <채널예스> 이혜련 사진가 제공

월간 <채널예스> 이혜련 사진가 제공



*21이 사랑하는 작가 권여선① “늙은 주정뱅이의 비참을 기다리라”에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101.html

권여선은 <토우의 집>에선 대법원 확정판결 18시간 만에 주범으로 몰린 8명을 사형시킨 국가폭력의 상흔이 당사자에게 머물지 않고 아이들과 그 가족한테 그대로 이어지는 것임을 고통스럽게 고발한다. 이 작품을 쓴 배경에 대해 그는 첫 산문집 <오늘 뭐 먹지?> ‘김밥’ 편에서 이렇게 설명한 적 있다.

내가 서른 살이나 서른한 살쯤이었을 때,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나 부쩍 친해진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그 친구의 아버지는 정치범으로 잡혀가 모진 고문을 겪다가 결국 사형을 당했다고 했다. 그 사건은 나도 대학 때 들어 알고 있던 사건으로, 독재 시절의 사법살인으로 유명한 사건이었다.

이 두 작품은 작가 권여선의 글이 드넓은 해방의 평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산봉우리 같은 것이었다. 인혁당 사건에 앞서 5·18은 그가 대학 초년병 시절 광주 학살 동영상을 보며 느낀 충격이 마음의 부채가 됐다.

<레가토>와 <토우의 집> 이후 작품의 소재가 다양해진 듯합니다.

“<레가토>와 <토우의 집>은 제가 소설가가 되면 꼭 써야겠다고 다짐한 소설들입니다. 그 소설들을 쓰고 나자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었고, 이후 소설을 쓸 때 특별한 의무감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그저 현실 속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쓰자 생각했고,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인물들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권여선은 <토우의 집>에서 대를 이어 전해지는 국가폭력 문제를 지적한 것의 연장선상에서 국가가 더 적극적인 손해배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번 인터뷰에서 말했다.

국가폭력 문제를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해소할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요.

“국가폭력의 대부분은 희생자를 빨갱이·공산주의자로 모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권력기관에서 모진 고문과 처벌을 받는 동시에 사회에서도 본인의 가족과 친지 전체가 고립되고 사적인 공격에 노출되는 이중의 폭력을 당합니다. 따라서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과 친지 등이 입은 광범위한 피해에 대해서도 사죄와 배상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술과 음식으로 세상을 묘사하며

작가 권여선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우물에서 길어올린 물로 어떻게 맛있는 밥과 반찬을 만드는지를 감성적으로 보여주는 서사 능력과 절묘한 묘사일 것이다. 그의 소설이 맛있는 이유다. 먹고 마신다는 것은, 누구에겐 그저 하루하루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일 수도 있지만 권여선은 술과 음식의 맛과 그것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소설의 분위기를 이어가고 상황을 설명하며 인물의 성격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인혁당 사건을 다룬 장편소설 <토우의 집>에선 인혁당 관련자인 덕규의 부인 ‘새댁’이 만드는 계란볶음밥이 가족 흥망성쇠의 은유로 쓰인다.

새댁은 프라이팬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놋숟갈을 힘차게 휘둘렀다.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어야 맛이 골고루 나거든.” 밑바닥에 눌었던 갈색 계란물이 올라오고 새 계란물이 밥알 사이로 퍼져 병아리색 계란볶음밥이 되었다. 새댁은 구운 김을 부숴 넣고 깨를 뿌리고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이처럼 입맛 당기던 계란볶음밥은 남편 덕규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그의 가족이 파탄 나기 시작하는 즈음에 다시 등장한다. 새댁의 정신이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할 즈음 집주인 순분이 새댁네 둘째딸 원이한테 달걀볶음밥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어린 원은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 어머니는 이렇게 안 하신단 말이에요! (…) 우리 어머니는 처음부터 이렇게 통째로 놓고 먹는단 말이에요. 옆에 깍두기도 놓고, 보리차도 놓고, 처음부터 그렇게 먹는단 말이에요! (…) 또, 또,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고, 그렇게 다 있는 거란 말이에요!

