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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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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슬픈 전염병

전염시켰다는 생각에 평생 죄책감 속에 살아가는 남자
등록 2020-05-04 15:32 수정 2020-05-08 01:22
<네메시스>

<네메시스>

어린이 여러분, 겨울방학부터 지금까지 학교도 못 가고 집에 콕 박혀 있느라 많이 힘들지요? 온라인수업은 잘하고 있나요? 열심히 듣고 있기도 쉽지 않지요? 날씨가 화창하니 친구들과 만나고 싶고 학교에서 재잘재잘 놀고도 싶고 여기저기 다니고도 싶지요? 이렇게 오랫동안 학교를 안 가고 집에 있는 일은 생각도 못해봤을 거예요.

저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린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입니다. 내과의사인데 그중에서도 감염병에 걸린 환자를 돌보는 감염내과 의사랍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려서 열이 나고 폐렴이 생기는 일도 결국 감염이기 때문에 코로나 환자를 돌보기도 하고, 또 그런 감염병이 다른 사람에게 퍼지지 않게 막는 일도 한답니다.

오늘은 제가 감염내과 의사로서 어린이 여러분에게 지구에는 이런 감염병 유행이 이따금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려고 합니다. 이번에 알려줄 감염병은 폴리오입니다. 예전에는 소아마비라 했고 의사들은 급성회백수염이라고 합니다. 열이 나면서 감기나 장염처럼 시작해서 사지마비가 일어나고 어떤 경우는 호흡마비가 와서 사망하는 전염병입니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 초까지 매년 1천~2천 명의 환자가 생겼고 많은 부모가 아이의 팔다리가 마비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슬픈 병입니다.

제가 읽은 책 <네메시스>는 1944년 7월 미국 뉴어크라는 마을에서 있었던 폴리오(소아마비) 유행이 배경입니다. 이 유행 초기에 두 어린이가 사망합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어린이 놀이터의 감독관입니다. 이 감독관은 만능 운동선수인데 폴리오에 걸린 뒤 왼손,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이는 장애가 남습니다. 감독관은 여자친구가 있는 숲속 여름캠프를 방문했는데, 캠프에도 폴리오가 유행합니다. 감독관은 자신이 그 캠프에 폴리오를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삽니다.

이 감독관과 대조적인 사람도 등장합니다. 아놀드는 어린 시절 폴리오에 걸려 두 발에 보조기를 끼우고 목발을 짚고 살게 되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필요한 건물을 설계하거나 개조하는 건축가로서 살아갑니다. 책 제목인 ‘네메시스’는 분수를 넘어서는 모든 종류의 과도함을 응징하는 그리스 신화의 복수의 여신 이름입니다. 아마도 소설가는 감독관이 우연히 발생한 폴리오에 과도한 책임을 느껴 인생을 망가뜨렸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을 학교에 가지도, 친구랑 놀지도 못하게 하는 코로나19처럼 이 폴리오도 바이러스입니다. 당시 폴리오는 어떻게 전파되는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어른들은 아기가 소아마비 장애인이 될 것을 걱정하지 않고 지냅니다. 아주 어릴 때 폴리오 예방접종을 해서 안심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아주 행복한 얘기지요?

코로나19는 어떻게 전파되는지를 알고, 예방법도 잘 알고 있어요. 이 속도라면 과학자들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서 예방접종을 하거나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확진자가 다른 이에게 병을 전염시켰을지도 모른다는 ‘가해자’로서 느끼는 죄책감과 확진자를 향한 혐오의 시선은 의학 발전과는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지요? 그것은 가해자가 되는 것을 막기도 합니다. 확진자 역시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겨받은 ‘피해자’입니다. 이런 연결고리를 생각하면서 감염증에 걸린 사람들, 친구들에게 차별의 시선을 던지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최영화 아주대 감염내과 교수·<감염된 독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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