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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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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잘 버티면 그게 내일이 되고 모레가 된다”

아버지를 암으로 잃고 종양내과 선택한 김선영 전문의
등록 2019-12-23 02:28 수정 2020-05-02 19:29
14년차 암 전문의로 일하는 김선영 아산병원 종양내과 전문의는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주기 위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박승화 기자

14년차 암 전문의로 일하는 김선영 아산병원 종양내과 전문의는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주기 위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박승화 기자

젊은 학자이자 가장이던 아버지는 말기 암 진단을 받고 1년여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전업주부인 아내와 중학생, 초등학생인 삼 남매를 남겨두고. 투병 기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번갈아가며 썼던 투병일기는 아버지의 사후 책으로 나왔지만, 어머니는 출판사가 집으로 보낸 책 수십 권을 몽땅 쓰레기통에 버렸다. 당시 16살 장녀로 “아버지 죽음으로 무너진 중산층의 안락한 삶을 되찾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김선영(43·사진) 아산병원 종양내과 전문의가 그 책을 구해 읽기까지 22년이 걸렸다.

과거 암환자 가족으로 살았던 그는 현재 14년차 암 전문의로 살고 있다. 그는 최근 펴낸 책 에서 부모님 병상일기와 자신의 진료 경험을 교차하며 암을 둘러싼 환자, 가족, 의료진의 삼각관계와 그들 사이에 오가는 감정을 세밀하고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책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자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당신만이 겪는 일이 아니고,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위로의 손을 내민다. 나아가 인간 삶의 도처에 널린 슬픔을 견디는 법에 대해 “삶의 심술궂고 부당한 것들을 함께 받아들여 그대로 삶에 통합할 수 있는 정직함”의 태도를 제안한다.

마음을 힘들게 하는 시스템의 일부

부모님 병상일기를 성인이 되어 읽었을 때 첫 느낌이 어떠했나.
아버지가 1991년 돌아가셨는데 2013년에야 책을 읽었다. 환자들을 보니, 부모님 책을 한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절판돼 전북 전주의 한 헌책방에서 구해 읽을 수 있었다. 많이 울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내가 만나는 환자분들과 내 부모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병상일기 속에서 슬퍼하고 불안해하며 대체요법을 찾아헤매고 외로워하는 부모님 모습이, 지금 내가 매일 만나는 환자들과 닮았다. 바삐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같은 병원이란 공간에서 그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게 쉽지 않다. 나 역시 환자 마음을 힘들게 하는 시스템의 일부가 됐다. 문제의 시스템이 되풀이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정리해보고 싶어 책을 쓰게 됐다.

책을 쓰기 전과 후에 마음의 변화가 있었나.
처음에는 울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아버지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많이 울고 슬퍼하면 조금 더 객관적일 수 있겠다 싶어서 썼는데,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한 것 같다. 지금은 슬플 때는 슬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우리 가족만이 겪는 특별한 비극이 아니며, 당신의 비극 역시 당신만이 겪는 운명적인 고통은 아니니 부끄러워 말고 마음껏 울자고 말하고 싶다.

책을 통해 독자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가.
누구나 아프고 죽는다. 나도 언젠가 아프고 죽을 거지만 실감은 잘 나지 않는다. 다들 자기는 안 아프고 안 죽을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암 걸리겠다’ ‘저 사람 발암이야’ 하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질병에 걸린 사람은 내가 아니라 늘 타자다. 결국 나 역시 아프고 죽는 사람 중 하나가 된다는 생각을 한 번쯤 했으면 한다.

책 제목이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이다. 잃은 건 무엇이고 잊지 않은 건 무엇인가.
잃은 건 ‘정상 가족의 삶’이다. 부모가 쳐놓은 사회경제적 안전망의 보호를 받는, 정서적 안정과 경제적 안락을 갖춘 삶이다. 그러나 그 삶이 내가 응당 가져야 하는 것도,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잊지 않은 건 아버지가 남긴 지식노동자로서 모럴(도덕)일 것 같다. 사명감이라고 하기엔 낯간지럽지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성실함과 우직함, 자긍심 같은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모든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정신 승리이겠지만 그런 면에선 ‘금수저’라고도 할 수 있겠다.

급작스러운 죽음과 서서히 죽어가는 것

급성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급작스러운 죽음과 병을 진단받고 서서히 죽음에 다가가는 것 중 어떤 죽음이 더 나을까.
두 죽음 모두 인간이 원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주변을 정리할 시간도 갖고 고통도 없는 죽음을 원할 것이다. 급사는 고통이 짧되 주변을 정리할 시간이 없다. 서서히 죽어가는 것은 정리할 시간은 있되 고통이 심하다. 특히 급작스러운 죽음은 가족에게 트라우마를 남긴다. 내 경우, 선호하는 죽음의 방식이 있다기보다, 확률적으로 ‘나는 암으로 죽겠구나’라고 생각한다. 가족력도 있고 사망률 1위가 암이니까.

본인이 암에 걸릴 경우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우선 마음을 다잡는 데 집중할 것이다. 많은 환자가 병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데 실패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다. 나는 먼저 심리상담을 받을 것이다.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나를 둘러싼 공간과 시간,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기록하고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도 쓸 것이다. 항암치료는 근거가 확실한 치료만 좀 하고 너무 오래 끌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스스로 의사표현을 하기 어려울 때를 대비해 사전 돌봄 계획을 작성할 것이다.

