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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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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모임 이름이 ‘샤머니즘’인 이유

대기업 3곳이 수익 97% 가져가는 한국영화계,
제2·제3의 봉준호는 나올 수 있을까
등록 2020-02-22 15:03 수정 2020-09-15 05:28
2016년 11월 박근혜 정권 퇴진 집회를 기록하기 위해 촬영하는 박소현 감독. 박소현 감독 제공

2016년 11월 박근혜 정권 퇴진 집회를 기록하기 위해 촬영하는 박소현 감독. 박소현 감독 제공

제2·제3의 봉준호가 나올 수 있을까.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을 계기로 영화계에서는 ‘포스트 봉준호’가 나올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월17일 영화인 59명은 영화산업의 불균형을 해소하자는 ‘포스트 봉준호법’을 제안했다. CJ E&M 등 대기업 3곳이 영화 수익의 97%를 가져가는 독과점 구조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주요 내용은 대기업의 영화 배급과 상영 겸업 제한,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금지, 독립·예술영화와 전용관 지원 제도화다. 현재 블록버스터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을 비롯해 예술·독립영화 등 다양한 영화들이 상영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영화계 다양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 안에서 영화산업의 미래로 불리는 독립영화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 한국 영화계에서 독립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직면한 현실은 어떠한가. 독립영화 <야근 대신 뜨개질>(2016) <구르는 돌처럼>(2018) 등을 만든 박소현 감독이 글을 보내왔다.

‘빵-끗!’

휴대전화 채팅 알림음이 울렸다.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 내놓은 물건을 사겠다는 구매자의 메시지가 떴다. 나는 요즘 편집하던 컴퓨터나 촬영 장비를 포함해 수저 세트, 책장, 청소기, 컵, 영화 서적 등을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리느라 바쁘다. 이게 요즘 내 주요 일과이고 주요 수입 활동이다. 물건을 사기로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옷을 챙겨 입고 나섰다. 중고 거래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감독상과 작품상을 포함해 모두 4개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이 기쁜 뉴스 덕분에 각종 매체와 소셜 미디어가 뜨거웠다.

다큐멘터리, 여성, 비청년, 비혼

티브이 뉴스에 등장한 한 패널은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식을 전하며 “이제 대한민국은 의심할 여지 없이 문화콘텐츠 강국이 되었다. BTS도 세계를 제패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은 봉준호 감독에게 어려서부터 문화적 경험이 쌓여온 덕분”이라고도 했다.

이 말을 듣고 여러 질문이 생겼다. 우리는 정말 문화콘텐츠 강국에서 살고 있는가? 문화콘텐츠 강국의 모양새는 어떠해야 하는가? 한 사람의 문화적 경험과 향유는 보편적 경험이 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나는 독립영화 감독,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 여성, 이제 청년도 아니고(만 39살 이상), 기성세대인 듯 기성세대 아닌 것 같은, 결혼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초·중·고등학교, 지역미디어센터 등에서 영화제작 교육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 강의를 하는 나에게 학교 방학 기간인 12∼3월은 가장 힘든 시기다. 영화작업을 마치고 나니 그마저도 일이 없는 때이다. 이 시기에 나와 같은 상황의 동료 창작자들은 대출 정보와 주택청약 등 다양한 지원 정보를 공유한다. 하지만 그런 지원은 대부분 만 39살까지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정책들이다. 40대이고 비혼 1인가구인 나는 신청 자격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예술인복지재단을 통해 최대 300만원까지 가능한 긴급생활안정자금 융자 신청을 했다. 연소득이 500만원 이하라는 거 빼고는 가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없어서 심사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겠다.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것만으로는 생계 유지뿐만 아니라 창작자로서 관객을 만나는 일도 힘겹다. 2013년 봄 촬영을 시작해 2015년 9월 완성해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했던 첫 장편 연출작 <야근 대신 뜨개질>은 2016년 전국 14개 관에서 개봉했다. 개봉관 3곳은 경기도 지원사업에 참여해 작품 간 경쟁에서 선택돼 얻었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개봉했지만 2주 만에 막을 내렸다. <야근 대신 뜨개질>은 전체 예산이 1억원이었다.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2천만원과 영화진흥위원회에서 1200만원을 지원받고 나머지는 크라우드펀딩 300만원, 개인 후원, 카드 빚으로 충당했다.

박소현 감독의 독립영화 <야근 대신 뜨개질>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박소현 감독의 독립영화 <야근 대신 뜨개질>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왜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 안 하나요?”

