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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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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고통의 성찰이 빛나다

손바닥문학상 297편 응모…

대상 황예솔 ‘유해동물’, 가작 김수진 ‘캐리어’·최유미 ‘도마뱀’
등록 2019-12-07 06:34 수정 2020-05-02 19:29
손바닥문학상 심사위원들이 11월2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한겨레신문사에서 손바닥문학상 심사를 진행했다.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수현 평론가, 이명원 평론가, <한겨레21> 장수경 기자, 허윤희 기자, 김소윤 소설가. 박승화 기자

손바닥문학상 심사위원들이 11월2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한겨레신문사에서 손바닥문학상 심사를 진행했다.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수현 평론가, 이명원 평론가, <한겨레21> 장수경 기자, 허윤희 기자, 김소윤 소설가. 박승화 기자

글쓰기의 열망은 뜨거웠다. 제11회 손바닥문학상에 297편이 도착했다. 지난해 302편 응모에 비해 응모작 수는 조금 줄었으나 작품성은 고르게 높았다. 응모작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한부모 가정, 우울증과 자살, 꿈을 잃어버린 ‘김지영’들의 삶, 악성 댓글로 인한 고통 등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줬다. 그동안 에서 보도한 난민의 소외된 삶, 친족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을 다룬 작품도 눈에 띄었고 여성 경비원의 이야기, 무성의 존재로 취급되는 중년 여성의 비애 등 여성 서사를 다룬 작품도 많았다. 11월15일 팀장들과 기자들의 예심을 거쳐 30편을 뽑았다. 이들 작품을 중심으로 박수현 문학평론가, 이명원 문학평론가, 김소윤 소설가가 11월27일 최종 심사를 했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황예솔씨의 ‘유해동물’을 대상으로, 김수진씨의 ‘캐리어’와 최유미씨의 ‘도마뱀’을 가작으로 선정했다. _편집자

올해 손바닥문학상 본심에 올라온 거의 모든 응모작들은 ‘독후의 즐거움’을 주었다. 대부분 문학성과 읽는 재미를 겸비했다. 다양한 주제를 진정성 있게 다룬 점, 예년과 달리 고통을 객관화하면서 성찰적 거리를 확보한 점, 과장된 어둠에 함몰되지 않은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어둠에의 강박이 흐려졌다고는 하나 응모작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아프게 조명하고 있었다. 자살을 선택한 공익제보자, 아동 성폭력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 자폐아를 키우는 엄마, 일용직 노동자, 성소수자, 명예퇴직자, 대필작가, 중증장애인, 학습지 교사, 배달원 등 다채로운 인물 군상은 사회의 부조리에 온몸으로 항변하고 있었다. 특히 방 구하기의 어려움이라는 소재가 반복적으로 나온 점이 인상적이었다. 잘 안 보이는 곳에서 웅성거렸던 이야기를 밝히 듣는 일은 즐거움이었으나, 저마다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에 착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낯섦’에 매혹됐다

우리는 독자이기에 앞서 심사위원이었기에, 선별 작업을 앞두고 편안하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만은 없었다. 안정된 문장, 치밀하고 자연스러운 구성, 소재에 대한 체험적 지식, 진정성과 개연성 등 익히 알려진 미덕 외에도 우리는 ‘낯섦’에 매혹됐다. 형식이 낯설거나 시각이 낯선 작품에 우리의 시선은 오래 머물렀다.

특히 문제적 현상에 대한 통찰의 새로움과 깊이는 평범과 비범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소설은 사회문제에 가장 예민한 촉수로 접근할 수 있지만, 보도 기사 이상의 가치를 가지려면 독창적이고 심도 있는 통찰을 담아야 한다. 익숙한 접근법에서 한 발자국을 더 떼는가. 독자의 허를 찌르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최종 논의 대상으로 6편을 선정했다.

‘붕어빵’은 이혼한 경력단절 여성, 중국산 상품들에 밀려 일자리를 잃은 여성, 고시원을 전전하는 여성의 삶을 병치하며 이 시대 밥 벌어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을 보여준다.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자연스럽게 요리하는 솜씨가 돋보였으나 구심적 형상화가 미흡해 보였다. 익히 아는 사실을 상회하는 통찰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아쉬웠다.

