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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의 아무몸

나는 왜 흰 피부가 갖고 싶나

피부색으로 인류의 등급을 나눈 인간

제1292호
등록 : 2019-12-17 05:27 수정 : 2019-12-1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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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나은이가 부럽다. 한국방송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이 4살 소녀가 나오면 ‘언어천재’란 자막이 달린다. 스위스인인 엄마 쪽 가족이랑은 독일어와 스페인어로, 아빠 박주호랑은 한국어로 말한다. 영어도 된다. 긴 갈색 머리에 큰 눈망울을 가진 이 아이가 웃으면 댓글창에 심장이 아프다는 호소가 이어진다. 수리 크루즈(미국 배우 톰 크루즈와 케이티 홈스의 딸) 미모를 크게 따돌렸다고들 했다. 엄마가 등장한 장면에선 “예쁨 뿜뿜” 자막이 깜박였다.

“가족들 설득하기 힘들었어요.”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언어 두 개, 기쁨 두 배’ 프로젝트를 꾸렸던 담당자가 말했다. 다문화가정 아이가 엄마 나라 전래동화로 말과 문화를 함께 배우며 자긍심을 갖도록 돕는 프로젝트였다. 베트남, 몽골, 중국 등에서 동화를 수집하는 데 엄청나게 발품 팔았다. 정작 완성된 동화책을 공짜로 주겠다는데도 싫다는 시집이 많았다. “엄마가 한국말을 배우는 게 중하지.” 그 엄마 나라 말이 영어, 독일어였다면 얼씨구나 하지 않았을까.

백인일 것, 부모는 잘사는 나라 출신일 것

섞이지 않은 ‘순수한’ 피가 있다고 치는 말이니 혼혈은 이상한데 바꿀 말을 못 찾겠다. 이제 한국에서 ‘혼혈’도 사랑받는다. 단, 부모 중 한 명이 백인이어야 한다. 단, 그 백인 부모는 이른바 ‘잘사는’ 나라 출신이어야 한다. 단, 중산층 이상 가정이어야 한다. 단, 이른바 ‘정상가족’이어야 한다. 단, 비장애인이어야 한다. 그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얼굴천재’ 엘라 그로스, 나은이, 건우, 윌리엄, 벤틀리에겐 대개 아낌없는 이모와 삼촌이 돼줄 의향이 있다. 2017년 경기도외국인인권센터가 외국인 부모 145명에게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10명 가운데 3명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입소를 거부당했다. “여긴 아프리카 아이가 없어요.” 나은이 이야기를 하다 한 친구가 말했다. “백인 혼혈은 예능에, 동남아 혼혈은 다큐에 나오지.”

염운옥은 책 <낙인찍힌 몸>에서 인종주의를 “타자의 ‘행위’가 아니라 ‘속성’에 근거해 타자를 분류하고, 측정하고, 가치 매기고, 증오하고, 심지어 말살하는 서양 근대의 이데올로기”라고 정의한다. 그 속성은 ‘몸’에 들러붙는다. ‘몸’의 표식을 통해 그 속성을 상상한다. 인종(Race)이란 말은 동물의 혈통이나 품종을 뜻하는 스페인어 ‘라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처음 인간을 피부색으로 분류한 사람은 스웨덴 과학자 칼 폰 린네다. 1735년 책 <자연의 체계>에서 유럽인 백색, 아메리카인 홍색, 아시아인 갈색, 아프리카인 흑색으로 나눴다. 이후에 이마에서 코로 떨어지는 각도, 두개골 크기 등을 측정해 분류했다. 이 분류는 제멋대로 발명품이다. 아버지가 케냐 사람이고 어머니가 미국인인 버락 오바마는 왜 흑인인가? 미국 남부에선 조상 32명 중 1명만 흑인이라도 흑인으로 분류했다. 어디까지가 유대인인가? 나치독일은 온갖 논쟁 끝에 조부모 4명 중 3명이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규정했다.

