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기는 ‘인싸’도 ‘아싸’도 아니고 ‘미싸’라고 했다. “미디움 사이즈?” 물었다. 아이가 나에게 콤플렉스의 발현이라고 했다. 그래, 나 라지 사이즈다(가끔 엑스라지). 그럼 “미친 사이코냐”고 물었다.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떻게 알았냐고 했다. 으헉, 나를 닮아도 왜 그런 걸 닮았니. 내가 철렁하는 걸 즐긴 뒤 아이가 말했다. 그건 우스개고 “미들 사이더”란다.
개그감이 넉넉한 내 아이는 여러모로 취향이 분명하다. 낯가림은 있지만 자기표현도 제법 한다. 또래에 견줘 좀 빠지는 면이 있어도 제 속도대로 자라는 것 같아 감사하다.
‘인싸’가 아니고 굳이 되고 싶지도 않지만 ‘아싸’이기는 또 싫은 자의식 있는 아이들이 만들어낸 영역이 ‘미싸’인가보다. 아이가 그런 경계에 있는 게 싫지 않다. 분명 자유로움이 있다. 중학생이 또래 문화에서 패거리에 얽히는 것만큼 심란한 일도 없다. 내 아이도 한때 친구가 없어 제 말로는 “여기저기 열심히 비벼보기”도 했는데, 같은 옷 입고 같은 가방 메고 같은 장신구 하자는 얘기에 식겁해 멀어진 적도 있다. 자기는 도저히 패거리에 끼는 건 아닌 것 같다며, 단짝은 있으면 좋겠지만 쉽게 생기지 않으니, 그냥 뜨문뜨문 몇 안 되는 ‘미싸’ 친구들이나 잘 간수하겠단다. 음, 좋은 생각이야.
나도 동네에서 ‘이상한 여자’였다. 아이 일곱 살 무렵인가 놀이터에서 만난 동네 엄마가 “우리 애가 에디슨 엄마는 에디슨을 학교 안 보냈는데 엄마도 그러면 안 되냐는 거 있죠”라고 했다. 이거 자랑 맞다. 책도 꽤 읽고 과학에도 관심 많고 이렇게 응용도 하는 아이라는 뜻이다. “어머,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하나요!” 맞장구쳐주는 게 상례건만, 나는 그게 참 안 된다. 결국 건조하게 말하고 말았다. “한마디 해주세요. 네가 에디슨이 아니잖아.” 얼굴 구겨진 그 엄마는 잠시 뒤 자리를 떴다. 초등 저학년 학부모 모임에서는 “우리 남편이 그러는데…”로 매번 말을 시작하는 이에게 결국 헤어질 때 한 소리 하고 말았다. “계속 ○○이 아빠와 대화한 기분이네요.” ○○이 아빠가 하는 말이 내 귀에 들어왔으면 또 모르지만 온통 돈타령에 성공 신화여서 진짜 듣기 싫었다. 전날 늦은 밤까지 학원 숙제 한 큰애를 새벽에 깨워 골프 라운딩 데리고 나가는 게 무슨 호연지기란 말인가.
휴직하고 애들 공부에 올인하던 이웃에게는 대놓고 한 소리 한 적도 있다. 애를 두뇌개발학원이니 창의놀이학교 따위에 보내느라 멀리 서울 대치동까지 라이딩해주던 그는 “아이가 셀프 스티뮬레이션(자극)이 잘 안 될 때라, 잠재력을 꺼내려면 여러 경험을 시키고 이해를 넓혀주는 게 좋다”고 했다. 대치동 학원 전전하는 게 무슨 다양한 자극이라고. 우연히 그 아이가 우리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있었는데, 한입에 쏙쏙 넣게 밥과 반찬을 하나로 뭉쳐달라고 했다. 늘 저녁은 차 타고 가면서 그렇게 먹는다고. 기가 막혔다. 제대로 된 끼니와 씹는 과정, 맛을 통해 얻는 자극은 자극이 아닌가. 나중에 애를 미국 공립과학학교에 보내겠다는 그의 말에 급기야 폭발했다. “여보쇼, 거기는 돈 없고 똑똑한 미국 아이들이 갈 곳이지 돈 많고 똑똑한지는 잘 모르는 당신 아이가 왜 가. 아직 셀프 스팀인가 그것도 안 된다면서요.” 그야말로 스팀 폭발하는 바람에…, 쩝. 더 당황스러운 건 상대는 그런 나에게 기분 나빠하지 않고 오히려 설득하려 들었다는 것이다. 아놔, 범생이 바보.
아이가 자라며 어느 날 깨달았다. 내 취향대로 생각대로 행동하고 처신하다가는 지역사회에서 애 앞길에 방해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렇다고 소신을 꺾을 수는 없으니, 그냥 사교를 안 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그룹’으로 묶이는 사교 말이다. 대신 띄엄띄엄 뜻 맞는 이들과만 소통한다. 나름 괜찮다. 대체로 당당한 ‘아싸’들이다. 절대 서로 귀찮게 하지 않는다. 세상은 넓고 ‘아싸’는 많다.
김소희 칼럼니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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