교사, 학부모, 학생의 발언과 언론 기사만으로 전편을 구성한 ‘모자이크 선생’은 신선한 형식이 매력적이었다. 모자이크식으로 배열된 담화 가운데 기간제 교사와 고등학교의 현실을 핍진하게 묘파하지만, 결국 익숙한 정보에 불과했다. 예리한 시선으로서만 가능한 유의미한 발견이나 깊이 있는 성찰이 곁들여졌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대중 심리 해부하는 날카로운 시선

‘한림마을의 평화’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갑자기 배제당하고 의심받는 인물을 통해 약자에 대한 다수의 혐오가 얼마나 어이없게 생성되는지 보인다. 섬세한 구석까지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한, 능숙한 이야기 전개 솜씨와 주제에 대한 참신한 접근이 인상적이었다.

가작으로 선정한 ‘도마뱀’은 워킹맘의 현실을 소묘한다. 주인공 여성은 일과 육아의 무게에 짓눌려 둘째 아이 임신 사실을 알고서 심란하다. 이 작품은 노조에 적대적이었던 지사장의 몰락 서사를 병행 배치함으로써 흔한 워킹맘 이야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지사장이나 워킹맘이나 도마뱀 꼬리일 뿐이며, 회사일과 육아 모두 “부질없이 소비되는” 일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허무를 예리하게 포착함으로써 서사의 품격을 높인다.

또 하나의 가작 ‘캐리어’는 관음 욕망과 거짓 노출이 횡행하는 소셜네트워크 시대의 단면을 날카롭게 묘파한다. 보는 자는 타인의 삶을 ‘지나치게’ 알고 싶어 하고, 보여주는 자는 자기 삶을 타인의 취향에 맞춰 거짓으로 연출한다. 이 근저에는 “남들과 똑같이 해야” 한다는 강박이 놓여 있으며 그것은 현 사회의 시대정신이나 다름없다. 타인이 개인의 주체성을 완전히 압도하고 지배하다 못해 거의 새로운 신으로 등극한 현실을, 작가는 다부지게 통찰한다. 또한 이 통찰을 브이로그(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찍은 콘텐츠) 제작자와 구독자의 일상, 그리고 임용고시 준비 일화를 병치하면서 효과적으로 녹여낸다. 현 사회의 대중 심리를 해부하는 시선이 매섭다.

피해-가해 이분법적 구도 뛰어넘어

대상작 ‘유해동물’은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의 해후를 그린다. 학교폭력 이후 10년, 심리상담사가 된 피해자는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가해자를 만나 면담한다. 이 작품은 비둘기에게 폭력을 휘두른 피해자의 서사를 병치하면서 녹록지 않은 성찰적 시선을 견지한다. 혐오가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발생한다는 점, 피해자가 언제든 가해자로 둔갑할 수 있다는 점, 세월이 흐른 뒤 용서도 사과도 무의미해지고 오로지 쓸쓸한 허무만 남는다는 점 등 혐오와 폭력에 대한 다각도의 조명이 흥미롭다.

더욱이 폭력이 무한 순환하며, 누구나 먹이사슬 같은 폭력의 피라미드에 갇혀 있다는 성찰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학교폭력이 우리 사회의 큰 이슈이니만큼 그것을 소재로 삼기는 쉽지만, 매력적으로 다루기는 어렵다. 이 작품은 단순한 피해-가해 이분법적 구도를 뛰어넘어 혐오와 폭력의 본질과 발생 기제에 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심사위원들은 ‘캐리어’와 ‘유해동물’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결국 관습적 기대를 배반하고 독자의 허를 찌르는 능력을 높게 샀다. 당선된 분들에게는 축하를, 아쉽게 당선에 들지 못한 분들에게는 격려를 보낸다. 운은 돌고 돌게 마련이다.

최종 심사위원 박수현 문학평론가(집필), 이명원 문학평론가, 김소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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