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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엄마의 품격

검찰발 ‘단독 기사’에 멀미가 난다

검찰은 어떤 조직이 될지
스스로 선택할 기회 놓치지 않기를

제1283호
등록 : 2019-10-15 12:46 수정 : 2019-10-1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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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 앞 촛불을 든 시민들. 이정우 선임기자
대학 시절 그 후배는 학생회 활동이나 모임에 얼굴을 거의 비추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빈활’이라 하던 철거 반대 활동에는 꼭 나왔다. 1990년대 초반 재개발 광풍이 가난한 동네를 골라가며 덮칠 때였다. 소식이 들리면 알아서 집결하는 식이었는데 그가 어느 날 늦은 시간 학생회실에 와서 “오늘 어느 동네예요?”라고 물었다. 어리둥절해진 내가 “너도 가?” 물으며 알려주자, 그가 “새벽이 제일 위험해요”라고만 말하고 현장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쇠파이프 들고 용역 깡패에 맞서야 하는지라 선뜻 나서기 힘든 일이었다. 이 후배는 깡패와 잘 구별되지 않는 외모의 소유자인데다 학생회 활동에 도통 참여하지 않아 ‘낯이 선’ 탓에, 다른 과 친구들에게서 다음날 “용역이 학교까지 따라왔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는 돈을 아끼려 그랬는지 이발 직후 머리통과 한참 자란 뒤 머리통이 세 배쯤 차이 나는 ‘뻣뻣한 깍두기’ 머리를 항상 하고 있었고, 경기도 한 읍내에서 서울 소재 학교로 다니며 자주 눈이 충혈돼 있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때려 부수는 철거가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지 성장 과정이나 경험에서 익히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운동권이었을까 아니었을까, 의미 없는 구별이다. 그를 보며 ‘모 아니면 도’ 식의 진실은 없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다만 어떤 진실이 ‘떠오르’거나 ‘내보이’는 순간은 분명 있다. 그 밤의 철거 반대 투쟁에 나서던 그와 평소 고시 공부에 매진하던 그는 같은 사람이다.

한겹 한겹 정신을 바짝 차려 진실을 여며야 하는 계절이다. 나에게 선뜩하게 다가온 검찰의 진실은 자택 압수수색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과 통화했다는, 당사자를 포함해 몇 안 되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 불법도 위법도 아닌 그 단순한 행위가, 자유한국당 의원의 귀에 ‘쪼르르’ 전해진 것이다. 스스로 당사자가 되어 정치집단화한 게 아니라면 정치세력의 주구 노릇을 하는 꼴이다.

어느 누구도 검찰에 찍히면 이렇게 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여과 없이 접하다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 ‘빡침’이 올라왔다. 전두환의 총칼 못지않게 검찰의 독점적 기소권과 수사권은 위험하다. 무엇보다 기분이 더럽다. 위임한 적 없는 권력이니까. 3년 전 들었던 LED(발광다이오드) 촛불이 집에 있기에 주머니에 넣어 갔다. 서울지하철 서초역 4번 출구 근처에서 만원버스에 낀 승객처럼 옴짝달싹 못하고 서 있는데 옆자리 아저씨의 기다란 촛불이 눈에 확 들어왔다. 깃대 같은 봉 꼭대기에 촛불을 매달았다. 촛불은 이렇게 진화한 것인가.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때와 차이라면, 단체는 물론 사적으로라도 조직된 참여가 거의 안 보였다는 점이다. 당시 활발했던 단체대화방조차 조용하다. 간혹 연락이 된 친구와도 “만나기 어려우니 알아서 하고 가자”는 분위기다.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도 그랬다. 귀갓길 교통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순간까지 ‘검찰개혁’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이 승강장으로 내려가면서는 일순간 조용해졌다. 드물게 ‘태극기 할배’도 끼여 있었으나 저마다 묵묵히 서 있었다. 짧은 순간 따로 또 같이 서 있는 단독자들 사이의 광대한 침묵이 나쁘지 않았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검찰발 ‘단독 기사’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티끌 하나라도 잡아 ‘기승전경심’으로 엮는 한쪽 주장을 언론이 앞다퉈 도배해준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기사는 댓글로 판판이 깨진다. 독자가, 누리꾼이 정보 제공자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누가 더 똑똑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더 절실하냐의 문제인 것이다.

검찰이 건건이 반박하고 난처하면 뭉개며 언론플레이 하는 모습을 보니 조국 장관 가족이 처한 상황이 대략 보인다. 검찰의 ‘자체 발광’으로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인다. 진실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늘 이런 식이다.

검찰에 당부하고 싶다. 어떤 사람, 어떤 조직이 될지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그러라고 큰 칼 옆에 차고 국록을 먹는 게 아닌가.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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