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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관계망이 죽음의 그물 될 때

제1321호
등록 : 2020-07-10 17:07 수정 : 2020-07-1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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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았다. 동족상잔의 내전이었던 한국전쟁은 참전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 사망자와 실종자가 최대 200만 명에 이를 만큼 참혹했다. 전투원보다 비무장 민간인 피해가 컸던데다, 단순히 ‘부수적 피해’가 아니라 국가권력과 그것을 뒷배 삼은 세력이 자행한 의도적 학살이 되풀이됐다. 포성이 멎은 지 수십 년이 지나서까지 생존자와 후손의 숨통을 죄고 공동체 결속에 균열을 낸다는 점에서도 그 비극성은 도드라진다.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석좌교수(사회인류학)의 <전쟁과 가족>(정소영 옮김, 창비 펴냄)은 한국전쟁 시기 민중이 가족·친족·이웃 같은 관계 공동체 안에서 경험한 전시 폭력의 극단적 위기의 배경과 영향, 그 의미를 분석한다. 지난 3월 영문판이 먼저 나오고 넉 달 만에 우리말 번역본이 나왔다.

한국전쟁은 해방 직후 “남·북한 국가권력이 오직 자신에게 전 민족을 대표하는 통치 권한이 있다는 믿음”에서 “폭력적 수단을 동원해 상대의 주권 주장을 배제하고 단독으로 민족국가를 이루려는 2개의 탈식민 국가세력 사이에 벌어진 내전”이었다. 지은이는 인류학에서 ‘시비타스’(Civitas·영토와 소유에 기초한 시민적·정치적 사회)와 ‘소시에타스’(Societas·사람 간 관계에 기초한 질서)를 구분하는 개념을 빌려와 한국전쟁의 미시적 분석을 시도한다. 정치세력이 무력 충돌한 전쟁 서사와 지역공동체가 기억하는 전쟁 서사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혈연·지연으로 친밀한 관계망은 서로를 고발하고 목숨을 빼앗는 죽음의 그물로 돌변했다. “가족과 국가 간의 도덕적 갈등 상황”에서 대다수 민간인은 생존의 선택에 내몰렸고 “(수시로) 뒤집히는 충성의 요구에 직면해 ‘순결함’이라는 안전한 구석을 어떻게든 찾아내려 기를 썼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도 그랬다. 작가의 오빠가 전쟁 전에 진보적 좌익 지식인 운동에 참여했던 “빨갱이 짓”은 “그와 가족에게 재앙을 불러올 확실한 표시”였다. 어머니의 끈질긴 만류로 좌익운동을 단념했지만 ‘사상 세탁’의 증거로 보도연맹에 가입해야 했다. 전쟁이 터지자 오빠는 인민군 의용군에 징집됐고, 작가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반공청년단에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목숨을 건진 게 천운이었지만, 운이 따르지 않은 이가 훨씬 많았다. 전쟁 당시 역사학자 김성칠은 일기에 “이 땅의 ‘백성질’ 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탄식했다.

지은이는 민간인 학살, 불온한 공동체(정치적·이념적 배제 집단), 분쟁 중 평화, 연좌제, 도덕과 이념, 소리 없는 혁명(유족들의 기억 투쟁과 공론화) 등을 두루 살핀 뒤, “산 자들이 정치적 두려움 없이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할 수 있는 권리의 회복”이 진정한 평화를 향한 긴 여정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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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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