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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직시

트럼프의 재선 예고한 디스토피아 드라마

가까운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드라마 <이어즈&이어즈>

제1308호
등록 : 2020-04-10 15:06 수정 : 2020-11-0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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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방송 BBC와 미국 방송 HBO가 공동 제작한 <이어즈&이어즈>는 2019년부터 2034년까지 세계의 변화를 그린 근미래 디스토피아 드라마다. HBO 제공

*이 글에는 <이어즈&이어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단 1분이면 충분하다. 왓챠플레이에서 공개된 영국 드라마 <이어즈&이어즈>의 도입부, TV 토론 프로그램에 참석한 사업가 비비언 룩(에마 톰슨)이 드라마 안팎의 시청자를 압도하는 데 필요한 시간 말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에 관한 질문을 받고 “저는 신경 좆도 안 씁니다.”(I don’t give a fuck)라고 내뱉은 지 20초 만에 그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다. 그런 말 하면 안 된다는 사회자 제지에도 비비언은 태연하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 못하는 거, 그게 문제 아닌가요? 저는 우리 집 쓰레기만 매주 수거되면 바랄 게 없어요.” 방청객 박수가 쏟아지고, 집에서 TV를 보던 누군가는 재밌어하며, 다른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린다. 가상의 세계, 불길한 징조, 낯익은 신호가 뒤섞인 악몽의 시작이다.

메르켈은 죽고, 트럼프는 중국에 핵미사일?

BBC와 HBO가 공동 제작한 <이어즈&이어즈>는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라이언스 가족을 중심으로 2019년부터 2034년까지 세계의 변화를 그린 근미래 디스토피아 드라마다. 스티븐(로리 키니어), 이디스(제시카 하인스), 대니얼(러셀 토비), 로지(루스 매들리) 네 남매와 그들의 자녀와 배우자, 할머니 뮤리얼(앤 리드)은 인종, 성적 지향, 직업, 계층, 정치 성향과 장애 여부를 포함해 마치 다양성의 총체처럼 구성된 가족이다. 비비언 룩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이용한 ‘가족 통화’로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특별한 날에는 한자리에 모인다. 하지만 이미 망가지던 세계에서 개인 삶은 예측할 수 없던 곳에서 무너진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된 이후의 상상은 트럼프의 재선과 함께 숨 가쁘게 치닫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상징적인 인물들이 사망하며, 급기야 트럼프는 중국이 지은 인공섬에 핵무기를 발사해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낸다. 그 현장에서 방사능에 피폭된 정치활동가 이디스는 방송에 출연해 시청자에게 묻는다. “세상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빨라지며 미쳐가는데 우린 멈추지도 생각하지도 배우지도 않고 다가올 재앙으로 질주하기만 해요. 이다음은 뭘까요?” 그러나 30년간 환경문제를 외쳐봐도 결국 북극 빙하가 다 녹게 만들어버린 인간들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선정적인 정치 선동에 열광했던 가족

유럽에서 극우와 극좌가 득세하고 폭동과 파산이 줄을 잇는 동안, 미국에서는 동성혼이 금지되고 로 대 웨이드 판결(임신중절 합법화의 토대가 된 판결)이 뒤집힌다. “민주주의는 잠깐의 이상이었음이 증명된 거야”라고 자조하는 이디스와 반대로, 비비언 같은 포퓰리스트에게 혼돈과 불안의 시대는 최상의 호기다. 철학자 조지프 히스는 <계몽주의 2.0: 감정의 정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서 말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가 믿는 것이 무엇이냐’가 ‘실제로 사실인 것이 무엇이냐’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이제 많은 정치인이 (자신들의 말을) 진실처럼 들리게 하려는 노력조차 내던져 버렸다.”

비비언 역시 거짓말과 비윤리적 발언을 밥 먹듯 하지만 그에게 고양된 로지를 비롯한 대중은 비비언이야말로 ‘체제를 부술 수 있다’고 환호하며 표를 던진다. 그러나 총리가 된 비비언이 세운 체제에서, 노동자이며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인 로지가 사는 저가 주택 단지는 우범지대 ‘레드존’으로 분류돼 철조망에 갇히고, 로지의 생계 수단마저 막막해진다.

이처럼 서서히 도달하는 지옥의 한가운데서 라이언스 가족의 최대 비극은 우크라이나 난민 빅토르(막심 발드리)와 연인이 된 대니얼이, 영국에서 추방당했던 빅토르를 밀입국시키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이른바 ‘문명사회’의 일원이던 대니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는 평범한 소망을 이루려다 순식간에 야만이 지배하는 세계로 휩쓸려 허무하게 죽는다.

코로나19가 지구를 휩쓰는 지금 우리가 체감하듯, 모든 것이 연결된 세계에서 타인의 삶과 죽음은 나의 삶 그리고 죽음과 무관할 수 없다. 세상이 어디로 치닫든 나 같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핑계 뒤에 숨는 건 너무나 쉽다. 그래서 혐오를 정당화하고 반지성주의에 흔들리고 선정적인 정치 선동에 열광해왔던 가족,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 뮤리얼은 일갈한다. “우리 탓이 맞아.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 축하한다. 다들 건배하자.”

뮤리얼이 가리킨 ‘우리가 만든 세상’은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의 세상이기도 하다. 차별에 찬성하고 ‘내 몫’이 아닌 고통은 외면하며 ‘우리 집 쓰레기 문제’만 챙기는 게 당연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회는 결코 안온하게 유지될 수 없다.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일간지 기자 출신이자 국제구호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했던 작가 김소민의 책 <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에는 오래전 자원봉사로 아동복지원에 갔을 때 울며 간절히 매달리려는 아기로부터 돌아 나온 순간의 기억이 등장한다. “그 아기에게 등을 돌렸을 때, 나는 내게도 등을 돌렸다.” 타인의 슬픔, 고통, 가난, 삶의 무게를 저울질한 순간은 그에게 오랜 부끄러움으로 남는다. “결국 자기는 속일 수 없으니까, 타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은 기억들은 나도 사람이 아님을 자신에게 증명하니까, 우리는 사실 사람으로 살다 죽고 싶으니까, 이 질문을 놓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덧붙인다. “그러면서 오늘도 또 실패한다.” 그러나 ‘또’ 실패한다는 것은 ‘또’ 시도한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누군가가 나와 같은 인간이라 여기기를 포기하는 만큼 세상은 나빠지고, 내 삶 역시 일그러진다. 이미 와 있는 지옥 같은 미래를 그려낸 <이어즈&이어즈>가 던지는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내일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오늘 무엇을 시도할 것인가.

최지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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