분류를 차별의 도구로 완성한 건 미학이었다. 린네와 같은 시기, 요한 요아함 빙켈만은 아름다움의 정수를 고대 그리스에서 찾았다.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은 신체로 발현되는데 고대 그리스 조각들이 이를 구현한다는 거다. 그는 흰색에 매료됐다. 흴수록 선하고 선하니 아름답다. 오뚝한 코, 살짝 튀어나온 이마가 ‘아름다움의 증표’가 됐다.(염운옥, <낙인찍힌 몸>) 2019년에 사는 나는 그런 얼굴이 부럽다. 성형수술 후기 따위를 남들 몰래 훔쳐보다보니 성형수술 광고가 날아온다. “눈 3종 세트로 눈을 또렷 시원하게 짜란” “필러로 이마 볼륨 채우고 옆모습에도 자신감 채우기” “오뚝한 콧날” “이제는 외모 콤플렉스를 벗어날 시간.”


“이게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해?” 5년 전 독일에 살 때 한 친구가 하리보 젤리 하나를 보여줬다. 검은색 젤리는 동양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이 위로 쪽 찢어졌다. 나는 머뭇거렸다. 비하당했다는 불쾌감이 올라왔다. 분류하는 자와 분류되는 자 사이의 권력은 불균형하니까. 그런데 내 눈을 보니 위로 쪽 찢어졌다. 내 눈을 묘사하면 비하의 표현이 된다는 걸 인정해야 하나? 그때 내 마음은 김지혜가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소개한 아주 오래된 실험 속 흑인 아이들과 비슷했던 거 같다. 1947년 케네스 클라크와 메이미 클라크가 3~7살 흑인 아이들에게 백인 인형과 갈색 인형을 보여주고 물었다. “어느 인형이 착해 보여?” “어느 인형이 예뻐?” 흑인 아동의 59%가 백인 인형을 착하다고 뽑았고, 60%가 백인 인형이 더 예쁘다고 했다. 연구자들이 “자기랑 닮은 인형은?”이라고 묻자 몇몇 아이는 울어버렸다. 외부의 시선은 내가 원하지 않건 원하건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된다. 나마저 나에게 타인이 돼버린다.

흑인 아동 60%가 선택한 백인 인형

염운옥은 한국인의 백인 선망과 비백인에 대한 편견을 “강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만들어진 편견”이라고 분석했다. 1876년 개항할 즈음 한반도에 ‘인종’ 개념이 들어왔다. 당시 백인 제국주의가 세상을 집어삼키던 시절이다. 개화파 학자들은 조선인을 개조해 서구가 만든 ‘인종 사다리’를 오르려 했다. 아직도 그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월한’ 한국인의 ‘피’를 증명하고 싶나? 프랑스에 입양된 플뢰르 펠르랭이 장관이 됐을 때, 그 자신이 “프랑스 사람”이라는데도 언론은 ‘한국계’란 수식어를 붙였다. 한국이 펠르랭에게 미친 영향은 그를 이 땅 밖으로 내몬 것밖에 없다. 국적이 대한민국이고 여기서 20년 넘게 산 이자스민 전 국회의원의 기사엔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댓글이 달린다. 혈통이 중요하다면 왜 중국동포는 차별하나. 인종은 피부색뿐만 아니라 문화적 표지에 들러붙어 무한 변태한다.

“동남아 애들 팁 많이 주면 버릇 나빠져요”

차별해야 착취할 수 있다. 몸을 표지 삼아야 오래 쉽게 차별할 수 있다. <낙인찍힌 몸>을 보면, 영국 산업혁명은 노예제 덕을 크게 봤다. 1990년대 3D 업종이나 돌봄 노동자가 부족해지고 인구수가 곤두박질치자 이를 메울 수 있는 사람들을 국경 너머에서 불러들였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노동자는 마음대로 직장을 바꿀 수도, 가족을 데려올 수도 없다. 김현미는 책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에서 “외국인 이주자가 한국 사회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선택으로 동원됐다”며 “이주자를 통해 한국 사회가 연명하는데도 그들을 무시하고 착취하는 것을 방관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엄마 고희 때 말레이시아 패키지여행을 갔다. 가이드는 쿠알라룸푸르에서 오래 산 한국 사람이었다. “동남아 애들, 세차시키면 500원만 주면 돼요. 팁은 1달러만 주세요. 버릇 나빠져요.” 성인을 ‘애’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본 한 맥주 광고는 이랬다. 주인공인 한국 배우는 외국인 친구들과 집에서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수영장에 간다. 평등한 관계를 전제한 ‘친구’는 백인이다. 18세기 빙켈만과 린네의 시대에서 얼마나 멀리 왔을까? 나는 어떤 몸을 아름답다고 느끼나?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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