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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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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읽는 시간] 우리는 ‘아플 권리’가 있다

아파도 출근하고 환자에게 낙인찍는 건강 중심 사회에 던지는 질문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등록 2020-08-03 07:36 수정 2020-08-07 00:56

봄볕이 포근했지만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걱정하며 집에 가만히 머물던 4월 말. 어린이날을 앞두고 질병관리본부에서 마련한 특별 브리핑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기자들을 대신한 어린이들의 질문은 봄바람처럼 다정하고 정성스러웠으며 간절했다.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면 안 되나요?” “집 밖에서 자전거 씽씽이를 타도 될까요?”

질병 ‘이후’의 삶과 윤리를 고민하는 질문도 나왔다. “코로나19에 걸리면 몸에 흔적이 남나요?” “친구가 코로나19에 걸렸다는데, 친구와 가까이 지내면 안 되나요?” “코로나19에 걸린 친구에게 어떻게 무례하지 않게 위로해줘야 할까요?” 선의로 건네는 위로에도 폭력이 섞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 ‘무례하지 않은 위로’에 대한 질문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코로나19에 감염됐던 친구를) 왕따시키거나 놀리지 않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게 필요하다”며 “그런 마음을 꼭 가져달라”고 강조한 정은경 본부장의 말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아직 다 알 수 없는 병에 대한 공포가 환자들을 향한 사회적 낙인으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환기된 덕분이다.

질병 ‘극복’이 아닌, ‘관통’의 이야기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동녘)도 아픈 사람들을 더 아프도록 내모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다룬다. 사회단체 활동가 조한진희(활동명 ‘반다’)가 쓴 이 책의 부제는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관통기’다. 질병 ‘극복’이 아닌, ‘관통’의 이야기. 저자는 “건강을 추구해야 할 선(善)으로, 질병을 퇴치해야 할 악(惡)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적 사고”로 이루어진 ‘건강 중심 사회’를 비판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질병과 함께 살아야 하는 아픈 몸은 열등한 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강한 몸을 ‘정상’ 혹은 ‘표준’으로 삼는 사회에서, 아픈 몸들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만큼 죄책감과 자기혐오로 고통받는다.

저자는 10여 년의 투병 과정에서 직접 겪은 일을 곱씹으며 자아비판과 자기검열의 잣대에 가려진 건강 중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응시하는 데로 나아간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도, ‘반드시 건강을 되찾으라’는 말도 불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를 염려해주는 상대의 진심을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답답했다. 내가 과도하게 예민한 거라고 수없이 자책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 말을 한 상대방도 나도 잘못이 없음을 이제는 안다. 그는 건강 중심성을 탈피하면서도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낼 적정한 말을 알지 못했던 것이고, 나는 건강을 잃었지만 삶의 모든 것을 잃은 건 아니라는 믿음이자 진실을 지키고 싶었던 것뿐이다.”

아픈 몸은 왜 임금노동 현장에서 축출되는가

건강을 잃어도 담담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건강을 잃은 사람들을 동정하거나 기피하기보다, 공동체의 동료로서 함께 살아가는 문화가 정착된 사회가 좋은 사회일 것이다. 저자는 “건강 세계에 놓인 난민”으로서, ‘아픈 몸들’의 언어가 개발될 필요를 느꼈다.

저자는 ‘아플 권리’로서 질병권을 주장한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는 성별, 계급, 나이, 성적 지향 등의 차이에 따른 차별 없이 누구나 건강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건강권’ 담론에 기반을 둔 운동이 존재해왔다. 질병권은 건강권에 반대되는 말이 아니다. 저자 또한 소수자들이 ‘아픈 몸’이 되기 쉬우며 ‘아픈 몸’에 대한 편견은 성차별과 가난 혐오, 소수자 혐오 등으로 증폭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만 저자는 ‘아프면 안 되는 사회’의 현실을 강조하기 위해, 아플 때 느끼는 죄책감의 무게를 강조하기 위해 ‘아플 권리’를 제시한 것이다.

예컨대 정부가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개인이 지켜야 할 생활 방역 ‘제1수칙’으로 제시한 메시지가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인 것을 떠올려본다. 지자체들은 이에 발맞춰 ‘출근 자제 운동’을 벌였다. ‘아프면 회사로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쉰다’는 선택이 상식이 아니라 강요로 가능한 세상. 이는 역설적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그리고 현재도) 사회에 만연한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을 드러낸다. 작업환경의학 용어인 프리젠티즘은 ‘출석하다’는 뜻을 지닌 present에서 파생된 단어로, 노동자가 아파도 출근하는 행위를 뜻한다. 우리는 왜 아파도 출근하는가. 고용 불안, 동료에 대한 미안함, 나중에 더 심하게 아플 때를 대비한 연차 아끼기, 내 몸을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자기관리를 못하는 아마추어’로 보이고 싶지 않은 불안함 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직장인들은 안다. 주변 동료 가운데 어디 한 군데라도 아프지 않은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건강을 강조하는 인사와 선물이 넘치는 진짜 이유를. 출근이 가능한 수준의 건강 유지를 개인의 ‘자기관리’ 문제로 몰아넣고 가장 이득을 많이 보는 집단은 누구일까. 건강 관련 산업은 누구의 어떤 공포와 불안을 이용했나. ‘건강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주장은, 일단 사람들이 아픈 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픈 몸들을 임금노동 현장에서 축출하는 데 익숙하며, 노동자들은 크게 아프기 전까지 자신의 아픔을 과소평가하는 데 익숙하다. 또한 소득과 성별 등에 따른 건강 불평등이 해소되더라도, 인간이 인간인 이상 아픈 몸은 늘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아플 권리’를 주장하며 “우리는 아플 만해서 아프다. 자책감은 무책임한 사회에게 줘버리자”고 말하는 이유다.

‘아픈 몸들’의 서사는 더 많이 발화되어야 한다

저자는 “질병을 실패, 절망, 고통의 말로만 납작하게 포장해놓은” 건강중심적 언어, 의료권력의 언어를 비켜나려면 ‘아픈 몸들’의 질병 서사가 더 많이 발화돼야 한다고 본다. 책은 저자가 2015년부터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인데, 저자는 이후 질병 서사를 글로 쓰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또 2019년 ‘아픈 몸들의 질병 서사로 만들어지는 시민연극-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참여자를 모집했다. 시민배우 6명의 ‘아픈 몸’ 이야기는 지난 7월11~12일 서울 대학로 이음아트홀에서 상연됐다. 연극에는 ‘아픈 몸’ 정체성을 통해 온전한 ‘나 자신-되기’를 선택한 이들이 나온다. 근육병, 크론병, 조현병, 난소낭종, 유방암 등을 삶의 일부로 들여온 질병 서사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들려줬다. 오프라인 연극은 끝났지만, 온라인에서는 8월31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티켓을 구매(https://www.socialfunch.org/dontbesorry)한 뒤, 관객이 편안한 공간 어디에서나 관람할 수 있다. 연극과 토크쇼 모두 문자통역과 수어통역을 함께 제공한다.

김효실 <한겨레> 기자 trans@hani.co.kr

*‘페미니즘 읽는 시간’ 연재를 끝냅니다. 허윤 여성연구가를 이어 김효실 기자까지 수고해주신 필자분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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