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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

공감·배려 연습하는 ‘어른들의 대화 수업

무시·차별·혐오 대신 공감과 배려의 대화 연습하는 ‘비폭력대화’ 모임

제1289호
등록 : 2019-11-28 10:55 수정 : 2019-11-2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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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선임기자
“오늘 제 느낌은, 설레고 기대돼요.”

11월18일 오전 11시 경기도 수원시여성문화공간. ‘물지게·기린세상 비폭력대화’ 동아리의 회원인 김소정씨와 임정심씨가 ‘느낌 카드’를 집어들었다. 탁자에는 ‘기쁜’ ‘놀라운’ ‘슬픈’ 등 글자가 쓰인 카드가 여러 장 놓여 있었다. 그들은 이날 기자를 만난 현재의 느낌을 이야기했다. 그날의 날씨를 살펴보듯 자신의 ‘마음 기상도’를 들여다본다고 한다. ‘비폭력대화’는 미국의 임상심리학 박사 마셜 B. 로젠버그가 만든 용어로, 타인과의 갈등을 해결하고 유대관계를 맺는 공감과 소통의 방법이다. ‘공감의 대화’ 혹은 ‘연민의 대화’라고도 한다.

내 마음 정확히 알기

김소정씨는 매주 모임에 나와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공감하는 마음으로 듣는 연습을 한다. 대화법은 자연스레 터득하는 게 아니라 힘들여 공부해야 한다. 그러러면 가장 먼저 자기 느낌을 아는 게 중요하다. “의외로 내 느낌을 알아차리는 게 어려워요. 예전에는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 ‘우울한 것 같아’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정확히 내 느낌을 몰랐던 거죠.” 김씨는 자신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깊은 상처와 마주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관계가 좋지 않았어요. 자주 맞고 언어폭력도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서 나는 폭력적인 부모가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체벌을 하는 거예요. 놀랐어요. 내 안에 있는 폭력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내고 싶었어요.”

김씨가 비폭력대화를 시작한 것은 7년 전이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마셜 B. 로젠버그의 책 <비폭력대화>를 읽은 것이 계기였다. “대화할 때 공감이 중요한데 그것 역시 연습해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그의 말을 정리해서 다시 말해줘요. ‘그때 이런 일로 힘들었고 속상하셨군요’라고요. 그걸 우리는 ‘반영’이라고 해요. 그러면 상대방은 ‘내 이야기가 잘 전달됐구나’라고 느끼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자신이 말한 내용을 보게 돼요.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봅니다.”

임정심씨는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용기가 생겼단다. “그동안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니까 특별히 원하는 게 없는 줄 알았어요. 그저 ‘짜증나’ ‘피곤해’라는 말만 달고 살았어요. 하지만 내 감정을 살피면서 나에 대해 알게 됐어요, 난 ‘재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구나’라고요. 내 느낌과 욕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임씨는 자신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이해하면서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게 됐다.


공감의 근육 키워 ‘욱’하지 않게 돼

이들처럼 걸음마를 시작하듯 언어와 대화 방법을 다시 배우는 ‘어른’들이 있다. 차별과 혐오의 말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이기는 대화, 설득하는 대화가 아니라 공감하고 소통하는 대화를 지향한다. 11월18일 저녁 8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만난 비폭력대화 연습 모임의 강민수씨, 황민아씨, 조경희씨. 그들의 모임에서는 상대방을 향한 비판, 비난, 무시, 명령, 공격 등 폭력적인 대화를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비폭력대화 강좌를 들은 직장인들이 2년 전 꾸린 모임이다. 회원은 8명이다.

이 모임에서는 이렇게 대화한다. ‘관찰-느낌-욕구-부탁’으로 이어지는 4단계 대화 구조다.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고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다음 자기 내면에서 어떤 느낌, 예컨대 불쾌·모욕이나 즐거움 등이 일어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을 권한다. 예를 들어 ‘나만 왕따당한 것 같다’가 아니라 ‘나 혼자 있어서 슬펐어’라고 말한다. 그다음 그 느낌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즉 욕구를 알아차린 뒤 상대방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부탁한다. 그 바탕에는 솔직함과 공감하려는 자세가 깔려 있어야 한다.

강민수씨는 “직장 동료와의 관계가 힘들고 여자친구에게서 말이 잘 안 통한다는 말을 들은 뒤, 비폭력대화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솔직함과 용기가 필요했다. “대화 모임을 하면서 말하는 방법이 달라졌어요. 상대방과 싸울 때 내가 화났다는 느낌을 바라보고 내 욕구가 충족이 안 돼서 그런 거구나 이해하게 됐어요. 싸움을 대화로 풀려고 노력해요. ‘싸우려 했던 게 아니다. 도움이 필요했다. 두렵고 불안해서 그랬다’고요. 솔직하게 내 약한 부분을 내보여요.”

황민아씨는 자신의 마음이 안정돼야 다른 이들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걸 알았다. “너무 빨리 급하게 사니 내 마음도 살피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마음도 보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러면서 서로 상처 주는 말을 하고요. 지난번에 한 분에게 일을 빨리 처리하지 못해 짜증스럽게 말을 했어요. 제가 조금 더 기다려주면 될 텐데 그러지 못했어요. 이제는 이런 내 모습과 상대의 마음을 돌아보게 돼요.”