이를테면 계란볶음밥은 이들 가족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다.

마침내 다다른 “한국 주류문학의 위엄”

<토우의 집> 출간으로 마음의 무거운 빚을 내려놓은 작가가 2년 뒤 2016년 <안녕 주정뱅이>를 내놓은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술과 안주에 대한 작가의 탐닉 본색이 드러난 이 작품으로 작가는 “한국 주류(酒類)문학의 위엄”을 알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봄밤’에선 치료시설에 갇힌 등장인물 영경이 시설을 나오자마자 편의점에 들러 소주 3병을 컵라면과 함께 해치운다. 영경은 스스로 알코올중독 단계에 있음을 고백한 작가의 분신으로도 보인다. 권여선은 ‘작가의 말’에서 “나는 30년 넘는 음주 이력을 거치면서 온갖 우려와 질타, 냉담과 무시, 위협과 압박을 받아왔다”고 밝힌다. 그는 본인이 알코올중독일 수 있다는 겸허한 인정의 근거로 “술을 마시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어떤 술자리에서도 결코 먼저 일어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지인의 지적을 든다.

오늘은 또 누구와 술을 마시고 누구에게 설을 풀 것인가. 그 누구는 점점 줄어들고 나는 점점 초조해진다. 몇 번 입술을 깨물고 다짐도 해보았지만 그래도 나란 인간은 결코 이 판에서 먼저 일어나자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영화 <타짜>의 평 경장이 “내가 화투고 화투가 나인 물아일체의 경지”를 선보였다면, 권여선은 술과 안주에 자신까지 곁들인 세 가지가 어우러지는 ‘삼위일체론’을 내세운다.

술과 음식이 개인 권여선과 작가 권여선한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술과 음식’이라고 하면 안 되고 ‘술과 안주’라고 해야 합니다. 저에게 그 둘은 달라붙어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데, 그 둘에 제가 또 들러붙어 삼위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의미가 발생합니다. 개인으로서는 술에 약간 중독돼 있어 위험하고, 작가로서도 술 먹고 깨는 시간이 점점 오래 걸려 역시 위험합니다. 하지만 평생 이 정도의 위험은 감수하며 살고 싶습니다. 위험은 언제나 의미를 낳기 때문입니다.”

음식과 안주로 세상과 사람의 단면을 표현하는 이 작가한테 혀가 맛을 보고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에 대한 구분과 묘사는 더 섬세해야 한다. 작가는 <안녕 주정뱅이>에 수록된 단편 ‘이모’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요리는 불과 물과 재료에만 집중해야 하는 일이다. 요리를 하면 할수록 그녀는 요리가 창조적인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요리를 반복해도 결코 똑같은 맛을 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실망시키기는커녕 더욱 매혹시킨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요리하며 일인분의 음식을 만드는 데도 정성을 다한다. 일인분이라고 아무렇게나 만들면 더 맛이 없다.

그런 권여선한테 흔히들 ‘집밥 예찬론’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집밥을 숭앙하는 문화는 꽤 마뜩잖은 현상이다. 재료가 다르고 만드는 사람이 다 다른데 어떻게 모든 집밥이 맛있다고 얘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나름 요리에 대한 작가의 자신감 표현일 수도 있겠다.

집에서 해 먹는 게 집밥이라면, 집집마다 그 집 부엌칼을 쥔 사람이 다른데 어떻게 그게 죄다 소박하면서 맛깔날 수 있단 말인가. 집밥이 무조건 맛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옳지는 않다. -<오늘 뭐 먹지?>

특정한 관점에서 아는 것, 여전히 모르는 것

<안녕 주정뱅이> 이후 권여선은 자신의 과도한 음주와 작품 속 음주 및 음식 섭취 장면을 자제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출간한 장편소설 <레몬>과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에선 확연히 변화가 감지된다. 대신 작가는 <아직 멀었다는 말>의 첫 단편 ‘모르는 영역’에서 조금씩 익숙함을 벗어나 ‘알지 못하는 것’으로 관심의 영역을 옮긴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와 딸의 대화는 마치 선문답 같다.

