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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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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는 무지개 너머로 날아갔을까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 역 주디 갈런드 ‘오버 더 레인보’
실제 삶 비극이었지만 “꿈꾸던 곳을 향해 걸어가는 노래”
등록 2020-02-22 14:49 수정 2020-05-02 19:29
퍼스트런 제공

퍼스트런 제공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There’s a land that I heard of once in a lullaby/ Somewhere over the rainbow skies are blue/ And the dreams that you dare to dream really do come true~”(무지개 너머 저 높이 어딘가에 그 옛날 자장가에서 들었던 아름다운 나라가 있어요. 무지개 너머 파란 하늘 어딘가에선 당신이 꿈꿔온 것들이 이뤄져요.)

어릴 때 흑백텔레비전에서 이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 (1939) 주인공 소녀 도로시의 목소리는 참으로 고왔다. 무지개 너머 파란 하늘 어딘가로 당장 날아가고만 싶었다.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이상향, (Over The Rainbow)는 그런 노래였다. 이 노래는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도로시를 연기하며 노래를 직접 부른 주디 갈런드는 아카데미 특별상(아역상)을 받았다. 언뜻 들으면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지만, 그 뒤엔 아프고 어두운 진실이 숨겨져 있다. 주디 갈런드의 삶이 그렇다.

2살 때 남들 앞에서 크리스마스캐럴을 부르며 무대 인생에 발을 들였다. 3살 때는 두 언니와 함께 3인조 그룹 ‘검 시스터스’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3살 때 영화제작사 엠지엠(MGM) 오디션에 합격해 전속 연예인이 됐다. 이즈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딸을 가혹하게 내몰았다. 연기와 노래를 병행하던 그는 17살 때 로 일약 스타가 됐다. 천상에서 내려온 목소리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는 무지개 너머 어딘가로 훌쩍 올라선 것만 같았다.

영화사가 ‘소녀로 보이게’ 학대

하지만 는 역설적으로 그의 삶을 망친 영화다. 영화사는 그가 가녀린 소녀처럼 보이게 하려고 무리한 식이요법으로 발육을 막았다. 살을 뺀다는 이유로 하루에 한 끼만 주며 담배를 네 갑씩 피우도록 강요했다.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고 장시간 촬영을 강행했다. 심신이 황폐해진 그에게 주어진 건 각성제와 우울증 약이었다. 이는 훗날 약물중독으로 이어진다. 성희롱과 성추행도 수시로 이뤄졌다. 그를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주변에는 그를 돈벌이에 이용하려고 안달난 인간들만 득시글거렸다.

그는 지옥과도 같은 삶에서 탈출하고자 이른 나이인 19살에 밴드 리더인 데이비드 로즈와 결혼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못 가 이혼하고 영화감독 빈센트 미넬리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딸까지 낳았으나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세 번째 결혼은 프로듀서 시드니 러프트와 했다. 딸과 아들을 낳았으나 역시 또 이혼했다. 네 번째 결혼은 영화배우 마크 헤런과, 다섯 번째 결혼은 프로모터 미키 딘스와 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지 못했다.

는 그 말고도 무수히 많은 가수의 목소리로 다시 불렸다.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한 곡은 임펠리테리의 버전이다. 화려한 테크닉의 속주 기타리스트로 이름난 크리스 임펠리테리가 이끄는 록 밴드로, 1988년 데뷔 앨범 《스탠드 인 라인》(Stand In Line)을 발표했다. 여기에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실었는데, 이는 를 가사 없는 연주곡으로 담은 것이었다. 주디 갈런드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없지만, 그래서 이 곡이 지닌 멜로디의 위대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임펠리테리의 기타는 마치 노래하는 것만 같았다.

영화 젤위거, 주연상 휩쓸어

하와이 원주민 출신 가수 이즈라엘 카마카위올레 버전도 참 좋아한다. ‘이즈’(IZ)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는 우쿨렐레를 세계적으로 대중화한 하와이 국민가수다. 몸무게가 343㎏이나 되는 거구가 앙증맞은 우쿨렐레를 치며 노래하는 음성은 천사의 목소리처럼 곱다. 주디 갈런드 못지않다. 지나친 몸무게 탓에 그는 1997년 38살 나이에 요절했다. 유튜브에서 그의 공식 뮤직비디오를 찾아보면, 생전 연주 모습과 함께 장례식 장면도 나온다. 하와이 사람들이 바다로 나와 ‘IZ’라고 새긴 깃발을 흔들며 환호하는 가운데, 그의 유골이 바다에 뿌려진다. 그는 무지개 너머 어딘가로 갔을 것이다.

영화 (3월12일 개봉)는 주디 갈런드의 삶을 그렸다. 러네이 젤위거가 주디 갈런드를 연기했다. 그는 노래를 직접 소화하기 위해 공식 리허설 1년 전부터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후두염, 성대 긴장, 염증, 스트레스를 묵묵히 견뎌가며 자신만의 를 만들어갔다. 결국 그는 거의 모든 영화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봉준호 감독의 이 4관왕에 오른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러네이 젤위거는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주디 갈런드는 생전에 이런 영광스러운 상을 누리지 못했지만, 지금 우리가 그의 유산을 기리고 있기 때문에 (하늘에서) 축하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의 영웅 갈런드에게 이 상을 바친다.”

영화는 주디 갈런드의 마지막 쓸쓸하고 처절한 삶을 조명한다. 미국에서 퇴물 신세가 된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쇼를 이어간다. 1969년 런던에서의 마지막 무대에서 그는 말한다. “이건 늘 꿈꾸던 어떤 곳을 향해 걸어가는 노래다. 그게 우리 매일의 삶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는 희망에 관한 노래다.” 그리고 를 부르기 시작한다. 도중에 울먹이느라 노래를 멈춘다. 멈춘 노래를 이어가는 건 관객이다. 외롭고 지친 갈런드의 곁엔 그와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무대가 있고 6개월 뒤 그는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 그의 나이 47살이었다.

47살에 떠난 우리의 영웅에게 바치는 노래

“If happy little bluebirds fly beyond the rainbow/ Why, oh why can’t I?”(행복한 작은 파랑새들이 무지개 너머로 날아가는데, 왜 나는 그럴 수 없을까요?)

이제야 의 노랫말을 오롯이 느낀다. 그는 분명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서 행복한 파랑새처럼 날고 있을 것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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