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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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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방탄소년단 춤을 포기했을까

재밌는 건 다 빠지는 나잇값,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된 ‘중년 여자’
등록 2020-02-15 15:45 수정 2020-05-02 19:29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주책없을까?’ 트레이닝복을 담은 비닐봉지를 보니 그런 거 같다. 방탄소년단 춤만 가르쳐준다는 댄스교실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이돌’ 안무를 배우려고 했다. 내가 추면 호객하는 풍선인형이 미친 듯 바람에 날리는 신산한 풍경이 되겠지만, 좋아하면 따라하고 싶다. 강의 신청하기 전에 몇 번이나 확인했다. “40대도 가도 돼요?” 분명 강사가 된다고 했는데, 댄스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재밌는 건 다 빠지는 나잇값

수강생은 다섯 명, 딱 봐도 다들 20~30대다. 보라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선생님이 쉽게 바꾼 안무를 알려줬다. “여기서 개다리 하며 앞으로.” 다른 건 몰라도 개다리는 원래 잘했는데 꼬였다. 머리가 다른 데 가 있다. ‘한심한 아줌마로 보면 어쩌지?’ 쉬는 시간에 다들 방탄소년단 게임 이야기를 하는데 낄 수가 없다. 자꾸 존재가 ‘민폐’ 같다. 방탄소년단 기사들에 달린 댓글 몇 개가 떠올랐다. “국뽕에 취한 아재짐(아저씨+아줌마).” 내 ‘아이돌’ 춤은 개다리에서 끝났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이 행동이 중년 여자 ‘나잇값’에 맞는지 자꾸 스스로 검열하게 된다. 그 ‘나잇값’은 쓸쓸하다. 재밌는 건 거의 다 빠진다. 40대가 되니 아줌마나 어머니로 불리며 제3의 성이 되는데 남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날 그렇게 취급한다.

드물게 65살 여성의 결핍과 욕망을 담은 구병모의 소설 에서 세상은 ‘아줌마’를 이렇게 본다. “환승역에서 흔히 그렇듯 사람들은 서로의 등을 밀치며 하차하는데, 양손에 보따리를 든 한 무리 중년 여성들이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본능으로 하차 완료까지 기다리지 않고 몸을 모로 틀어 비집고 들어오느라 출입문은 어수선하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책

에서 “(부정적 고정관념이 붙은 ‘낙인자들’은) 더 넓은 바깥 사회의 기준을 내면화해 다른 사람들이 그의 결점으로 보는 것에 상당히 민감하게 신경 쓰도록 훈련된다”며 “그는 자신이 갖추어야 할 것을 결핍했다는 데 동의하고 마는데 이때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고 썼다.

‘중년 여자’는 어느새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됐고, 내가 학습한 세상의 시선으로 내가 날 본다. 사랑, 열정, 패기, 도전, 희망 같은 낱말은 ‘젊음’과 짝패를 이룬다. 내 욕망은 그대로인데, 나랑은 자꾸 멀어지는 것만 같은 낱말들이다.

“나이 들어가니 깜박깜박해. 어제 일도 가물가물.” 나는 왜 이런 자폭 개그를 할까? 따지고 보면 20대 때도 기억력이 나빴다. 그땐 “젊어서 그래”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 기억력은 더 나빠졌을까? 김지혜가 쓴 에서 편견이 개인의 실행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실험들이 나온다. 미국에서 수학시험 점수가 같은 남녀 참가자들에게 수학문제를 풀게 했다. “성별에 따른 수학능력 차이를 보려 한다”고 했더니 여학생들의 성적이 떨어졌다. 저자는 “통념을 이겨야 한다는 부담이 수행을 방해했다”며 “어떤 고정관념을 내면화하느냐에 따라 본인의 역량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마사 누스바움은 책 에서 나이듦에 대한 고정관념을 듣고 기억력과 인지능력 테스트를 받으면 평소보다 낮은 점수를 받게 된다고 썼다. 고정관념 탓에 실행능력이 낮아지고 이는 다시 고정관념을 다진다.

30대 이하 대 40대 이상

“4천 가닥에 600만원이래.” 40대 후반인 친구는 결심했다. 엠(M)자형 탈모가 진행 중인데 머리카락을 심기로 했다. “젊어 보이잖아.” 원래 소파 일체형으로 디자인된 몸인데 요즘엔 플랭크(엎드린 상태에서 몸을 어깨부터 발목까지 일직선이 되게 하는 운동)를 하네, 팔굽혀펴기를 하네 난리다. 컨설턴트인 이 남자는 불안하다. 50살이 되면 알아서 짐 챙겨 회사에서 나가는 분위기다. 사장의 ‘젊은 아이디어’ 타령이 나가란 소리 같단다. 머리카락 4천 가닥은 경쟁력을 갖추려는 몸부림이다. 고령화 문제를 다룬 기사들을 보면 “생산인구 감소”라고 쓴다. 늙어서 일을 못하나, 일할 데가 없어서 못하나? 그 ‘생산’은 뭘 말하는 걸까? 손주 육아를 도맡는 그 많은 ‘할머니’들은 ‘생산’을 하고 있나 안 하고 있나?

‘인적자원’으로서 가치를 이어가려면 주름도 한땀 한땀 관리해야 한다. 그냥 늙는 건 자기관리에 실패한 증거다. 김도현은 책 에서 신자유주의를 두 시대로 나눠 설명한다. 먼저 경쟁이 일상까지 속속들이 스며들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꾼다. 비정규직이 늘고 사회보장은 준다. 이어 누가 강요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쥐어짜는 ‘인력자원’ 노동자가 등장한다. ‘능력 자본’을 키우기 위한 ‘자기개발’ 목록은 끝이 없다. 관리할 수 없고 왜 관리해야 하는지 모를 것까지 관리하란다. 시장 밖으로 내쳐지면 그 책임은 개인이 진다. 뭔진 모르겠지만 하여간 자기관리에 실패했으니까. 40대에 들어선 친구들은 눈 밑 지방을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이건 자기 결정일까 아닐까?

자기개발에 성공하면 ‘꼰대’가 될 수 있을까? 꼰대는 아무나 못 된다. 지위가 있어야 한다. 듣기 싫더라도 들어줘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늙어감’의 체감온도는 계급과 성별에 따라 다르다. 정희진의 책 을 보면,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몸으로 환원하지만 남성은 “행위하는 주체로 정체성을 획득”한다. “여성적 자원인 몸은, 소멸하는 유한한 자원이지만 남성의 자원은 그렇지 않다. 남성은 일생 동안 남성으로 산다.” 텔레비전만 켜도 알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조사해보니, 7개 채널 종합뉴스에서 여성앵커는 10명 중 8명이 30대 이하, 남성앵커는 10명 중 9명이 40대 이상이었다.

누가 어머니라 부르며 연애하자고 할까

“나는 당신 어머니가 아니야.” 구병모의 소설 의 주인공 ‘조각’은 살인청부업자인데 나이가 65살이 되니 가는 데마다 ‘어머니’란다. 그럴 때마다 까칠하게 대꾸한다. ‘어머니’는 존경을 가장한 굴레다. 일테면 누가 어머니라 부르며 연애하자고 할까? 예전엔 날카롭고 냉철한 처리에 “손톱”이라 불렸던 그가 이제 “치매 아니냐, 칼 대신 포크 들고 나가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듣는다. ‘조각’은 한 20대 청년과 목숨 건 대결을 벌인다. 이 소설을 내게 권한 20대는 이렇게 말했다. “왜 나는 주인공이 당연히 비극을 맞이할 거라 생각했을까?”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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