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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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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에 갇힌 시간

등록 2020-01-17 02:53 수정 2020-05-02 19:29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나는 ‘불금’이 두렵다. 토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8시까지 맥도날드에 출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한다. 퇴근 뒤 잠깐 쉬었다가 4시30분부터 밤 11시까지 배민라이더스로 일한다. 집에 도착해서 씻고 누우면 밤 11시30분. 일요일 출근을 위해 잠들어야 하지만 피곤함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루 16시간을 일하거나, 일하기 위해 이동하거나 일하기 위해 먹는 데 시간을 사용한다.

퇴근 없는 노동자 위한 플랫폼 노동

맥도날드에선 근로자로 일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의 제한을 받는다. 약속한 시간보다 길게 일하면 1.5배의 연장근로수당을 받고, 밤 10시 이후엔 야간수당을 받는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인 장병규씨는 이 근로기준법 때문에 일할 자유가 침해받는다며 노동시간의 일률적 적용을 비판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이야기다. 이미 국민은 주 40시간 노동으로는 먹고살 수 없어, 노동법을 회피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퇴근 뒤 일하는 배민라이더스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시간의 한계 따위는 없다. 거리에는 나처럼 주 40시간의 보호 장비를 벗어던지고 질주하는 배달노동자가 넘쳐난다. 자전거와 전동킥보드로 배달하는 배민커넥트, 자기 차에 택배 물품을 가득 실은 쿠팡플렉스 노동자들이 거리의 시간을 가득 채운다. 플랫폼이 없었을 때도 방법은 있었다. 맥도날드 직영점에서 40시간 이하로 일하고 사용자가 다른 가맹점에서 추가로 일하는, 이른바 ‘투잡’(two-job)을 뛰는 사람들이 있었다.

플랫폼기업들은 남는 시간에, 운동 삼아 일해보라고 한다. 퇴근 뒤, 휴식시간, 휴일은 플랫폼의 시간으로 바뀌고 노동은 운동으로 전환된다. 인간으로서 시간과 인간으로서 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앱에 접속해 데이터의 시간과 존재로 질적 전환이 된다. 디지털세계로 입장한 사람은 피로도 고통도 모르는 지치지 않는 데이터가 된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수록 돈이 늘어나니 스스로 로그아웃하기 쉽지 않다. 플랫폼노동자뿐만 아니다. 수많은 단체대화방과 전자우편은 그 자체로 퇴근이 없는 업무의 시공간이다. 역설적으로 퇴근이 없는 피곤한 노동자들의 먹거리, 청소, 쇼핑 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시간의 제한이 없는 플랫폼산업과 서비스가 발전하고 있다. 24시간 편의점, 새벽배송 마켓컬리는 장시간 노동 위에 가판대를 차렸다. 플랫폼 시공간에 갇혀 살다보면, 플랫폼 밖 세계를 고민하기 힘들다. 주권자들은 정치공동체인 폴리스가 아니라 앱 속 노동시간의 감옥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최근 선거법이 개정됐다. 만 18살 선거권과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도입됐다. 한 정치인은 국민이 복잡한 표 계산법을 알 필요 없다 했는데, 사실 알아볼 시간과 여유가 없다.

플랫폼 로그아웃, 폴리스 로그인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상태에서,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건 자극적인 제목과 자극적인 인물이다. 주권자가 생계를 위해 일하느라 정치에 참여할 수 없고, 오직 정치 소비자가 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플랫폼에 갇힌 시간만큼 긴 시간 학교에 갇힌 청소년들도 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공부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관리하고, 학교와 학원의 촘촘한 시간표 안에서 정치의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프로그램에 오류를 일으키는 변종과 변수는 늘 있기 마련이다. 그 변종이 이뤄낸 선거법 개정과 정치개혁이 안정적인 민주주의의 알고리즘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플랫폼에서의 로그아웃, 폴리스로의 로그인을 위한 주권자의 노동시간 단축과 소득 보장이 정치개혁의 완성인 이유다. 우리는 데이터나 표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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