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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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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복잡함을 견디기

등록 2020-08-01 07:17 수정 2020-08-06 01:04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즐겨 하지 않지만, 사회의 일원이기 위해 하루 한두 번은 접속한다. 현안을 알기 위해, ‘여론’에 대한 약간의 감각을 얻기 위해, 의미와 배움이 있는 글을 발견하기 위해, 행사나 교육 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명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쓰기’보다 ‘읽기’를 위한 것이다. 읽지 않은 책이 쌓여 있는데도 신간이 나오면 일단 사고 보는 직업병처럼, 그날 타임라인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저장하기’ 버튼을 눌러 스크랩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나중에 찾아보기 쉽게 폴더를 여러 개 만들어두고, 스크랩한 글을 분류해 넣는다. 어떤 작가를 소개할 때 흔히 ‘○○○의 서재’라는 제목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의 책장이 단순히 책이 수납된 가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사고방식, 세계관까지 짐작하게 하기 때문이다. 내 SNS 계정에 저장된 ‘내 폴더’ 역시 사건, 현상, 정보를 인식하는 내 ‘뇌구조’를 상당히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의 폴더에만 넣을 수 없는 것들

그런데 종종, 어느 폴더에 저장해야 좋을지 모호한 경우가 있다. 가령 코로나19 관련 기사나 자료는, 처음에는 <의료> 또는 <질병> 폴더에 간단하게 분류할 수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자원활동에 나선 의료진을 영웅화하는 것이 간호사들의 노동권 문제를 비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어떤 코로나19 관련 기사는 <노동> 폴더에 분류돼야 했다. 코호트(동일집단)격리가 이루어진 요양시설이나 장애인시설의 경험은 또 어떤가. 이 문제는 <노동> 폴더뿐 아니라 <노년> <장애> <복지> <혐오> <인권> 폴더에 두루 걸쳐 있다. 지역사회 감염과 방역은 <지방자치> <공동체> <시민성>과도 관련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자체가 <자본주의>나 <생태> 의제로 다뤄지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최근 발표된 정부의 ‘그린 뉴딜’은 ‘그린’도 없고 새롭지도(‘뉴’) 않으며 ‘딜’이라 할 만한 사회적 토론과 조율도 없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하나의 폴더(키워드)로는 설명은커녕 파악조차 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다. 그리고 ‘어느 폴더에 분류해야 할지 모호하다’는 어려움과 복잡성이, 깔끔하게 칸막이 쳐진 일목요연한 폴더 체계보다 더 현실이고, 더 진실이다. 시스템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는 ‘분류의 방식’이 있다.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는’ 사람들이 3차 병원에 가서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듯, 어떤 정부 정책에 접근하려는 사람들이 이 부서 저 부서 ‘뺑뺑이’ 돌거나 부서 간 ‘핑퐁’의 대상이 되듯, 기존 ‘분류 방식’에 의문을 갖지 않을 때 고통은 비가시화하고 심화한다. 삶은 총체다. 어떤 분류 체계도 그 총체성을 완전히 담을 수는 없다. 이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은,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데서 출발해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문제’라 여겨지는 것의 범위와 깊이를 갱신하려는 노력이어야 한다.

이것은 ‘어떤’ 문제인가

‘박원순 시장 사건’은 어떨까. 지난 3주 동안 쏟아진 수많은 기사, 발언, 공유, 댓글, 반박, ‘박제’, 생중계를, 나 역시 밤잠을 설치며 읽거나, 읽고 나서 밤잠을 설쳤다. 이것은 ‘어떤’ 문제인가. 어떤 문제로 정의돼야 하는가. 물론 가장 먼저 <성폭력> 문제이다. 동시에 <노동권> 문제고, ‘여비서’라는 직무를 만들어낸 <성별분업체제> 문제고, 지자체의 <조직문화> 문제고,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직업 공무원)이 갈등하는 <공무원사회> 문제고, ‘권력’ 문제를 ‘도덕’ 문제로 치환하며 정치를 팬덤화하고 진영화해온 <정치문화> 문제고, “잘 모르지만” 끝없이 말하는 <‘진보’-지식인-남성이라는 현상>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진실을 밝히는 것”은 단지 사실관계 규명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 모든 복잡성을 충분히 복잡하게 다룸으로써 우리 사회의 구조와 문화 전체의 변화로 밀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절대 하나의 폴더에 분류될 수 없는 복잡함을 ‘견디는 것’,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려는 이들에겐 바로 그 힘과 방법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희경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옥희살롱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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