조경희씨는 모임 회원들과 대화하면서 ‘공감의 근육’을 키우고 있단다. “예전에는 ‘욱’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이제는 성격이 부드러워졌다는 말을 들어요. (웃음) 다른 사람들이 직장에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나 같아도 화나겠다’ 하고 공감해줘요. 처음에는 그게 잘 안 됐는데 그 사람 처지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어요.”

인천 부평구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연극으로 하는 비폭력대화’에 참가한 초등학생과 부모들. 부평구문화재단 제공

역할극도 서로 이해하는 방법

인천 부평구문화재단에서는 초등학생과 부모를 대상으로 ‘연극으로 하는 비폭력대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언어폭력을 찾고 비폭력 언어를 알아가기 위해 마련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미경 비폭력대화 강사는 “자녀들이 일기를 쓰고 그걸 즉흥극으로 만들어요. 그러면서 아이들의 속마음을 볼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연극을 매개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와 자녀들이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자리가 된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입장을 바꾸는 역할극도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된다.

김미경 강사가 비폭력대화법을 설명했다. “비폭력대화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함께 이뤄져야 해요. 수직적 언어인 강압적이고 강요하는 말 ‘○○해! 하지 마!’를 쓰면 대화가 잘 되지 않아요. 두 손을 마주 잡는 대화가 되어야 하죠. 예를 들어 아이가 시험을 앞뒀는데 공부하지 않을 때, 아이에게 강요하지 말고 부탁의 말을 합니다. ‘내일이 시험이네, 엄마가 시험공부 도와주고 싶어. 우리 같이 공부할래?’라는 식으로요.”

출판계에도 마음을 열어주는 <공감 대화법> <자존감 대화법> <사춘기 대화법> 등 소통과 공감력을 키우는 다양한 대화법에 관한 책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중 10쇄를 찍으며 인기를 끈 <엄마의 말하기 연습>은 화내지 않고 상처 주지 않고 진심을 전하는 대화법을 알려준다.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서로 비난하며 대화하는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지은이 박재연씨는 책에서 “사람들이 쉽게 갈등에 휩싸이고 그 속에서 허덕이는 이유 중 하나는 ‘자동적으로 툭 떠오르는 자기만의 생각’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숙제하지 않는 아이를 보고 ‘숙제를 안 하는 건 잘못이야. 고쳐야 해’처럼 그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말해버리면 상대와 단절되는 대화 유형이 된다고 한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지 않고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고 비난하고 강요하고 비교하고, 어떤 행위에 대해 자신의 말을 합리화하면서 대화하게 된다고 한다. 이로 인해 상처난 관계를 회복하는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1단계는, 걱정되고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내 마음을 인정하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서로의 말 때문에 ‘내가 아팠고 상대가 아팠고 서로 상처받고 있었구나’라고 속대화를 한다. 이럴 때 지금 후회하고 누군가에게 미안해할지 모를 자신의 마음을 먼저 위로하라고 이야기한다.

‘가족과 화내지 않고 대화’ 강좌 반응 뜨거워

부모 교육 강좌에도 자녀 혹은 배우자와의 대화법은 빠지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누구나 겪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 강좌를 듣는 부모가 많다. 지난 6월 ‘토닥토닥 가족대화 레시피’ 강좌를 연 강원도 강릉 공동육아 커뮤니티 ‘맘마모예’의 한지영 대표는 “사랑하는 가족과 화내지 않고 대화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강좌를 마련했는데 참가한 부모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대표 역시 이 강좌를 들은 뒤 “말할 때 자녀, 배우자의 관점에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 한결 부드럽게 말하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단다.

‘토닥토닥 가족대화 레시피’ 강의를 한 송근영 부모교육 강사가 말했다. “자신이 일방적 대화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요즘 ‘감정 코칭’이란 말이 자주 나오잖아요. 감정을 잘 표현하고 그걸 잘 읽어내는 게 중요해요. 이해와 공감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해요.”

무엇보다 공감과 소통을 위한 진정한 대화는 듣기에서 출발한다. 책 <대한민국 부모>를 쓴 정신분석가 이승욱씨는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경청’이라고 강조한다. “경청을 잘하는 방법은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거예요. 그렇게 남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는 경청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자녀와의 소통 돕는 비폭력대화 팁

‘○○하지 마’ 대신에 ‘○○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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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자녀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가 많다. 소통의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에 빠진 부모들에게 <청소년을 위한 비폭력대화> <어린이를 위한 비폭력대화>를 쓴 김미경 강사가 자녀와의 소통을 돕는 비폭력대화의 팁을 알려준다. 네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상대방에게 부탁할 때의 요령을 소개한다. 이때 피해야 할 말은 ‘어른은 마땅히 ∼을 받을 자격이 있다’ ‘내가 ∼한 것은 정당하다’ 등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

일찍 와라! → 6시까지 올 수 있겠니?

#긍정적 표현을 쓴다

소문내지 마! → 너만 알고 있어줄래?

밥 안 먹을래? → 밥 먹을래?

#의문형으로 부탁한다

알려줘! → 알려줄래?

이건 네가 해! → 이건 네가 했으면 하는데, 어떠니?

떠들지 마! → 소리를 낮춰줄래?

#부탁할 때 자신의 상황과 필요를 함께 이야기한다

휴지통 좀 비워! → 도움이 필요해. 휴지통 좀 비워줄래?

피곤해, 지금 못해! → 피곤해서 한 시간 정도 쉬고 싶어. 5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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