다른 죽음과 달리 암을 겪으면서 죽음으로 가는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된 정서나 태도가 있을까.
암은 심리적 트라우마가 큰 것 같다. 다른 병은 걸리면 ‘평생 관리하며 갖고 살아야 하는 병’이라고 인식하지만, 암은 초기여도 바로 죽음과 연결해 생각하니까 완치된 암환자도 심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환자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계속 불안하기 때문이다.

진단 기술 발달과 인구 고령화 등으로 이제 암은 죽기 전에 한 번 이상 겪는 질병이 되었다. 암을 진단받았을 때 어떤 마음가짐이 치료에 도움이 될까. 암을 반드시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할까, 아니면 생로병사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도움이 될까.

이제 암은 두세 번 겪는 것도 드물지 않은 병이 됐다. 환자들에게 덤덤히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병과 싸우는 건 우리 의료진이 할 테니, 환자분은 잘 견뎌만 주시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암은 일부러 애쓴다고 나아지는 병이 아니다. 암에 걸리면 본인의 생활습관을 탓하며 죄책감을 갖는 일이 많은데, 암이 생활습관에서 완벽히 원인을 찾을 수 있는 병은 아니다. 물론 술과 담배 등이 문제가 되지만, 대부분은 원인을 알 수 없기에 스트레스를 느끼면서까지 생활방식을 모두 개조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건 암도 아니래”라는 말

환자 가족은 어떤 태도를 지니는 게 좋을까.
환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별거 아니니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라” “그런 건 암도 아니래”라는 말이 가장 큰 트라우마가 된다고 한다. 아무리 초기 암, ‘순한’ 암이라도 그런 말을 하면 환자의 고통과 충격이 전혀 공감을 못 받는 느낌을 준다. 환자는 정신이 없기 때문에 보호자가 정신줄을 잡는 게 중요하다. 암치료는 수술만 하면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진행된 암은 4~5개월에서 길게는 4~5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는 가족의 긴장 수위가 높아 엄청난 관심을 주다가 점점 지치고 관심도 식어간다. 그래서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책임과 돌봄을 누가 어떻게 나눠 지고, 치료 과정에서 선장 역할을 누가 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등을 미리 협의하는 게 좋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는 초기에 어떻게 하든 결국 평소 태도로 돌아간다. (웃음) 환자가 마음 상태를 편히 표현할 수 있게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게 좋다.

직업상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보는데, 암 전문의들이 직업병으로 우울증이 있지는 않나.
많은 사람이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하다. 내 결정 하나하나가 환자에게 너무 큰 영향을 주기에 그 무게감이 힘겹게 느껴질 때가 많다. 실제 많은 동료가 소진(번아웃) 증상을 호소하고 나 역시 1년에 한두 번은 자괴감과 우울에 허우적댈 때가 있다. 그러나 환자를 지켜보는 고통이 크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기에 어느 정도 상쇄되는 측면도 있다. 돌아가신 분의 가족이 훗날 찾아와 고마웠다고 인사하거나, 치료 효과가 좋아서 나아지는 사람들을 보면 보람이 아주 커서, 그걸로 사는 거 같다.

너무 무신경하게 시한부 판정을 내리는 의사도 있다. 환자는 진단 자체보다 그런 의사의 태도에 상처받기도 한다. 부모님 병상일기도 그런 의사들에게 받은 상처를 언급하고 있다.
의사들이 무심하고 불친절한 이유는 이 세 가지가 아닐까 한다. 바빠서, 몰라서, 아파서. 의료 자원은 부족하고 환자는 많다. 특히 우리나라는 적은 수의 의사와 간호사가 많은 환자를 담당하는 ‘박리다매식 진료’가 고착돼 있다. 지금은 의과대학이나 병원에서 의사소통 기술을 훈련하거나, 모의 환자에게 실습하고 환자의 감정에 대해 피드백 받는 시간이 마련돼 있지만, 과거엔 이런 교육과 훈련이 미흡했다. 이런 교육과 훈련이 ‘바빠서’ 해결이 안 되는 상황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의사와 간호사가 자기 몸과 마음을 챙길 여유가 없어서 건강 상태가 참혹한 수준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 같다.

자기 역할이 의미 있다는 자각

죽음을 많이 목격하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삶의 태도나 철학이 있을 거 같다.
멀리 내다보면 머리가 너무 아프다. 그래서 좌우명이 ‘오늘 하루 충실히’다. 환자도 “내가 언제 죽나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라고 묻는데, 그런 얘기를 하면 너무 우울해지고 힘들다. 그럴 때 그분들에게 “오늘 하루 잘 버티자”고 말한다. “오늘 하루 잘 버티면 그게 내일이 되고 모레가 된다”고.

어떤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나.
인간은 자기 역할이 의미 있다고 느낄 때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부닥쳤을 때 인간에게 가장 공포스럽고 슬픈 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살 가치가 없는 존재이고, 자신이 주변에 짐이 될 뿐이라는 느낌이다. 세상에 내가 할 일이 있고, 나로 인해 기쁨을 얻는 사람이 있다는 자각이 행복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위해 이 책을 쓰기도 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꺼내놓고 보기 위함도 있었는데, 자신의 가치에 대해 드는 회의감을 다스리기 위해 썼던 면도 있다. 즉, 나를 치유하기 위해 썼던 거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93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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