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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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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라도 하시지

사과든 고마움이든, 그냥 넘어갔다면 이후라도 꼭 표현해주자
등록 2020-01-25 14:40 수정 2020-05-02 19:29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이 여성 비하 동영상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이 여성 비하 동영상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바람피운 배우자와 오래 잘 사는 듯 보였는데 끝내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때 안 헤어지고 이제야 헤어질까. 심지어 유책 배우자 본인조차 “다 넘어가놓고 이제 와서 왜 이러냐”며 따지기도 한다. 기실 용서한 게 아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것이다. 과오를 저지른 배우자의 자세한 설명과 끈질긴 사과를 말이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결국 버림받았다면, 바람피운 행위 자체보다 그 이후의 처신에 더 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은 그렇다. 듣고 싶은 얘기와 위로를 기어이 얻지 못했다면 언제든 내 존엄을 위한 결단을 내릴 수 있다. 다 늙어서라도 말이다. 몰랐다거나 혹은 알았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는 건 참으로 무책임한 변명이다. 모르면 묻기라도 해야지. 괜찮냐고. 어떠냐고. 난 사실 이렇다고. 옆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살피지 못한 그 자체로 귀책이다. 지난 잘못에 관해 누군가 두고두고 시비를 건다면, 그 누군가가 단지 의지박약이나 뒤끝작렬이라서만은 아니다. 미안하다면 최선을 다해 미안해해야 한다.

내 할머니는 둘째 며느리인 내 엄마를 몹시 좋아하고 의지했다. 엄마도 할머니를 살뜰히 살피고 챙겼다. 귀한 자식 돌보듯 맛난 거 해서 온 동네 친구들도 불러주고 옷도 당대에 가장 힙하게 빌로드나 제일모직 원단으로 맞춰주었다. 무엇보다 많은 대화를 했다. 고부간에 서로를 어떻게 여기는지 어린 우리 눈에도 다 보였다. 두 분은 ‘존중’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내 기억이 시작된 시점은 이른바 ‘권력’이 엄마 손으로 넘어온 뒤였던 모양이다. 결혼 초기 몇 년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엄마는 부르르 격분 모드이다.

예정일 일주일 남은 만삭 며느리에게 손아래 시누이 산바라지를 시켰고 아들(과 주로 와서 삐댔던 두 딸) 상에만 굴비를 얹어주고 월급날 고깃근이라도 끊어올라치면 역시나 딸네 가족들까지 다 불러 모으고… 구구절절 그 시절 ‘시월드 스토리(라고 쓰고 만행이라 읽는다)’를 내 할머니도 비껴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고모들은 유난히 철이 없고 큰엄마는 유난히 인색한 편이었네. 이런 ‘클리셰’로 점철된 나날을 딛고 엄마는 할머니가 아팠던 말년에 그 누구보다도 극진히 보살폈다. ‘권력’과 함께 ‘노동’과 ‘헌신’ 또한 기꺼이 떠안은 사람이 내 엄마다.

그랬던 엄마가 특정 시절 얘기만 나오면 정말 억울해 죽을 것처럼 날이 선다. 아빠는 그런 엄마를 당최 이해하지 못한다. 감전이라도 된 듯 히스테리를 부린다는 것이다. 이미 세상 떠난 할머니며 큰엄마는 물론이고 현재 치매 초기인 큰 고모나 남편 간병으로 찌들어 사는 작은 고모에게 새삼 무슨 사과를 받을 것도 아니고 말이다. 엄마는 왜 이럴까. 아빠가 듣기 싫은 내색을 하면 엄마는 “당신은 입 다물라”고 소리를 빽 지른다. 이어지는 한바탕 푸념은 옆집 강아지도 다 외울 지경이다.

엄마의 격분과 아빠의 반응, 잇따른 엄마의 리액션을 유심히 보며 깨달았다. 엄마는 그리 노력했음에도 그 누구에게도 고맙다는 소리 한번 제대로 못 들었다. 그렇다고 이미 떠나셨거나 형편이 안 되는 이들에게 새삼 원망이 남은 게 아니다. 범인은 아빠다.

얼마 전 또 다투기에 정색을 하고 물었다. 아빠는 왜 엄마에게 고마워하지 않냐고. 아빠는 당황해하며 물론 고마운데 그때 그 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고 굳이 표현하기도 어려웠다고 했다. 그럼 지금에라도 하시지. 옆에 있던 언니가 말로 하기 어려우면 몸으로든 돈으로든 하라고 했다. 아빠는 난감해했다. “내가 힘도 빠지고 돈도 없어서….” 나는 아빠에게 지금이 골든타임이니 진심을 담아 그냥 입으로 하시라고 권했다. 정말 고마웠다고. 그때 그 시절 얘기가 나왔음에도 엄마가 아빠에게 빽 소리 지르지 않은 모습은 그날 처음 보았다.

아빠가 엄마에게 고마워했으면 좋겠다. 한 번으로는 안 된다. 조금 더 해야 한다. 한 천만 번 정도.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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