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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

‘코로나19’ 다시 읽는 전염병을 다룬 소설

허구와 현실이 뒤섞인 ‘바이러스 묵시록’

제1304호
등록 : 2020-03-16 00:50 수정 : 2020-03-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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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백소아 기자
이건 허구인가, 현실인가. 이 소설을 다시 펼쳤다. <페스트>(1947), <눈먼 자들의 도시>(1995), <재와 빨강>(2010), <28>(2013). 고전과 현대문학, 각기 다른 시대에 태어난 이 작품들은 ‘전염병’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순식간에 파괴되는 일상과 다양한 인간군상을 세밀하게 그렸다. 전세계에 ‘코로나19’가 확산되는 2020년 3월, 다시 소환되고 있다. 이 소설들은 허구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다. 마치 오늘의 현상을 예측이라도 한 묵시록 같다. 소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인간의 내면을 끝까지 들여다보고 전염병이라는 재난 상황에 맞서는 인간의 무기는 무엇일까,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전염병 시대를 사는 현재의 질문이기도 하다. _편집자

연대와 저항, <페스트>

194×년 4월16일. 알제리의 작은 도시 오랑에 사는 의사 리유는 병원에서 죽은 쥐 한 마리를 본다. 이는 페스트의 징조였다. 이후 공장과 창고에서 쥐 사체가 쏟아지고 원인 불명의 전염병이 퍼진다. 매일 사람들이 죽는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감염돼 다른 사람에게 균을 퍼뜨리는 그들은, 서로에게 페스트이며 가해자가 된다. 오랑은 봉쇄된다.

페스트 사태가 길어지자, 시민들은 극한의 절망과 공포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는다. 의사 리유, 공무원 그랑, 종교인 파블루 등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페스트 사태를 해결해가는 대책기구 ‘보건대’를 꾸리고 온 힘을 다해 전염병과 싸운다.

재난소설의 효시로 불리는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김화영 옮김, 민음사 펴냄)의 이야기다. 이 소설에는 ‘위대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묵묵히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 리유, 성실한 말단 공무원 그랑 등 모두 소시민이다. 작가는 단 한 명의 영웅을 위한 서사가 아니라 고립된 도시에서 죽음, 고립과 이별에 대항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저항과 연대 정신을 강조한다.

다른 도시에서 오랑에 취재하러 온 기자 랑베르가 오랑을 탈출하려던 계획을 접으며 이렇게 말한다.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죠. 페스트는 우리 모두에게 관련된 것이니까요.”

페스트 같은 재난에 맞서려면 각자도생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같이 살아남기 위해 소소한 일이라도 같이 해내야 한다는 것, 그럴 때만 인간이 인간으로서 실존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주인공 리유 역시 전염병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창한 구호나 계획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노력하면 할 수 있는 것이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성실함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다시 주목받는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소설들. 박승화 기자
어둠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 <눈먼 자들의 도시>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조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정영목 옮김, 해냄 펴냄)는 실명 바이러스가 퍼진 도시에서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그린다.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운전하던 한 남자가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다. 온통 빛만 보이는 백색 실명이 된다. 그와 접촉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앞이 보이지 않는다. 국가는 이들 감염자를 임시 수용소인 정신병원에 격리한다. 볼 수 있는 사람들과 세계에서 완전히 차단해버린다.

그러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은 점점 더 빨리 퍼져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병원에 오는 사람은 점점 늘어난다. 그곳의 풍경도 달라진다. 눈이 먼 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서로 고통을 나누고 의지하며 도와가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식욕, 성욕, 배설욕 같은 원초적 욕구들을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해결한다.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그들은 대담해진다. 모든 규칙과 규범, 인간으로서의 윤리는 실종된다.

그곳에는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가 있다. 그는 눈먼 사람들의 눈이 되어준다. 끝까지 눈먼 자들을 위해 희생한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온다. 그들 사이에서 권총 등 무기를 가진 이들이 권력을 가진다. 그들은 배급되는 식량을 독점한다. 먹을거리를 얻으려면 귀중품을 바치고 여자들을 보내라고 요구한다. 식량을 얻기 위해 남자들은 귀중품을 내놓고 여자를 바치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이 작품에는 수용소에 강제 격리돼 이익 챙기기에 혈안이 된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군인들, 그리고 전염을 막기 위해 비인간적 수용 조처를 내린 권력자들이 나온다. 결국엔 이들 모두 눈이 멀었다. 물질적 소유욕에 눈이 멀었을 뿐 아니라 그 소유를 위해 인간성조차 잃어버린다는 경고의 메시지 같다.

