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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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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동물] 아버지 방을 들여다보던 고양이

싸움 싫어하던 아버지 성품을 닮아 ‘여버리’였던 애노
등록 2020-05-26 06:10 수정 2020-05-29 01:47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친정아버지 만년엔 친정집에 고양이가 여덟 마리 있었습니다. 고양이 여덟 마리의 이름은 다 ‘애노’였습니다. ‘앤오앤오’ 운다고 지은 이름입니다. 아버지의 고양이는 여덟 마리 중 대장 수고양이였습니다. 노랗고 얼룩얼룩한 색에 귀 끝에 짧은 털이 몇 가닥씩 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스라소니 새끼라고도 하고 삵의 새끼라고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분명 친정집에서 키우던 평범한 고양이가 낳은 새끼입니다. 마당 한쪽에 10단짜리 아치형 화분 받침대를 놓았는데 항상 제일 높은 칸은 아버지 고양이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풀 베러 같이 가고, 아버지 어깨 밟아주고

지금처럼 고양이를 방에서 반려동물로 키우는 게 아니었습니다. 시골 고양이는 놀고먹고 살지 않았습니다. 당당히 일하며 먹고삽니다. 특히 농촌에선 먹을거리가 많아 고양이가 없다면 쥐들의 천국이 될 것입니다. 우리 집 고양이는 많은 농작물을 지켜주는 중요한 가족의 일원이었습니다. 고양이 덕에 바쁜 가을걷이 때도 쥐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비만 안 맞게 곡식을 집 안에 아무렇게나 들여다 쌓아놓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쥐를 키우지 고양이는 싫다고 합니다. 특히 눈이 무섭고 잘못하면 꼭 보복한다더라 하며 고양이를 키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쥐 피해가 심하면 쥐약을 놓아 많은 고양이나 개가 피해를 보게 하는 얌체족도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짐승을 엄청 좋아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고양이를 특별히 더 좋아하셔서 고양이 새끼가 태어나면 누구네 고양이가 없나 동네에 열심히 수소문해 분양하셨습니다. 고양이가 없으면 기껏 농사지어 수지는 쥐가 뜯어 먹고 집 안을 돌아다니며 짓밟아 더럽다고 농삿집에선 고양이를 꼭 키워야 한다고 권하셨습니다.

고양이를 공짜로 가져가면 쥐를 안 잡는다는 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절대 고양이를 공짜로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딱히 정해진 가격 없이 어떤 집은 돈을 놓고 가기도 하고 음료수 같은 것을 사오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자기네 집에 귀한 것을 갖다주고 고양이 새끼를 가져갔습니다.

봄가을로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다 분양하고 또 분양이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여러 마리를 키울 때도 있습니다. 한번은 고양이가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았는데 그중 한 놈이 얼룩얼룩한 것이 꼭 삵을 닮았습니다. 다 분양하고 이놈을 남겼는데 어미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고양이 새끼가 안타까워 생선살을 뚝뚝 뜯어 먹입니다. 국그릇의 고기도 건져 먹이며 특별히 거두었습니다. 어린 애노는 그때부터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밭에 갈 때도 앞장서서 갑니다. 풀을 베러 갈 때도 언제나 앞장서서 갑니다. 아버지가 일하는 동안 옆에서 기다리다가 가끔 그늘에 누워 쉬실 때 아버지 어깨에 올라가 어깨를 밟아줍니다.

사냥해 고양이들 불러모아 골고루 먹이고

남동생 부부는 부모님과 함께 농사짓고 살았습니다. 나는 바쁜 농사철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김장철이면 김장하러 친정에 갔습니다. 배추를 가꿀 때는 어디 한 포기라도 빈 데가 없나 찾아 비가 와도 비를 맞으며 모종을 합니다. 햇볕이 날 때는 물을 들고 다니며 주면서 모종해서 밭이 빈자리 없게 농사를 짓습니다. 완전히 자라지 않은 푸성귀라도 귀할 때 뽑아 팔면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농부 마음이란 밭 한가득 온전히 자라지 않으면 절대로 손대지 않습니다. 농사지을 때는 배추 한 포기도 남을 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수확기가 되면 고달프게 농사지은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나눠먹는 것만 좋아 풍성히 나누고 팔기도 합니다. 김장 때가 돼서 누가 오면 배추를 가져가라고 집어주고 차로 실어다주고 합니다. 고양이들에게도 나눠줍니다. 흔드적거리는 배추 한 포기를 쭉 쪼개 마당 한쪽에 던져놓으면 고양이 여덟 마리가 모여 한번에 다 뜯어 먹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 해 전이었습니다. 김장하러 가서 친정에 2주 동안 머물렀습니다. 애노는 아주 조용하여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오직 아버지만 따라다니지만 아버지 방문 앞까지만 오고 절대로 방에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억지로 안아 들여놓으면 죄송스러워서 쩔쩔매며 잠깐 엎드렸다 얼른 나가버립니다.

애노는 대장이지만 용해빠져서(성질이 순하고 어리석음) 여버리(바보)라 불렀습니다. 용하지만 용맹스럽기가 치타 같았습니다. 낮은 행랑 지붕 끝에 앉은 새도 날개가 있는 것처럼 사냥해서 고양이를 불러 모아 먹입니다. 산토끼를 잡아 올 때도 있습니다. 한 마리라도 빠지면 용케도 알고 ‘왕오왕오’ 큰 소리로 불러 고루 먹입니다. 때론 사냥해오면 다른 고양이들이 달려들어 낚아채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버지의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들과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누구와 큰소리로 다퉈본 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싸움을 싫어하는 성품이셨습니다. 집에 사람이 오면 절대 빈입으로 보내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집에 갈 때는 빈손으로 가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날 친척집에 가본 적 없이 자랐습니다. 어린것이 친척집에 가서 자칫 여기로 옮겨 앉아라 저기로 앉아라 하며 눈칫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놀러 다닐 시간에 풀 한 포기라도 뽑고 집안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담에 커서 이런저런 눈치가 생기면 그때는 떳떳하게 한 보따리 들고 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큰 손해 나지 않으면 이웃과 다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져서 큰 소 한 마리가 왔다 갔다 한다면 모를까 사소한 일로 다투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방이 완전히 비자

어머니는 남한테 지는 것을 너무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잠을 안 자고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워낙 아버지 성품이 곧고 확고하셔서 면전에선 뭐라 못하시고 몰래 “여버리같이 남한테 내 것도 너볏이 내어주고 뺏기나” 중얼중얼하십니다. 고양이도 쥔(주인)을 닮아서 여버리 같다고 몰래 뒤에서 여버리라 불렀습니다. 애노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와 동행하며 아버지를 보호하고 살았습니다. 풀숲이나 밭에 갈 때 앞장서서 가며 뱀을 쫓아준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애노는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시면 가끔 아버지 방을 들여다보고 갑니다. 아버지는 82살에 병석에 누운 지 한 달 만에 돌아가셨는데 애노는 수시로 아버지를 보고 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가끔 아버지 방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버지 물건을 다 정리하고 아버지 방을 비웠습니다. 아버지 방이 완전히 비자, 애노는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강원도의 맛>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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