‘독립’ ‘다큐멘터리’ ‘주인공 모두가 30대 여성 직장인’,심지어 영화 포스터에도 그런 이유로 주인공들 사진(모습)이 노출될 수도 없었던, 이런 나의 영화를 가까스로 배급해줬던 회사는 자체 극장이 없었고, 영화를 상영해줄 극장을 잡는 일은 무척 어려웠을 거다. 총관객 수는 1400여 명밖에 안 됐다. 물론 개봉 전에 공동체 상영, 영화제 상영 등에서 본 관객이 있지만 그 수는 공식 집계되지 않는다. 흥행 참패를 기록하고 내 영화를 배급하던 회사에서는 준비 중인 다음 영화도 극장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려 한다고 큰일이라는 말까지 했다. 내 영화 때문에 개봉관 확보가 어렵게 되었다던 그 영화는 2016년 제69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였다.

그럼에도 <야근 대신 뜨개질>이 꽤 오래 극장에 걸릴 수 있었던 것은 독립예술영화극장들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중간에 극장 하나가 영업을 중단하고 말았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민간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만이 <야근 대신 뜨개질>을 가장 오래 두 딜 동안 걸어주었다.

시간이 흐르고, <야근 대신 뜨개질>은 비록 비극장 상영이지만 지금까지도 공동체 상영이라든가 순회 상영 등이 되는 것 같다. 참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만 관객을 모으지 못했던 내가 받을 수 있는 영화 수익금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거의 없다. 어쩌다 초청되면 교통비와 약간의 초청비를 받을 뿐이다. 하지만 공동체 상영을 요청하는 커뮤니티들에서 상영료와 초청료를 모두 마련하기는 부담되는 일이다. 감독 초청 예산까지 있는 공동체 상영 기획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내 영화가 어디서 어떻게 상영되고 있는지 사실 잘 모른다. 비교적 최근에 공동체 상영회에서 만난 관객 한 분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할 생각은 안 하나요? 그러면 사람들이 더 많이 볼 수 있을 텐데요. 너무 마케팅을 생각 안 하시는 거 아닌지요.”

“아, 이 영화는 2016년 극장에서 개봉했습니다.”

그분의 질문을 받으며 다시 나도 묻고 싶다. 문화콘텐츠 강국이란 뭘까. 다양성이 존중받으며 존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거 아닌가. 배제되는 것이 아닌, 독점하는 것이 아닌, 온전히 그 특성, 모습대로 존중받으며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것은 비단 창작자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관객 처지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형적인 제작, 배급 구조 속에 관객은 선택할 수도 없는,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만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볼 수 없는 영화와 작업자, 사람이 너무 많다. 보이지 않는 것, 볼 수 없는 것이 가져다주는 상상력의 부재는 차별과 혐오를 생산해낼 뿐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회가 정말 문화 강국인가?

연속 작업 실험의 답

첫 장편 연출작을 그렇게 내보내고 나는 연달아 <구르는 돌처럼>(2018),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2019)라는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두 편을 더 만들었다. 2016년 개봉 이후 1년 반 만이니 거의 세 편을 연달아 만든 셈이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근 몇 년 동안 연속해서 작업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실험에 대한 답은 ‘어렵다’는 것이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 일은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해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것이 어렵다. 결국 생계를 위해 했던 일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제작 지원을 어렵게 받더라도 인건비를 책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금액이 적은 실정이다.

영화작업을 계속할수록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렇지 않다면 온전히 작업에 집중해서 완성할 수 없는 현실. 그렇게 나의 정체성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생계를 위해 직업이 따로 있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해 관객을 만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전에 얼마의 제작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그렇게 제작을 시작하고 완료할 수 있었다는 것, 또 그것이 있었기에 강의를 나갈 수 있었고, 지금처럼 이런 지면을 통해 이야기라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창작자가 너무 많다. 이제 시작하려는 창작자들에게 벽은 훨씬 더 견고하고 높다. 각자의 사정은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하다. 작업의 방식과 형태도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현장을 지키다 돌아가신 분도 많다. 서로가 서로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게 죄책감을 느끼면서 또 서로 경쟁하는 구조 속에 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지속가능성에 회의를 느끼고 떠나간 친구가 너무 많다. 오늘도 주변 동료들은 카메라를 잠시 내려두고 창작 활동과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 사무실 청소를 하거나 사무 보조 업무를 하거나 건설현장에서 일한다. 영화 창작자뿐 아니라 영화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여성은 쉽게 돌봄 노동의 위치에 놓이게 되면서 경력 단절로 어느새 사라지는 이가 많다. 그들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창작할 수는 없을까.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창작의 삶은 지속가능할 수 없을까.

괜찮아, 타로가 있잖아

얼마 전 30~40대 여성감독 몇 명과 일명 ‘샤머니즘’ 모임을 만들었다. 창작자로 온전한 일상이 가능할지 불안해하며 평소 샤머니즘에 기대오던 이들이 서로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보자는 취지였다. 결국 현실의 돌파구는 샤머니즘뿐인 걸까? 동료 감독에게 주문처럼 말했다. “괜찮아, 타로가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줄 거야.”

박소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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