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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영수증

돈 없이 마음을 주는 법

경조사로 서울 다녀오면 한 달 식비 훌쩍

제1307호
등록 : 2020-04-04 17:32 수정 : 2020-04-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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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는 친구에게 남해바다에서 주운 유리와 조개로 장식품을 만들어 선물했다.
첫 신혼집은 물론 직장까지 모두 정리하고서 남해로 이주했지만, 여전히 도시에 남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가족을 비롯해 그동안 쌓아온 다양한 관계다. 새로 알게 된 사람 몇몇을 제외하면 여전히 남해는 별다른 연고가 없는 낯선 지역일 뿐이다. 가족과 친구 등 실제 더 많이 교류하는 사람은 대부분 남해보다는 서울 등 수도권에 거주해, 부부의 영수증을 정리하다보면 이주 뒤 ‘관계 비용’이 적잖이 고민된다.

이주하기 전에도 경조사나 친지들과의 만남 비용이 가계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긴 했다. 외식이나 쇼핑을 하는 일이 드물고,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도서관 가는 게 제일 좋아하는 취미였으니, 단둘이 생활하는 데 돈이 적게 드는 편이었다. 대신 명절이 끼어 있거나 지인 결혼식, 각종 모임이 있는 달이면 평소와 다르게 한 달 지출을 훌쩍 넘기는 일이 많았다.

물리적으로 같은 도시에 살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과, 멀리 떨어져 살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의 차이는 컸다. 서울에서 살 때는 약속 시각을 정해 만나고 헤어지면 그만이었지만, 남해로 이주한 뒤에는 장거리를 오가는 데 여러 비용이 더해져, 만남의 즐거움보다 만남에 드는 비용에 부담감이 앞서는 때가 많았다.

시골에서 적게 벌고 적게 쓰겠다는 우리 부부의 계획은 여기서 또 한 번 틀어져버렸다. 먼 거리 탓에 그동안 맺은 사회적 관계는 아주 홀쭉해졌다. 그런데도 서울과 남해를 오가야 하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찾아왔다. 생활비를 아껴보려고 매일같이 노력하다가도, 서울에 한 번 다녀오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남해에서 서울까지 한 사람 편도 버스비는 3만4900원. 일주일에 2만원으로 부부의 식탁을 차려도 충분했는데, 둘이 함께 버스를 타고 서울에 다녀오면 왕복 교통비가 한 달 식비를 훌쩍 넘겼다. 그동안 장바구니 앞에서 알뜰살뜰 고심해왔던 것이 한순간에 무색해진다.

먼저 귀촌한 몇몇 친구에게 이런 속사정을 털어놓으면 대부분 명절이든 친지 결혼식이든 굳이 먼 길을 나서 찾아가지 않은 지 이미 오래됐다고 했다. 그런 단호함이 부럽기도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을지 고민이 깊어진다. 어떻게 하면 경제적 부담이 앞서지 않으면서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가까운 지인이 서울에서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는데, 우리 부부는 이미 서울을 몇 번 오간 터라 몹시 지쳐 있었다. 그래서 얼마간의 축의금과 함께 평소 주고 싶었던 책, 직접 만든 장식품과 편지를 신혼집에 소포로 보냈다. 그것을 받은 친구의 마음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불편함을 안고서 억척스레 식장에 가기보단 작은 소포에 온전히 친구를 축하하는 마음만을 담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여전히 어떻게 관계에 ‘비용’을 들이는 대신 다른 ‘방식’을 더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나날이 작지만 다른 틈을 계속 찾아가다보면, 우리가 바라는 시골살이와 어우러지는 관계맺음의 방식을 발견할 수 있을까.

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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