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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 너의 마지막 인사처럼

더 이상 비난·모욕 견디지 못한 범죄 생존자 구하라
등록 2019-12-02 02:10 수정 2020-05-02 19:29
contents 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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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13일~2019년 11월24일. 가수이자 연기자 구하라가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08년 아이돌 그룹 카라의 멤버로 데뷔한 그는 한국과 일본에서 사랑받은 연예인이면서 데이트폭력과 불법촬영 범죄의 피해 생존자이기도 했다.

구하라는 세상을 떠나기 불과 며칠 전까지 일본 투어를 했고, 지난해 10월 자신을 폭행하고 비동의 성적 촬영물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했던 전 연인 최종범에 대한 항소심을 앞두고 있었다. 10월14일, 절친한 동료였던 설리(본명 최진리)의 사망 이후 그는 추모 영상을 통해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했지만 다짐은 지켜지지 않았다.

공개연애가 여성 연예인에게는 협박거리로

신인 시절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필사적으로 달리는 모습으로 주목받았던 구하라는 씩씩하고 밝은 이미지였지만 돌이켜보면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했던 것은 그가 눈물을 보인 순간이었다. 2011년 연예 매체 는 구하라와 용준형의 교제 사실을 동의 없이 촬영한 사진과 함께 공개했다. 심각한 사생활 침해였고, 늘 그렇듯 여성 연예인에게 훨씬 치명적인 ‘열애설’이었다. 2013년 MBC 에 출연한 구하라는, “제가 입 열면 구하라씨 끝납니다” 등의 발언과 함께 계속 공개연애와 결별을 들먹이는 MC들의 발언에 격한 감정을 드러낸 끝에 눈물을 흘렸다. 막무가내로 ‘애교를 보여달라’는 MC들의 요구를 거절하던 강지영 역시 눈물을 보였다.

이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와중에도 웃음을 띠려 애쓰며 방송을 마쳤지만, “카라, 농담에 울려면 ‘라스’엔 왜 나왔나”, “‘라스’ MC들, 구하라·강지영에 걸그룹 트라우마 생길라” 등 정작 비난의 화살은 상처 입은 그들을 향했다. 방송이, 대중이 원하는 ‘재미’에 장단 맞춰주지 않고 감히 흥을 깬 ‘죄’였다. 결국 한승연은 트위터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프로답지 못한 태도를 보여드린 점 깊이 반성하겠습니다”라는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에서는 몇 차례 더 이 사건을 재미있는 해프닝인 양 언급했다. 과연 트라우마를 얻은 것은 누구였을까.
2014년 MBC 뮤직 에 출연한 구하라는 “모든 아이돌 가수들이 힘들어도 힘들다고 하지 못한다. ‘그만두면 되지’ ‘안 하면 되지’라고 너무 가볍게, 쉽게 말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나도 이게 직업이기 때문에 안 할 수 없다”며 눈물을 보였다. 열네 살 때부터 가수가 되려 노력했고, 외롭고 고된 연습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였다. 지난 4월, 안검하수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악성 댓글에 시달린 구하라는 인스타그램에 “어린 시절부터 활동하는 동안 수많은 악플과 심적인 고통으로 많이 상처받았습니다. (중략) 저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모습이든 한 번이라도 곱게 예쁜 시선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5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가 발견된 다음에도 그는 “더 열심히 극복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 했으나

그러나 ‘열심히’ 살고자 하는 구하라의 의지는 끊임없이 가로막혔고 그의 삶은 그저 가십으로만 취급당했다. 그가 비동의 성적 촬영물 유포 협박 피해를 당했다고 밝히자,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구하라 동영상’이 올랐다.
은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구하라를 다룬 보도를 분석한 결과 “언론은 악성 댓글을 기사로 확대재생산했고, 구하라의 협박 피해 사건을 게임처럼 다루거나 자극적인 내용을 활용했으며, 그가 ‘피해자답지 않다’는 잘못된 보도까지 냈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는 최종범의 공소 사실 중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를 제외한 협박, 강요, 상해, 재물손괴 등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당시 구하라의 법률대리인 쪽은 “우리 사회에서 피고인 최종범이 행한 것과 같은 범죄행위가 근절되려면 보다 강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항소심에서는 부디 피고인 최종범에 대하여 그 죗값에 합당한 처벌이 선고되기를 희망합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구하라는 항소심 결과를 볼 수 없게 됐다.
올봄, 버닝썬 게이트와 연결된 ‘정준영 단톡방 사건’을 보도했던 강경윤 SBS 펀이(funE) 기자는 구하라가 당시 직접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와 어떤 식으로든 진실 규명을 돕고 싶어 했으며 실제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최근 밝혔다. 구하라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 했고, 다른 불법촬영 피해자들을 위해 연대했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원했다. 지난 10월, 설리의 사망 이후 포털 사이트 다음을 운영하는 카카오는 연예 섹션 뉴스 댓글 서비스를 잠정 폐지했다. “공론장인 댓글창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줄이려는 노력”의 하나로 연예인, 특히 여성을 향한 혐오 발언이 증폭되는 고리 하나를 네이버보다 먼저 끊은 것이다. 11월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 양형 기준을 재정비해달라”는 청원에는 구하라 사후 참여 인원이 크게 늘어 23만 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왜, 누군가의 죽음만이 변화의 계기가 되어야 할까.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유의미한 응답이 돌아오기는 할까.

잔혹한 게임에 설리도, 구하라도

이제는 그 지속가능성조차 의심스러운 케이팝이라는 산업 안에서 자란 스타이자 20대 한국 여성인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보는 것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은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어디서도 안전하지 못했으며, 유명인이었기에 더 많은 ‘대중’에게서 비난받고 모욕당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었으나 사법 제도 안에서 충분한 보호도 보상도 받지 못하고 2차 피해로 고통받은 여성들의 사례를 우리는 너무 많이 알고 있다. 단톡방, 다크웹, 텔레그램을 통해 무수한 디지털 성폭력범죄가 벌어지고 스토킹방지법이나 혐오표현금지법조차 만들어지지 않는 이 병든 사회에서 여성들은 필사적으로 싸우고, 죽어가고 있다. 이 뿌리 깊은 불의를 매일 마주한다는 것은 매 순간 분노와 모멸감 속에 살아가야 함을 의미하며 누군가에겐 생의 의지를 꺾어놓을 만큼 잔혹한 무게이기도 하다. 설리와 구하라는 용기 있게 맞서려 했지만, 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데 실패했다. 아니, 애초에 이들을 절망하게 만든 것이 한국 사회였다. 불과 6주 전, “더는 어떤 여성도 함부로 끌어내려져선 안 된다”고 바로 이 지면에 썼다. 그러나 또다시 한 명을 잃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늘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최지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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