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확률, 당사자에겐 0% 아니면 100%

불확실한 확률에 불신이 더해지면 공포는 증오로
등록 2020-02-03 16:24 수정 2020-05-02 19:29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심장수술을 앞둔 정봉을 동생이 위로하고 있다. tvN 화면 갈무리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심장수술을 앞둔 정봉을 동생이 위로하고 있다. tvN 화면 갈무리

인기 드라마 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정봉은 선천성 심장병을 앓아 주기적으로 수술받아야 합니다. 처음 수술받을 때는 가족 모두 노심초사했지만, 몇 번째인가 재수술이 반복되니 이 또한 일상이 되지요. 그날도 그런 밤이었습니다. 심장에 장치한 기계의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간단한 수술을 앞둔 밤이었죠. 여러 번 수술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불안해하는 정봉에게 동생 정환은 말합니다. 자신이 알아봤는데, 이 수술이 잘못될 확률은 3%도 안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요. 자신만만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봉은 답합니다. 아이가 선천성 심장병에 걸릴 확률은 2%도 안 된다고, 그래서 그 3%의 확률이 너무나 무섭다고 말입니다. 확률이란 그런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전부인 그런 것.

남의 확률, 나의 확실

우리는 일상에서 확률을 무의식적으로 활용하며 살아갑니다. 주식이나 펀드, 부동산에 투자할 때만 향후 손익을 가늠하는 게 아닙니다. 당장 오늘 무얼 먹고 입고 쓰고 말할지 끊임없이 돈과 효용성과 시간과 기회비용 사이에서 저울질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 중 하나를 택해 확실한 현재로 만들어 바꿀 수 없는 과거로 넘기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이니까요. 그렇기에 미래를 대상으로 하는 확률은 태생적으로 불확실성을 품습니다. 무엇이 확실해진다면 이미 확률로 가늠한 미래는 의미 없어지는 시점일 테니까요.

그렇기에 확률은 절대 100%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확률을 자기가 원하는 확실한 현실로 바꾸기 위해 관습에 따르거나 직관에 기대거나 조언을 구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합니다. 이때 흔히 과학적으로 제시된 것이 과거 타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통계치입니다.

통계치는 데이터와 구하는 방식에서 차이는 있지만, 내가 하려는 일이 어떤 경로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지 소수점 아랫자리까지 분명하게 숫자로 보여줍니다. 따라서 공공부문에서 투자하거나 율령을 정비할 때 통계 결과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는 것은 해당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진짜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기존 통계 수치를 이용만 하는 외부의 절대자가 아니라, 그 수치를 구성하는 데이터가 되어 수식 내부로 들어가는 경우, 대개의 통곗값과 확률 가능성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무의미해지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무지에 공포가 더해지면 증오가 끓어넘친다. http://pendyman.com 갈무리

무지에 공포가 더해지면 증오가 끓어넘친다. http://pendyman.com 갈무리

비껴간 확률의 잔인함

내가 낳은 세 아이는 모두 현대의학의 결정체입니다. 체외수정 방식을 이용한 보조생식술, 다시 말해 시험관아기 시술로 얻은 아이들이니까요. 결혼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 여성이 그렇듯 나도 아이란 그냥 때가 되면 생기는 거라고, 거기에 어떤 노력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좀더 가지고 싶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기에 원하던 시기보다 일찍 아이가 찾아와 인생 계획이 어긋날까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국가건강정보포털 정보에 따르면, 보통 여성이 배란 시기에 관계를 맺었을 때 임신할 가능성은 20~25%입니다. 별다른 피임을 하지 않는 부부라면 결혼 1년 안에 임신할 확률은 90% 정도입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확률이란 것은 나를 비웃듯이 비껴가 소수 쪽에 들게 했습니다. 확률과 통계는, 그저 그 수식을 구성하는 하나의 수치에 불과한 나라는 개인이 얼마나 간절한지 따위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더란 말입니다.

비껴간 확률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보조생식술을 시도할 때 임신 확률을 높이려고 과배란유도제를 사용하곤 합니다. 보통 여성의 몸은 한 번의 배란 주기마다 난자 한 개를 배란합니다. 하지만 시험관아기 시술에선 원래 몸 안에 있어야 하는 난자를 몸 밖으로 꺼내어 수정한 뒤, 수정된 배아를 자궁 내부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난자나 수정란이 잘못되는 확률이 높고, 애초에 수정란의 성공적인 착상률이 15~30%에 불과하기에 임신 확률을 높이려고 좀더 많은 수의 난자를 사용하게 됩니다.

