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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최고의 신은 ‘선’

국내 처음 번역된 메리 보이스의 <조로아스터교의 역사>
등록 2020-07-25 13:05 수정 2020-07-31 02:25

흔히 ‘배화교’로 알려진 조로아스터교 하면,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를 숭배하는 유일신교, 극명한 선악 대립의 이원론, 최후의 심판 등을 떠올린다. 서구 기독교의 핵심 교리가 조로아스터교에 뿌리를 댄다는 해석도 유행했다. 유라시아 역사와 문화를 천착해온 인문학자 공원국은 이런 통념이 “일말의 진실보다 훨씬 큰 오해를 품는다”고 말한다. 유일신 요소가 강하지만 독자적인 신이 여럿 존재하며, 선과 달리 악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비대칭적 이원론이란 것이다.

고대 종교 연구의 권위자 메리 보이스(1920~2006)가 쓴 <조로아스터교의 역사>(민음사 펴냄)가 24년 만에 공원국의 우리말 번역본으로 나왔다. 전체 3권 중 첫 권이다. 니체가 조로아스터 사상에 심취해 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는 비교적 널리 읽힌다. 그러나 정작 조로아스터교를 다룬 책이 지금까지 국내에 단 한 권(<조로아스터>, 나종근 엮음, 2000)밖에 없었던데다 그나마 절판됐다는 사실은 놀랍다. 관련 논문도 손에 꼽을 만큼 빈약하다. 번역서 출간이 반가운 이유다.

책은 크게 3부로 짜였다. 1부 ‘다신교적 배경’에선 이란의 신들, 악마와 악행, 죽음과 내세 등 조로아스터교가 태동할 당시의 종교관을 살핀다. 2부 ‘조로아스터와 그의 가르침’에선 조로아스터가 당대의 여러 신 중 선과 진리, 빛과 지혜의 상징인 아후라 마즈다를 최고신으로 추앙하고 사악한 ‘거짓 신’들과 싸우라고 촉구하는 교리 체계를 상술한다. 3부 ‘역사 이전 시기의 신앙’에선 조로아스터에 대한 다양한 전승을 소개한다.

조로아스터교의 시원은 고대 인도·이란인들이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에 함께 살던 시대로 올라간다. 두 집단이 민족 대이동으로 갈라지면서, 이란인의 종교관은 ‘아베스타’에, 인도인들의 종교관은 ‘리그베다’에 반영됐다. 이들의 종교는 다신교인데, 아후라 마즈다가 이미 조로아스터의 생존 시기(기원전 1400~1000년 추정) 이전에 바루나와 함께 ‘도덕적 질서’의 수호자인 ‘미트라’(계약)보다 더 위대한 신으로 격상된 것으로 보인다.

지은이는 조로아스터교의 급진적 개혁성에 주목한다. 조로아스터는 어려서부터 사제 교육을 받고 구도의 길을 방황하던 중, 나이 서른의 어느 날 새벽 강에서 아후라 마즈다의 현신을 만나 영적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조로아스터는 도덕적으로 선한 이들이라면 성별, 배움, 계급과 관계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부와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신들에 투영된 기존 종교를 배격하고, 처음으로 종교 이름으로 현세에서의 선한 삶에 도덕적 당위성과 적극적 책무를 부여했다. 새롭고 도전적인 그의 사상은 귀족과 사제 계급의 미움을 샀다. 조로아스터는 결국 다른 종교의 광신도에게 살해됐지만, 그의 가르침은 이후 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 등 다른 종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홉스-리바이어던의 탄생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지음, 진석용 옮김, 교양인 펴냄, 2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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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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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역사-김 시스터즈에서 BTS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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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가 1945년 해방 직후부터 2020년까지, K팝·드라마·영화·뮤지컬·게임 등 ‘75년 한류’의 저력을 톺아보고, 그 배경을 사회·문화·경제적 맥락에서 분석했다.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이 낳은 성공 신화 뒤에는 인권침해와 갑질이라는 구조적 그늘도 드리워졌다.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롭 월러스 지음, 구정은·이지선 옮김, 너머북스 펴냄, 2만4천원

미국 진화생물학자인 지은이가 코로나19를 비롯한 바이러스성 감염병 확산의 원인으로 초국적 거대 농축산업과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지목한다. 이윤만 좇는 공장식 생산은 작물과 가축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며, 생태 균형을 파괴하는 막개발은 잠자던 병원균을 깨워 괴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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