“어쨌든 유에프오는 아닐 거잖아요?”
“아니야. 그건 우리가 모르는 영역이다.”
다영이 아아 신음을 뱉었다.
“이럴 땐 엄마가 이해가 돼.”
“그게 무슨 말이냐?”
“그냥 이해가 된다고. 왜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났는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거냐?”
그가 소심하게 물었다.
“모르죠 그건. 우리가 모르는 영역이죠 그건. 유에프오보다 더.”
해는 늘 낮달만 만나고, 그러니 해 입장에서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거지.

대사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권 작가는 모른다는 것과 무엇인가에 대해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점차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물음에 권여선은 “실제로 그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언제나 안다는 것은 특정한 관점에서만 아는 것일 뿐, 다른 관점, 다른 측면에서는 여전히 모르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소설가는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겠지만, 그 이야기 속의 어떤 면은 모를 수 있다는 숙명적인 한계를 알고는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구상 중이거나 집필 중인 작품이 있나요.

“지금은 아무 작품도 쓰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쓸지 구상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실망하긴 이르다. ‘주류문학의 마에스트로’ 권여선은 그의 독자들이 기다려왔음직한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독자들은 이대로 진정한 주류(酒類)작가 권여선을 잃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적당한 텀을 두고 다시 주류문학으로 돌아갈 겁니다. 늙은 주정뱅이의 세계가 얼마나 매혹적인 비참의 경지인지 독자들이 알게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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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애초 이 글은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술과 안주의 장인’인 작가와의 인터뷰로서는 대실패이다. 주류회사보다 주류문화 확산에 기여한 이 작가를 술집에서 맛있는 안주를 앞에 놓고 만나기는커녕 서면으로 교신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불가항력.

권여선 작가는 <한겨레21>의 인터뷰 요청에 “제가 요즘 말하기 싫어하는 증상이 점점 심해져 부득이 대면 인터뷰를 사양할 수밖에 없음을 너그러이 이해해달라”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작가는 “사적인 대화가 아닌, 모든 공식적인 말이 부담스럽습니다. 문학은 언어로 하는 일인데, 점점 언어로 무엇을 한다는 게 두렵고 덧없게 느껴집니다. 밑도 끝도 없는 이 회의가 잠시 지나가는 바람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라는 답을 보내왔다.

여기서 포기할 <한겨레21>이 아니다. 그가 말한 덧없음의 바탕에 최근 권 작가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젊은작가상’ 수상 관련 논란이 영향을 끼쳤느냐고 물었다. “꼭 그것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이전부터 진행되던 증상이 좀 심해지는 계기는 되었습니다”라는 답이 왔다. 이번 논란은 수상자인 김봉곤 작가가 지인과의 카톡 대화를 수상작 <그런 생활>에 올린 사실이 드러나 사생활 침해 논란이 제기됐고, 결국 김 작가가 스스로 상을 반납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이와 관련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권여선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저에게는 아직 그 사건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 과정을 곰곰이 돌아보고 따져보고 있습니다. 만약 김봉곤 작가가 상을 반납하지 않았다면 심사위원으로서 수상 취소를 했어야 하는가, 그렇게 결정할 근거가 충분한가, 거듭 자문해보지만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 문제에 대해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두고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문학 하는 모든 분들이 이 일에 대해 다양한 입장에서 중층적인 논의를 이어가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작가와 전자우편으로 질문과 답을 주고받은 까닭이다. 애초 무엇이 권 작가로 하여금 언어 작업을 두렵게 했는지 그를 사랑하는 독자로선 당분간 ‘모르는 영역’에 남겨두기로 한다.

권여선 제공

권여선 제공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21이 사랑한 작가들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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