시력을 잃고 인간성마저 상실한 사람들을 향해 작가는 소설 마지막에 의사의 아내 입을 빌려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소설은 인간이 폭력과 이기주의에 빠지면 눈을 뜨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산다고 말한다. 의사의 아내처럼 불완전하고 약한 다른 이들과 돕고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때 진정으로 눈뜬 사람이 된다고 강조한다.

파멸의 시간, <재와 빨강>

방역업체 약품개발원으로 일하는 남자는 파견근무를 발령받고 C국의 본사로 떠난다. 마침 C국은 감기와 유사한 전염병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마비되고 쓰레기가 넘쳐난다. 배정받은 제4구의 숙소에서 출근 명령을 기다렸지만, 본사 인사담당자 ‘몰’은 연락이 없다. 아는 이 없는 낯선 곳에서 홀로 남겨진 그는 아내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쫓긴다. 쥐가 들끓고 쓰레기가 넘치는 공원과 하수도에서 지내는 부랑자 신세가 된다. 그는 쉽게 쥐를 죽이듯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인간을 서슴없이 죽이는 사람이 되어간다. 전염병이 번지고, 쓰레기로 폐허가 된 도시, 쥐가 들끓는 도시에서 이유도 모른 채 몰락해가는 남자의 생존기를 그린 편혜영 작가의 소설 <재와 빨강>(창비 펴냄)의 이야기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 유행을 모티브로 태어난 이 소설은, 극단적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엄성을 잃고 나아가 극한의 외로움에 처하게 되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이 발 딛고 있는, 전염병이 번지는 공간은 두려움과 불안의 장소다. 사람들은 서로 의심하고 거리를 둘 뿐 아니라, 자신이 감염원으로 격리돼 고립될까봐 전전긍긍한다. “전염병이 사람들에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질병을 옮겨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른 사람을 의심하게 한 것이었다.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은 잠정적인 병균이었으며 집 밖은 바이러스가 부유하는 더럽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다.”

주인공 남자를 통해 생에 대한 열망이 파국을 부르는 냉혹한 서사를 보여준다. “도덕과 질서와 교양과 친절이 정당한 세계에서 약탈과 노략질과 폭력과 쓰레기가 정당한 세계로 진입”한 그는 살인도 서슴지 않는 괴물이 되어간다. 현대사회의 내면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폭력적 성향, 그리고 이를 약자를 통해 표출하는 사회병리적 사건의 반복을 상징한다.

2008년 개봉한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는 조제 사라마구가 쓴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CM엔터테인먼트 제공
전염병처럼 번지는 폭력의 광기, <28>

서울과 인접한 인구 29만의 화양시. 정체불명의 인수공통전염병이 창궐한다. 개와 인간 사이에 서로 전염되고, 발병하면 시뻘건 눈으로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죽는다. 개는 버려지고 생매장당한다. 버려진 배고픈 개들은 사람들을 공격한다.

화양시에서 생겨난 전염병이 서울을 포함한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지 못하게, 국가는 군대를 동원해 도시를 봉쇄한다. 결국 화양시는 점차 이성을 잃은 지옥이 되어간다. 개와 사람에게 공통 전염된다는 이유로 개들이 무참하게 살처분당하고, 봉쇄된 도시에서는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아비규환이 펼쳐진다. “서로 죽이고 서로 분노하고 절망하고 공포에 떨며 고속으로 공멸해”간다.

<7년의 밤> <종의 기원>과 함께 정유정 작가의 ‘악의 3부작’으로 꼽히는 소설 <28>(은행나무 펴냄)은 도시 ‘화양’에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발생하면서 28일간 벌어지는 생존의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유기견을 구조하는 수의사 재형과 기자인 윤주,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폭력의 상처 때문에 사이코패스가 된 동해, 간호사 수진과 119 구조대원 기준, 늑대개 링고 등 6개의 다중 시점으로 서술된다.

또 하나의 목소리는, 전염병으로 인해 배제되고 고립된 화양 시민들이다. 거리에 나온 그들은 부르짖는다. “화양 시민은 개가 아닙니다. 인간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우리를 개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우리를 병든 땅에 가둬 생매장시키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총을 쏘고 있는 것입니다.”

개 링고를 통해서는 희생되는 동물의 목소리를 전한다. 그들이 느끼는 극한 상황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담아낸다. 작가는 이런 작고 소외된 생명들의 목소리를 통해 다수의 안전을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인간의 안전을 위해 다른 종의 생명을 빼앗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따져 묻는다.

결국 소설이 말하고 싶은 건 공생이다. 인간과 개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함께 살아갈 방법을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공포와 전염병처럼 번지는 폭력의 광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 반대편에는 ‘생명’을 지키려고 헌신하는 수의사 재형 같은 사람이 있으리라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건 ‘인간에 대한 희망’이기에.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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