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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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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발의 감각을 느껴봤나요?

<이제 몸을 챙깁니다> 펴낸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
등록 2020-02-03 16:11 수정 2020-05-02 19:29
문요한 전문의. 김진수 기자

문요한 전문의. 김진수 기자

“영혼은 몸속에 스며들어 있죠.”

“오래 머리로만 살아왔다”는 문요한(사진) 정신과 전문의가 책 를 내놨다. 심리훈련 전문기관 ‘정신경영아카데미’ 대표였고 책 등을 쓴 그는 “몸을 뇌의 통제를 받는 부속기관 정도로 여겨왔다”고 했다. 그런데 왜 몸일까? “지금 여기를 살려면 몸의 감각에 따뜻한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감각이 깨어나면 경험이 깊어져요. 우리에게 부족한 건 경험의 양이 아니라 깊이죠. 몸챙김이 마음챙김이고 삶챙김입니다.”

몸이 ‘뇌 부속기관’인 줄 알았던 의사

왜 몸인가요?
2013년, 내담자가 화난 표정으로 물었어요. “지금 제 얘기 듣고 있어요?” 충격받았죠. 상담가로서 치명적 실수였죠. 돌아보면 당시에 정신적 소진 상태였어요. 비상상황을 위해 남겨둬야 할 에너지까지 바닥난 상태였죠. 몸도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왔는데 무시했어요. 남들도 다 이 정도는 피곤하다고. 소진이 되니까 일시적 휴식으로는 회복이 안 되더라고요.

결국 병원을 정리하고 여행을 다녔어요.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가서 또 충격을 받았어요. 고산병을 예방하려면 천천히 걸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몸과 머리가 끊어져 있었던 거죠. 이후 발바닥과 땅이 만나는 감각에 주의를 기울였어요. 3주 정도 지나니 천천히 걷고 싶을 때 천천히 걷고, 빨리 걷고 싶을 때 빨리 걸을 수 있게 됐어요. 몸과 머리가 다시 연결된 거죠. 뇌를 기능적으로 감각·감정·생각으로 나눈다면 현대인은 생각의 뇌, 즉 전두엽만 과잉 활성화됐어요. 과도한 인지 자극과 활동 부족으로 생각이 너무 많아요. 생각과 감정은 우리를 과거와 미래로 끌고 가죠. 현재에 머무르는 건 오직 감각이에요. 감각의 뇌를 깨우는 게 바로 ‘보디풀니스’(Bodyfulness·몸챙김)입니다. 주의를 몸으로 돌려 감각을 느끼면 뇌의 섬엽이 활성화돼요. ‘섬엽’은 몸과 머리, 즉 신체적 자아와 정신적 자아를 통합하는 곳이죠.

왜 몸의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기본적으로 문명이 몸의 억압으로 이뤄져왔죠. 이성은 우월하고 몸은 열등한 것으로 보는 문화가 오래 이어지기도 했고요. 태내에서부터 과도한 인지교육을 하고 활동도 부족하니 몸의 감각이 더 퇴화돼요. 특히 과잉경쟁으로 우리 스스로 몸을 더 착취하도록 내몰리고 있어요. 개인적 이유도 있죠.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은 힘든 감정을 안 느끼려고 몸의 감각을 억압하거든요. 몸에 열등감이 있는 사람들도 몸을 느끼지 않으려고 해요.

몸에 대한 관심은 커진 것 같은데요.
신체심리학에서 몸을 두 가지로 구분해요. 보디(Body)와 소마(Soma)로요. 보디는 남에게 비춰지는 몸, 생각하는 몸을 말해요. 소마는 내가 느끼는 몸이에요. 우리가 ‘몸을 만든다’고 할 때 그 몸이 뭐냐는 거죠. ‘몸 만들기’는 몸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내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어떤 이미지나 생각에 몸을 맞춰가는 거라 봐요. 몸이 자기과시 수단이나 자기혐오 대상으로 전락한 거죠.

“자기친절은 몸에서 시작”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게 가능한가요?

