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책으로 배운 생물학, 몸으로 겪은 생물학

남녀 성향은 본성일까

개인 차이가 차별이 될 때

제1310호
등록 : 2020-04-28 19:14 수정 : 2020-04-30 10:33

크게 작게

남녀의 유전적 차이는 다양성의 일부로 존재해야 한다. 아빠는 회사 가고, 엄마는 차 마시는 고정된 성역할대로 그림을 그린 국내 장난감(왼쪽)과 잔디 깎고 페인트칠하는 능동적 여성상을 보여준 레고사의 블록. 류우종 기자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다니던 병원은 정부 지침을 엄격하게 준수해 현행 의료법 제20조 2항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나 임부를 진찰하거나 검사하면서 알게 된 태아의 성을 임부, 임부의 가족 및 그 밖의 다른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에 따라 태아 성별을 알려주지 않는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궁금증은 더해갔지요.

드디어 공식적으로 정보를 알 수 있었을 때, 의사는 무심한 말투로 아이 성별이 서로 다르다고 하더군요. 이후 지인들에게서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어머나, 잘됐다. 둘 다 한꺼번에 키우니 얼마나 좋아. 아들들은 호기심도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데 겁도 없어서 어찌나 사고를 치는지. 하지만 몸은 힘들어도 예민하지 않아서 감정노동은 덜하더라고. 커가면서 든든한 맛도 있고 말이야. 딸들은 감정적이고 예민해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완전히 삐져서 달래주느라 진이 다 빠지지만, 그만큼 눈치도 빠르고 야무져서 손이 훨씬 덜 가더라. 엄마 힘들 때 와서 위로해주는 건 딸밖에 없어.”

유전과 환경,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건

이 글을 쓰는 2020년 4월을 기준으로 전세계 인구는 77억 명이 넘었지만, 그중에 나와 동일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나답게 하고 남과 다르게 만드는 나만의 특성은 어디서 비롯됐을까요? 영국 생물학자 프랜시스 골턴(1822~1911)은 인간의 고유한 속성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이라는 용어를 제시했습니다. 타고나는 유전 혈통과 후천적으로 주어진 양육 태도는 인간에게 얼마큼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요?(참고로 골턴은 유전 혈통에 손들어줘 악명 높은 우생학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는 인간의 속성이 유전인지 환경인지를 두고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시기였습니다. 모든 것이 혈통으로 정해져 있으니 우수한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만 살아갈 당위성이 있다며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히틀러 같은 끔찍한 우생학 신봉주의자도 있었고, 어떤 아이든 조건학습으로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조절하고 키울 수 있다는 말을 호기롭게 내뱉으며 여러 아이의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한 존 B. 왓슨처럼 극단적 행동주의자도 있었습니다.

그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인류가 겨우 알아낸 사실은 본성이든 양육이든 하나만으로는 결정적인 카운터펀치를 날리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전적 특질이 비슷한 경우(같은 부모의 아이들이 서로 다른 부모에게 입양됐을 때) 환경 영향이 개인의 특성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고, 환경이 균질한 경우(서로 다른 혈통의 아이들이 같은 집에 입양됐을 때) 타고난 유전적 특질에 따라 같은 양육과 교육의 기회를 다르게 발전시켜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던 결과가 다시 증명됐다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유전과 환경이 복합적으로 결합한 산물입니다. 그중 유전자는 손댈 수 없지만 환경은 개선할 수 있습니다. 모든 아이는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피부색은 일단 정해지면 다른 색으로 바꿀 수 없지만, 피부색에 따른 자외선의 손상 정도나 인종차별은, 효과 좋은 자외선차단제의 개발과 차별을 금지하는 제도와 인식의 개선으로 얼마든지 없애거나 드러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본성과 환경이 모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은, 그렇기에 우리가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제도와 인식의 재정비로 인류가 겪었던 많은 불편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었습니다.

유전적 차이 긍정만 하면 폭력적 차별 된다

갓난아이가 한 명의 성인으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내외적 특성은 아이의 타고난 유전적 특질과 아이를 둘러싼 가정과 공동체가 제공하는 환경의 복합적 결과물이란 것은 이미 진리입니다. 이런 균형 잡힌 시각이 유독 아직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남녀의 생물학적 특성으로 인한 차이를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남성은 공격적이고 경쟁적이며 호전적이고 진취적인 ‘사냥꾼’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여성은 수용적이고 관계중심적이며 평화적이고 협력적인 ‘채집자’ 기질을 물려받았다고 설명하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남성의 뇌와 여성의 뇌는 사고방식이 다르니 애당초 상대가 나를 이해하리라는 기대를 접고 남녀 관계를 바라봐야 싸움이 덜 난다고 충고하는 연애조언서까지 남녀를 숫제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처럼 바라봐야 한다는 관점은 매우 익숙하지요.

