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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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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영수증] 개구리가 침대 옆에 ‘떡’

방충망 교체하며 단단히 여름 준비 나섰지만…
등록 2020-06-27 07:32 수정 2020-07-02 01:08
온갖 벌레와 함께할 수 밖에 없는 시골에서 방충망 교체는 ‘여름 준비’에서 1순위로 하는 일이다.

온갖 벌레와 함께할 수 밖에 없는 시골에서 방충망 교체는 ‘여름 준비’에서 1순위로 하는 일이다.

하지가 지나고 여름의 문이 열렸다. 오래된 시골집에서 여름나기를 앞두고 우리 부부는 이른 봄부터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했다. 높은 빌딩과 아파트에 둘러싸인 도시에서 계절 변화 앞에 달라지는 건 겨우 걸쳐 입는 옷의 두께 정도, 해야 할 일 역시 옷장 정리뿐이었다. 남해에선 새 계절이 오기 전에 미리 해치워야 할 일이 많았다. 시골에 살려면 부지런해야 한다던데,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방충망 교체. 지난해 남해에서 난 첫 여름, 온갖 벌레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벌레 퇴치약을 종류별로 써보고 보이는 족족 잡아도, 여름이 깊어질수록 벌레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아졌다. 지네처럼 독성이 있는 벌레가 아니면, 웬만해선 그러려니 하고 넘겨야 할 수준이었다. 그런데 집 안 창문마다 달린 방충망은 이름만 방충망이고, 철망이 살짝만 만져도 부서질 정도로 삭아버렸다. 외진 마을이라서 업자를 부르는 일이 도시만큼 쉽지 않기에 직접 해보기로 했다. 이웃에게서 철망, 창문틀과 철망 사이를 고정할 고무를 얻어다가, 방충망을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 그런데도 어느 틈에 들어왔는지 지네, 돈벌레, 그 밖의 이름 모를 벌레가 집안 곳곳에서 나와 하루에도 여러 번 파리채를 든다.

사랑방 손님으로 청개구리가 찾아온 적도 있다. 모내기를 마친 5월 이후부터 밤마다 개구리 소리가 우렁찬데, 어느 날은 울음소리가 어찌나 큰지 꼭 옆에서 울어대는 것처럼 시끄러웠다. 밤잠을 설치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침실 옆방 한가운데에 작은 청개구리 한 마리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진짜 옆에 있었던 것이다. 자연에 가까이 사는 만큼 여러 생명체와 공생할 수밖에 없지만, 집에 드나드는 벌레 수라도 조금 줄여보려면 애쓰지 않을 수 없다.

골방에 있던 침대를 안방으로 옮기는 일도 여름 준비 중 하나였다. 집에서 가장 넓은 안방은 난방비 걱정에 아예 보일러를 꺼둔 채 옷장에서 옷을 꺼낼 때만 간간이 드나들었다. 대신 침대를 놓고 나면 겨우 발 디딜 공간만 남는 작은 방에서 겨울과 봄을 났는데, 시멘트 바닥에서 벽까지 타고 올라오는 습기와 쿰쿰한 냄새로 불편함이 컸다. 더는 비싼 기름보일러를 돌리지 않아도 될 만큼 날이 따뜻해진 뒤에야, 사방이 꽉 막히고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나와 시골집의 낭만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눈떠서 침대 옆 창문을 열면 푸른 하늘과 산이 보인다. 골방에서는 잘 들리지 않던 이장님의 마을 아침 방송도 또렷이 잘 들리니, 각종 마을 소식과 행사도 빠짐없이 챙길 수 있다.

그 외에 다가올 여름을 대비해 여러 일을 해치웠다. 집안 곳곳에 깔아둔 두꺼운 담요를 치우고, 대신 시원한 대나무 자리를 꺼냈다. 필요한 자재를 사서, 예전 살던 집에서 가져온 에어컨도 직접 달았다. 차광이 필요한 주방 창문에는 대나무발을 새로 걸었다. 마을에서 깊숙이 떨어져 혼자만의 피서를 즐길 수 있는 계곡 자리도 물색해뒀다. 그래도 아직 할 일이 남았다. 그늘 하나 없이 뙤약볕인 마당에 차광막 설치하기. 겨울에는 엄청 춥고 여름에는 엄청 덥다는 음지에 있는데다 단열이 전혀 안 되는 시골집이니, 부지런히 여름을 대비해둬야 한다. 이제 남해 시골 마을에서 맞는 두 번째 여름이 찾아왔다.

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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