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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 나는 코로나, 우린 다시 꼭 만날 거예요 ①

[코로나 뉴노멀]
3부 - 김양중 전 <한겨레> 의료전문기자의 ‘코로나19’ 모놀로그
등록 2020-05-30 05:29 수정 2020-06-13 04:42

요즘 사람은 저 이후의 세상은 이전과는 다를 거란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사스(SARS)나 메르스(MERS) 선배 시절에는 이런 얘기가 없더니, 같은 코로나바이러스인데도 제가 제일 무서운가봅니다. 사스나 메르스의 경우 사람들은 ‘퇴치’나 ‘종식’이라는 표현도 썼죠. 저는 메르스 유행이 끝난 뒤 언제든 다시 온다고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만…. 사실 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 입장에선 지구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여기겠지만, 알고 보면 이 지구에 먼저 자리를 잡은 건 우리랍니다. 인류 역사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긴 시간을 이 땅에서 먼저 보낸 선배라는 말입니다. 퇴치라는 말 역시 ‘팩트’(사실)가 아니죠. 잠시 사람들 곁에 가까이 없을 뿐이지 우리는 항상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랍니다. 서로 마주치지 않으면 조용히 각자 살아가지만 이렇게 종종 만나면 뭔가 사달이 나지요. 아직 우리 만남이 진행 중이지만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제가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생각나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앗, 제 소개가 빠졌네요. 저는 코로나바이러스예요. 사람들은 감기 등 호흡기 질환을 흔히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보더군요. 꼭 메르스나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코로나바이러스는 흔히 겨울철에 만날 수 있어요. 바이러스는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세균에 견줘 1천 분의 1 이하로 작은 건 잘 아시죠? 일반 현미경이 아닌 전자현미경으로 겨우 관찰할 수 있지요. 이렇게 작은 바이러스가 사람 같은 위대한 생명체를 위협한다고 하니 좀 우습죠. 인류 역사가 10만~100만 년 정도 된다던데 별로 길지도 않지만, 그 기간에 우리 존재를 알아낸 건 몇십 년도 되지 않아요.

예전에는 정체를 모른다는 이유로 우릴 ‘신의 형벌’로 불렀어요. 코로나바이러스는 스스로 생존할 수 없기에 항상 숙주를 파고드는데요. 숙주 안에서 우리 유전물질을 증폭하고 자손을 번식시키죠. 그게 바로 감염이고요. 이때 사람을 비롯한 숙주는 몸에 있는 면역세포와 면역물질로 우리와 싸우면서 열이 나거나 통증 같은 증상이 나타나요.

‘코로나’란 이름이 붙은 이유도 설명할게요. 우리 몸 표면에는 왕관의 장식 부분인 뿔 같은 모양의 돌기가 많이 있는데, 이 모양을 전자현미경으로 보고 코로나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이 돌기가 보통 목구멍에서 후두까지의 상기도에 잘 달라붙기에 우린 주로 감기라 부르는 상기도 감염을 일으키는데, 때로 폐까지 침투해서 폐렴도 곧잘 유발해요. 그래도 다른 종류의 병원균이 일으킨 폐렴에 견주면 잘 낫는다고 하지요. 다들 겁내지만 나름 부드러운 바이러스랍니다.

메르스 유행 때보다 철저한 방어에 놀라

다 아는 일이지만 메르스 선배에 견줘 전 치명률이 좀 낮지요. 이 때문에 어떤 이는 가을부터 봄까지 유행하는 인플루엔자(유행성 독감)에 비유하기도 해요.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치명률이 3~5% 수준으로, 20~40%에 이르던 메르스 선배보다는 훨씬 온화하죠.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타는 그 짧은 시간에도 감염을 전파하니 특유의 친화력은 인정하시죠? 우리가 사람 몸속에 들어가 증식한 뒤에도 그다지 증상이 나타나지 않거나, 증상이 나타나도 아주 가벼워 빠르게 전파할 수 있어요. 친화력이 높으면서 증상도 강하지 않으니 사람에게 옮기는 데 최적화돼 있지요.