물론 남녀는 같지 않습니다. 애초에 염색체 구성이 다르거든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사회는 염색체 구성이 다르다는 차이를, 그래서 어쩔 수 없으니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도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은근슬쩍 이용하려 한다는 의심이 듭니다.

공격자 수컷과 수용자 암컷의 대비는 구애 행동의 특성으로도 이어져 난잡한 수컷과 깐깐한 암컷을 전형적인 캐릭터로 인식하게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 모습이 실제 자연에서는 흔하게 있으니까요. 문제는 이런 모습이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것을 넘어, 그러니까 특정 성별이 보이는 왜곡된 성의식은 애초에 생물학적 본성에 기인하니 어느 정도 눈감아줘야 한다는 ‘원래 그러니까 어쩔 수 없잖아?’ 식의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쓰다보니 최근 다시 불거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무수한 상품화 행동과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착취 사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떠올라 혈압이 오르는군요. 하지만 이런 행동은, 우리가 어쩔 수 없었던 유전적 차이를 기술 발전과 제도·인식 개선으로 극복해왔던 인류 문명의 긍정적 발전 과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유전적 차이를 인정하는 데는 긍정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차이가 다양성의 일부로 존재할 때만이라는 상한선을 긋습니다. 개인의 차이가 물리적 다름이 아니라 차별이라는 사회적 악행으로 변질된다면, 그것을 막는 일이 인간성을 지키는 길이라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타고난 피부색의 차이가 개인 특성이 아니라 차별 요소로 받아들여진다면 이에 저항하는 게 윤리적으로 옳다고 말이죠. 유전적 차이는 인정해야 하지만 그것을 단지 인정만 하고 일련의 결과를 모두 수용한다면, 이는 오히려 엄청난 폭력적 차별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남녀 차이, 차이가 차이로만 남도록

1989년 러셀 클라크와 일레인 햇필드라는 두 학자가 혈기왕성한 대학생들에게 실험을 했습니다. 매력적인 남녀 보조 연구자들을 시켜 캠퍼스 안에서 무작위로 선택된 이성에게 접근해 호감을 산 뒤, 이렇게 묻게 했습니다. ① 나랑 데이트할래? ② 우리 집에 갈래? ③ 나랑 잘래? 그 결과, 데이트 신청의 경우 남녀 차이 없이 절반 정도가 긍정적인 답변을 했지만, 집에 초대하거나 하룻밤 관계를 요구할 때는 남녀의 답변이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짐작대로 남성들은 돌발적인 제안에도 상당수가 긍정을 표했지만, 여성은 매우 부정적으로 답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30년 넘도록 여러 나라에서 비슷하게 변주되며 남녀의 성적 행동 차이, 혹은 남성의 적극적인 성적 행동에 대한 본능적인 근거로 쓰였지요. 이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테스토스테론 렉스>를 쓴 유명한 심리학자 코델리아 파인은 여기서는 세 번째 질문이 아니라 첫 번째 질문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처음 보는 남성이 데이트를 신청했음에도 같은 제안을 받은 남성들과 거의 비슷한 비율로 여성들도 동의한 것 말이죠. 다시 말해, 여성도 우연한 만남과 이로 인한 일련의 사건이 벌어질 가능성에는 남성만큼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숨겨진 변수는 사회가 여성과 남성의 성적 일탈을 바라볼 때 완전히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입니다. 여성의 경우,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부정적 평판이나 사회적 낙인을 떠안을 위험이 크므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반면, 이 또래 남성들은 반대의 사회적 압력에 노출됩니다. 그들의 성적 일탈 본능이 높아서라기보다 오히려 그토록 매력적인 이성의 제안을 거절하면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을 수 있기에 일단 ‘예스’라고 대답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입니다. 이 경우 남녀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건, 그들의 타고난 유전적 특성이라기보다 사회적 잣대의 이중성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의 세 아이는 오늘도 자아를 쌓아가며 하루하루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이 성별에 기인하든, 성별과는 무관한 다른 유전자의 차이에 기인하든, 아이들을 둘러싼 세상과 상호 관계에 대한 것이든 말이죠.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의 타고난, 그래서 어쩔 수 없는 특징이, 아이를 규정하는 틀이나 잘못을 용인하는 허술한 도구로 쓰이지 않도록 주의하려고 합니다. 주어진 게 불공평하다면, 혹은 잘못됐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게 인간이 지성을 가진 이유일 테니까요.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한겨레21>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한겨레21>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한겨레21>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한겨레21>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한겨레21>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아래 '후원 하기' 링크를 누르시면 후원 방법과 절차를 알 수 있습니다.

후원 하기 https://cnspay.hani.co.kr/h21/support.hani

문의 한겨레 출판마케팅부 02-710-0543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책으로 배운 생물학, 몸으로 겪은 생물학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