난자가 많이 필요하다고 해서 여성의 몸이 알아서 난자를 더 많이 내놓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더 많은 난자를 원한다면 과배란유도제를 써야 합니다. 합성 에스트로겐, 난포자극호르몬, 인체융모성선자극호르몬(hCG호르몬) 성분 등이 과배란 유도에 쓰이는 약물이죠. 지난 연재글에서, 배란기에 여성의 난소는 일단 여러 개의 난포를 키운 뒤, 그중에서 딱 하나만 골라 실제 배란시키고 나머지는 퇴화시킨다고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약물들은 배란 주기의 시작점에서 반응하는 여러 개의 난포가 모두 퇴화하지 않고 배란되게 해서 과배란을 유도하지요. (참고로 모든 시험관아기 시술이 과배란을 유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 배란 주기에 따라 한 번에 난자 한 개만 이용해 시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떠난다는 사람을 붙잡아 주저앉히고 결국 관계가 파경으로 끝나는 일이 많듯이, 세상에는 사라지는 것을 억지로 붙잡으면 탈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원래라면 퇴화해 사라져야 하는 난포들을 살려내는 과정의 대가인 셈이죠. 그래서인지 배란유도제를 사용한 여성 중 일부는 난소과자극증후군(OHSS·Ovarian Hyperstimulation Syndrome)이라는 부작용을 겪습니다. 난소과자극증후군이란 말 그대로 배란유도제로 과하게 자극받은 난소가 원치 않은 합병증을 동반하는 것인데, 가볍게는 약한 입덧처럼 구역이 느껴지는 정도지만 심하게는 난소가 평소 크기의 몇 배로 부어오르고, 복수가 차올라 심한 복통과 호흡곤란을 느끼고, 드물게는 급성 신부전과 혈전색전증 등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증상만 보면 꽤 무섭게 들리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배란유도제를 쓴 여성 중 난소과자극증후군을 겪는 여성은 5% 이하로 낮은 편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도 좋지 못한 확률에 들었습니다. 배란유도제 투여 이후, 난소 부피는 평소의 20배 이상 부어올랐고, 복수가 몇 리터씩 차올라 혈전 발생 위험률이 너무 높아져 결국 시술 전체를 포기해야만 했거든요. 확률이 90%든 1%든 통계치는 남의 일일 때만 의미 있었지, 그 통계를 만들어내는 수치인 당사자에게는 0 아니면 1,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둘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일 뿐, 일부일 수 없는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국내에서 네 번째로 확진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 글이 게재될 때는 약간의 시간차가 있음을 이해 바랍니다.) 특히 그중 한 명이 내가 사는 지역에 거주했다 하여 온종일 온라인 지역 카페가 들끓었습니다. 카페에 올라오는 글 중에는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의 저력을 보여주는 글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확진자의 정확한 동선 파악입니다.

질병관리본부에선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공개하면서 지명만 밝혔을 뿐 정확한 상호는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에 답답한 지역민들은 확진자가 들렀던 상점의 직원들이 질병관리본부에서 받았다는 문자메시지를 공유하며, 실시간 이동 경로를 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보를 숨긴다고 생각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질병의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가 특정 국가와 국민에 대해 제노포비아(이방인혐오증)에 가까운 증오로 변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무지(Ignorance)라는 배양액에 공포(Fear)라는 열이 가해지면 증오(Hate)로 끓어넘친다고 말이죠. 하지만 꼭 안다고 끓어넘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어떤 첨가물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알아도 여전히 끓어넘칠 수 있습니다. 무지를 중화한 배양액을 여전히 끓어넘치게 하는 첨가물은 ‘불확실성’과 ‘불신’입니다.

태생적으로 확률은 불확실성을 내포하므로, 여기에 이 확률을 제공하는 기관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더해지면 작은 공포의 불꽃만으로도 순식간에 끓어넘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공적 기관들이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공개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불확실성에 대한 시민들의 두려움을 무지로 치부해 무시하지 않는 대처 방안을 내놓을 수 있기를요. 아무리 소수의 확률이라 해도 개별적으로 분리된 개인의 삶에서 확률의 결과는 전부 아니면 전무일 뿐, 일부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 역시 이해하고 있기를 말입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