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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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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그저 삶의 부산물일 뿐

책으로 나온 ‘김아리의 행복연구소’ <올 어바웃 해피니스>
등록 2019-09-06 04:36 수정 2020-05-02 19:29

고전적 우화 의 교훈은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처한 현실이 지옥이라면? 폭력과 빈곤, 불치병으로 몸과 마음이 환난을 겪고 있다면?

프리랜서 기자 김아리가 ‘마음 주치의’들과 인터뷰를 시작한 이유는 이랬다. “를 보고 행복을 알게 됐다는 사람을 볼 때마다 를 보고 절망할 사람들이 떠올랐다. 고통은 어디에서 오며 그 고통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그리고 마침내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해 행복학자, 심리학자, 정신과 전문의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김영사 펴냄)는 에 연재된 ‘김아리의 행복연구소’에 초대됐던 이들 중 11명과 나눈 행복 대담집이다. 전문가들은 부모·배우자·자녀 등 가족 관계, 종교, 연애, 불안, 인정중독, 자존감 등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주는 인생 이슈에 각자의 의견을 내놓는다.

김아리의 첫 질문은 고통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다. 40대에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정신과 전문의 김혜남은 답한다. “고통을 그냥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에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나에게도 그게 일어났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3개월 연애하고, 3년 싸우고, 30년 참고 산다는 부부 관계. 과연 결혼제도 안에서 행복이 가능할까? 가족상담이 전공인 김용태 초월상담연구소장은 “감정을 보호하는 제도로서 결혼은 필요하다”며 부모, 즉 원가족에서 독립하는 것을 행복한 결혼 생활의 필수조건으로 꼽는다. 살아온 배경은 비슷할수록, 성격은 다를수록, 취미는 공유할수록 행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실용적 조언도 덧붙인다. 요즘 부모들은 옛날보다 더 아이들을 끔찍이 돌보는데, 왜 아이들은 불행한 걸까? ‘부모 멘토’인 조선미 정신과 교수의 답은 명쾌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시간은 어른으로 치면 일일노동이고 학원 가는 건 야근이다. 쉬고 놀고 멍 때리고 심심하고 지루하고 이게 아이들의 삶이어야 한다.”

가장 근본적 질문은 역시 ‘행복이란 무엇인가’다.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은 “행복은 애쓰는 게 아니라 좋은 경험 그 자체에 있다”고 말한다. 심리학과 교수 서은국은 “행복은 없다. 긍정적인 감정일 뿐”이라고 한다. 그는 “아마추어가 아무리 열심히 골프 연습을 한다고 타이거 우즈가 될 수 있냐”고 반문하며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능력은 유전이라고 한다. 행복하려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그냥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 먹으며 행복해하라는 말씀.

표현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것은 ‘나에 대한 앎’이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내 선택과 판단의 결과까지도 책임지는 것이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잊히지 않는다면, 또한 완고한 부모와 화해가 불가능하다면, 부모처럼 따뜻하게 스스로를 돌봐라.’ ‘원망은 성숙을 가로막는다.’

행복 연구의 여정을 마무리 짓는 지은이의 결론은 이랬다. “더는 ‘행복vs불행’이 인생의 중요한 프레임(틀)이 되지 않았다. 대신 성장과 멈춤, 포용과 배제, 독립과 의존이 중요한 프레임이 되었다. 행복은 그저 성장, 포용, 독립의 부산물이었을 뿐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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