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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17살 300만원, 15년의 족쇄 <레이디 크레딧>

성매매 종사자 심층 인터뷰… 선불금의 금융사회학 <레이디 크레딧>
등록 2020-08-01 07:11 수정 2020-08-06 01:03

성매매 여성 다혜(저자 인터뷰 당시 35살·가명)씨는 1996년 17살에 ‘선불금’ 300만원을 받고 단란주점에 발을 들였다. 선불금은 성매매 업소가 생활비 등 급전이 필요한 여성에게 빌려주는 돈인 동시에, 여성을 업소에 묶어두는 ‘부채’다. 이 돈은 다혜씨가 그 뒤 15년 넘게 성매매 업소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된다. 300만원의 부채는 액수가 늘었다 줄기를 반복하는데 최대 2억원까지 늘어난 적도 있다. 그는 지역의 단란주점, 마카오, 서울 강남 안마방과 오스트레일리아 성매매 업소에서 쉴 새 없이 일하지만 빚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우리 사회와 여성운동 진영은 그동안 ‘사악한 포주’와 ‘비도덕적인 성구매자’의 착취 때문에 다혜씨가 문제를 겪는 것이라고 바라봤다.

그러나 여성학 연구자 김주희가 쓴 <레이디 크레딧-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현실문화 펴냄)는 다혜씨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성매매 산업이 계속 유지되고 작동되는 정치·경제적 메커니즘의 정체를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불금이 ‘금융상품’으로 탈바꿈하며 ‘기업형 성매매’가 번성하게 된 지난 20여 년의 성매매 산업의 역사와 구조를 거시적으로 짚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반성매매 단체 활동가 경력이 있는 저자는 이를 위해 20대부터 70대까지 성매매 경험이 있는 여성 15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이들의 ‘몸’을 둘러싼 돈의 흐름과 성매매 산업의 변화를 분석했다. 또 성구매 남성, 사채업자, 강남 룸살롱에서 여성들을 모집·관리하는 ‘멤버팀장’ 등 10여 명의 성매매 산업 관계자도 만났다.

책은 다혜씨가 자발적인 동시에 강제적으로 성매매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힘을 ‘부채 관계’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생활비, 꾸밈 비용 명목으로 여성에게 지급되는 선불금은 차용증 형태로 성매매 업주들 사이에서 여성과 함께 화폐처럼 교환된다. 다혜씨가 가져올 미래 수익이 낮다고 판단한 성매매 업주는 다른 업주에게 다혜씨를 넘기며 빚을 정산하고 차용증도 함께 넘긴다. 성매매 산업이 발전하는 흐름과 함께 다혜씨의 채권자는 성매매 업주에서 사채업자, 지역 신용협동조합(유흥업소 대출 상품), 신용카드 회사, 제3금융권 등으로 다양해진다. 여성의 몸을 담보로 움직이는 ‘성매매 경제’가 지하가 아닌 양지에서 굴러가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 역시 자기 몸이 ‘신용’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성매매에 뛰어들어 돈의 흐름을 좇게 된다는 게 책의 분석이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다혜씨의 삶을 몰아세운 ‘진짜 주범’은 거대한 성매매 산업을 방관하고, 외려 장려해온 한국 사회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저자는 “성매매를 성별화된 경제체제의 문제로 구성하지 않는다면 구제된(탈성매매) 여성 한 명의 빈자리를 다른 여성이 채우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 (…) 성매매 문제를 이 시대의 ‘여성 문제’로 적극적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박민영 지음, 북트리거 펴냄, 1만6500원

흔히 혐오는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저자는 혐오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당신’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책은 세대·이웃·타자·이념, 네 범주에서 벌어지는 혐오를 짚는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며 이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에코데믹, 끝나지 않는 전염병

마크 제롬 월터스 지음, 이한음 옮김, 책세상 펴냄, 1만3천원

수의학자이자 언론학자인 저자는 인간의 개입으로 생태계가 변하고 이로 인해 세상에 출현한 질병을 에코데믹(Ecodemic·환경전염병)으로 규정한다. 책은 인류가 경험한 6가지 질병(광우병·에이즈·살모넬라·라임병·한타바이러스·웨스트나일뇌염)을 통해 에코데믹이 생기는 재앙의 순환고리를 보여준다.

코리안 티처

서수진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3800원

대학의 한국어 학당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가르치는 여성 시간강사 네 명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네 주인공이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로서 겪는 다양한 문제를 현실감 있게 그렸다. 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작가들과 반려동물의 사생활

캐슬린 크럴 글, 바이올렛 르메이 그림, 전하림 옮김, f(에프) 펴냄, 1만7500원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마크 트웨인은 ‘고양이 집사’였다. 찰스 디킨스는 ‘반려 까마귀’와 같이 살았다. 책은 디킨스부터 J. K. 롤링까지 작가 20명과 그들이 소중히 여겼던 반려동물의 이야기를 담았다. 반려동물이 작가의 삶과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엿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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