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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몽골리카, 인류 최초의 세계화 <칭기스의 교환>

포용·행정관리로 유라시아 대륙 풍경 바꾼 몽골제국 이야기 <칭기스의 교환>
등록 2020-06-27 12:17 수정 2020-07-03 00:20

1~2세기 지중해 문명권은 로마제국의 강력한 힘에 기반한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마의 평화)를 누렸다. 19세기엔 해양제국 영국이 전세계를 누빈 ‘팍스 브리태니카’, 20세기 후반엔 신흥 초강대국 미국이 세계 질서를 주도한 ‘팍스 아메리카나’가 있었다. 국제정치에서 ‘팍스 ○○○’는 독보적인 패권국을 중심으로 주변 국제질서 안정과 평화가 지속되는 시기를 말한다. 세계사에서 아시아권 세력이 그 중심에 있었던 적은 딱 한 번, 13~14세기 몽골제국에 의한 ‘팍스 몽골리카’였다.

미국의 유라시아사 학자 티모시 메이가 쓴 <칭기스의 교환-몽골제국과 세계화의 시작>(권용철 옮김, 사계절 펴냄)은 인류 역사상 최대 단일 제국을 형성했던 몽골의 세계 정복과 그 영향, 의미를 조명한 책이다. 몽골제국은 동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와 인도, 중동을 거쳐 유럽의 흑해 연안까지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을 아울렀다. 팍스 몽골리카 체제에서 이뤄진 군사 분야 혁신, 활발한 국제무역, 세계 종교 확산, 기술과 사상의 전파, 감염병 발생은 세계적 지각변동과 급격한 사회변동을 불러오며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세계화 시대’를 열었다. “먼지가 가라앉은 이후 세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고, 결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지은이가 몽골제국을 세계사에서 ‘근대의 출발점’으로 꼽는 이유다.

몽골제국의 군사 정복과 포용적 지배 정책을 촉매 삼아, 유라시아 대륙 곳곳이 긴밀하게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세계의 풍경이 획기적으로 바뀐 것을 지은이는 ‘칭기스의 교환’이라고 칭한다. 앞서 미국 역사학자 앨프리드 크로즈비가 콜럼버스의 신대륙 상륙 이후 신대륙과 구대륙의 동식물, 사상, 문화, 기술, 병원균 등이 상호 전파돼 급격한 사회 변화를 초래한 것을 ‘콜럼버스의 교환’이라 표현한 것에 빗대었다.

책은 크게 1·2부로 짜였다. 1부 ‘촉매가 된 몽골의 정복’에선 1206년 몽골 초원의 작은 왕족 출신이던 테무친이 주변을 평정하고 ‘칭기즈 칸’(단호한 지도자)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대제국의 형성과 분열, 계승자들에 의한 세계의 변화까지 150여 년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4대 칸국의 하나였던 ‘일 칸국’에선 페르시아 문화가 융성하며 오늘날 이란의 뿌리가 됐다.

이어 2부 ‘칭기스의 교환’은 팍스 몽골리카를 교역, 새로운 전쟁 방식, 행정, 종교, 흑사병, 이주와 인구, 문화 교류 등 주제별로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몽골제국이 전례 없는 ‘세계화 시대’를 열고 대제국을 유지한 비결은 종교적 포용성과 효율적 행정관리에서 도드라진다. 기독교의 신, 이슬람의 알라, 하늘과 신성한 영혼 등 모든 종교적 개념을 유목민의 전통 샤머니즘 신앙 ‘텡그리즘’으로 흡수하고, 역참 체계를 도입해 통치와 교역의 실핏줄로 삼은 것도 흥미롭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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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 팬, 그리고 난민

오마타 나오히코 지음, 이수진 옮김, 원더박스 펴냄, 1만6천원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류학자인 지은이가 서아프리카 가나의 부두부람 난민캠프에서 401일 동안 체류하며 보고 겪은 라이베리아 내전 난민의 생생한 일상을 기록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난민들의 희로애락과 어려움이 뭉클하다.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4
민은기 지음, 사회평론 펴냄, 각각 1만9천원·1만8천원
민은기 서울대 교수의 클래식 입문 교양 시리즈. 바로크음악의 양대 거장 바흐와 헨델의 삶과 음악으로 안내한다. 둘은 동시대 인물이면서 극도로 대비되는 삶을 살았다. 당시 악기와 악보, 회화와 사진 등 풍부한 시각자료와 즉석 감상용 QR코드를 곁들였다.


신과 로봇
에이드리엔 메이어 지음, 안인희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2만원
미국 스탠퍼드대학 고전학자인 지은이가 고대 그리스 신화와 역사에 과학적 상상력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지구상 최초의 로봇은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청동거인 탈로스였고, 그를 쓰러뜨린 마녀 메데이아는 사상 첫 해커였다. 전문지식에 바탕을 둔 환상적인 스토리텔링.


초보자를 위한 페미니즘
누리아 바렐라 지음, 안토니아 산톨라야 그림, 박도란 옮김, 시대의창 펴냄, 1만6800원
스페인 사회학자인 지은이가 서구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의 흐름을 ‘인물, 역사, 철학, 명작’ 등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아울렀다. 올랭프 드구즈, 에멀라인 팽크허스트, 시몬 드 보부아르, 베티 프리단 등 쟁쟁한 페미니스트들의 사상을 시대적 맥락에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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