그 덕분에 메르스 선배가 주로 병원에서만 186명을 감염시킨 정도에 견줘, 저는 병원은 물론 전파 경로를 찾을 수 없는 감염까지 일으켜 벌써 5월25일 기준 한국에서만 1만1200여 명의 감염환자를 양산해냈죠. 흔히 ‘K방역’이라고 하던데 그래도 한국은 선방했다고 볼 수 있어요. 전세계에 감염자가 미국에서 약 164만 명, 브라질 36만 명, 영국 26만 명, 러시아 34만 명, 이탈리아 23만 명 등으로 우리가 맹위를 떨치고 있지요. 사망자도 한국에선 267명이지만 미국에선 10만 명에 육박해요.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도 2만~4만 명 수준이니 한국이 잘 대처한다고 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한국에선 2015년 메르스 선배가 들어와 유행했고, 이때 방역에서 많은 부분을 개선했죠. 또 시민들이 유행 정보를 투명하게 접하고 손씻기나 마스크 착용, 생활 속 거리 두기 같은 방역 대책에 주체로서 적극 참여하도록 한 정부의 구실도 중요했다고 봐요. 유행 초기인 2월 말 대구에서나 5월 초 서울 이태원 등에서 대규모 감염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접촉한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이 만난 다른 이들도 모조리 밝혀내는 것을 보고 그 실력에 혀를 내둘렀답니다. 인권침해 논란도 있던데, 이동통신이나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으로 우리 숙주인 사람들의 동선을 파악해 공개한 건 메르스 선배 시절보다 강화된 형태로, 저의 전파를 막는 장치가 됐답니다.

이태원 클럽 등은 우리에겐 기회

그동안 방역 대책에 대해 ‘보건 당국이 잘 막으면 되지 시민이 나설 일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많았지요. 시민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보건 당국의 방역 대책에 맡겨뒀다고 볼 수 있어요. 마치 군대에 외적의 침입을 막도록 한 것과 같은 원리이지요.

이번엔 숙주(시민)들이 스스로 방역의 주인으로 나서면서 제가 퍼지는 데 큰 장애가 생겼어요. 철저한 손씻기와 마스크 착용이 기본이 되면서, 우리 때문에 피해를 본 다른 바이러스 친구가 많아요. 우리는 사람 호흡기에 들어가 번식하면 다시 다른 서식처에 가기 위해 사람한테 기침을 일으키거든요. 기침할 때 우리가 밖에 나와서 다른 사람의 호흡기로 직접 옮겨가거나 여기저기 묻어 있으면 사람들이 손으로 우리를 만지면서 그들의 호흡기로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이번엔 숙주들이 손씻기와 마스크 착용을 너무 열심히 한 거예요. 인플루엔자바이러스 아시죠? 우리와 마찬가지 경로로 전파되는 친구인데 시민들의 이런 예방 행동으로 지난해보다 12주나 빨리 유행이 끝나버렸지 뭡니까.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를 피하는 것도 전파를 막는 행동이었죠. 회사나 학교 등에 시민들이 모여 있으면 그만큼 저는 효율적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다닐 수 있는데, 사람들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자가격리나 재택근무 그리고 온라인 개학까지,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어요. 언제 감염으로 개학을 연기하고 온라인수업을 한 적이 있었나요?

유행 초기 대구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파로 사람들이 좁은 곳에 많이 모이는 것이 저에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아셨을 겁니다. 주기적으로 만나니 우리에겐 성장의 최적기였죠. 이후 숙주들이 대책을 세우면서 다시는 이런 전파를 기대하지 못할 줄 알았어요. 다행히 숙주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에 지쳐가면서 다시 모이기 시작해, 결국 서울 이태원 클럽 전파 건이 가능해졌지요.

벌써부터 ‘코로나 이후’ 시대를 이야기하던데요. 비행기 등 빠른 교통수단의 개발로 지구촌이 다 연결됐는데, 이런 문화가 쉽게 사라질까요? 또 환자가 수용돼 있다시피 한 정신병원이나 요양병원이 과연 건강을 지키는 곳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아울러 서울이나 대구, 국외의 뉴욕이나 런던 등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대도시 문화가 바뀔까요? 한국에선 지역 발전 운운하며 많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보냈어도 여전히 대도시 문화가 주류던데요. 대형화, 대도시, 대규모 문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지요.

김양중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교수·전 <한겨레> 기자

* 나는 코로나, 우린 다시 꼭 만날 거예요 ②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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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뉴노멀
3부 한눈에 보는 코로나19

1.바이러스와 인간, 그 기나긴 역사
2.[콩트] 나는 코로나, 우린 다시 꼭 만날 거예요
3.코로나 시대의 중요한 사물, 마스크의 모든 것
4.[감염병 역사] 인류는 '질병 공동체'
5.[코로나 소설] 얼굴 보고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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