자기를 사랑하는 건 어려운 일이죠. 사랑해야지 결심한다고 사랑이 생겨나는 건 아니니까요. 몸을 사랑할 순 없어도 존중할 수는 있어요. 존중은 기본적으로 약자와 다름에 대한 인간적 태도를 말해요. 내 몸이 예쁘고 힘이 세고 완전해서가 아니라 부족하고 약하고 병들어가는 존재라서 존중하는 거예요. 존중하면 관심을 기울이게 돼요.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죠. 몸과 관계가 좋아져요. 제가 10년 동안 역류성 식도염을 앓았어요. 신물이 넘어오고 아프다고 하소연하는데 외면했죠. 몸의 감각이 깨어나자 식습관이 달라지더라고요. 어떤 음식이 나를 편안하게 하는지 자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채식을 주로 하게 됐어요.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서 우리가 가장 배워야 할 건 자기친절이에요. 그 친절은 몸에서 시작해야 해요. 몸 존중은 내 몸을 한 인격체로, 친구처럼 대하자는 거예요. 저는 ‘내가 아플 때조차 내 몸에 친절할 수 있기를’ 이런 구절을 자주 읊조려요.

책을 보면 몸과 마음이 연결돼 있는 것 같아요.

에머런 메이어 박사가 쓴 책 에 신체감각과 정서지능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실험이 나와요. 자기 심장박동 리듬을 잘 느끼는 사람일수록 자기 감정 상태도 잘 파악했죠. 불안해지면 호흡도 빨라져요. 몸과 마음은 깊이 연결돼 있습니다. 불안할 때 역으로 2분간 바른 자세를 취해주기만 해도 마음이 안정됩니다. 안티스트레스호르몬이 분비돼요. 감정을 잘 조절하려면 몸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아요. 감각을 잘 느끼면 ‘비판단적 주의’(생각이나 판단 없이 알아차리는 것)가 길러져요. 순간을 알아차리는 힘이 커져요. 내 감정과 생각을 알아차리는 힘도 커지죠.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깊이 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늙어가는 몸을 존중하기 힘들어요.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대소변을 못 가리니 너무 수치스러워하시더라고요. 그 심정이 이해됐어요. ‘우리 사회에 늙고 병들어갈 권리가 있을까?’ 늙고 죽어가는 걸 수치스러워하도록 조장하잖아요.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회일수록 심해요. 호스피스병원에서도 수치심 때문에 아버지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거부하셨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분들을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정성껏 마사지해주시고 몸을 씻겨주시니까 아이처럼 기뻐하셨어요. 몸은 몸을 원하거든요. 어릴 때 사랑을 촉각으로 느끼듯이요. 이분들이 아버지 몸을 잘 돌봐주시니까 아버지가 더는 수치를 느끼지 않으셨어요.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걸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적절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는 몸을 존중할 수 있어요.

호흡하며 걸으며 ‘몸과 대화’를일상에서 자기 몸을 느끼기 쉽지 않은데요.

잠깐씩 몸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는 거예요. 호흡을 느껴보는 게 기본이죠. 1분간 숨을 몇 번 쉬는지 헤아려보세요. 어디서 호흡이 잘 느껴지는지 코끝인지 쇄골인지 주시점을 찾아서 느껴보는 거죠.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느려져요. 그리고 몸의 긴장을 알아차리고 이완해주는 게 필요해요. 어깨와 귀의 거리를 느껴보는 거예요. 또 식사 때 몸을 느껴보세요. 배고픔 정도를 10단계로 나눠 배가 고플 때 먹고 부를 때 그만두고요. 걸을 때도 100보 정도는 땅에 발이 닫는 느낌에 주의를 기울여보는 거예요. 자기 전에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몸의 감각을 훑어가며 ‘보디 스캔’을 해볼 수 있죠. 어느 부위가 바닥에 닿아 있는지 떠 있는지 알아차려보세요. 몸과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몸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내 몸은 평생 함께 갈 단 하나뿐인 친구죠.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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