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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만나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출판사 운영하며 동물권 운동 해온 책공장더불어 김보경 대표
등록 2019-02-02 16:29 수정 2020-05-02 19:29
백영욱 그림

백영욱 그림

출판사 책공장더불어의 김보경 대표가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글을 모아 를 펴냈다. 이 책은 출판사의 34번째 책이다. 책은 만들어본 적 없이 시작한 일이라 첫 두 해는 한 권을 내고는 제작을 배웠다 쳐도 2004년 8월에 생겨 14년6개월 동안 34권이면, 1년에 3권꼴도 안 되는 ‘과작’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태만’은 아니다. 34권의 책은 모두 동물 책이다. 출판사는 동물운동 단체처럼 책에는 잘 보이지 않는 일을 많이 했다. 책은 모두 재생지로 찍는다. 조금이라도 더 동물을 위하는 길이다. 책을 펴낸 뒤 수익금으로 보호소에 사료를 갖다준다. 이때 신청한 독자들과 동행한다. 김보경 대표 개인으로도 그렇게 번 돈으로 동네 길고양이들을 먹이고 병원에 데려간다. 10년이 넘어도 제작비 마련 때문에 “똥줄이 타고” 여전히 사훈은 “망하지 말자”이다.

의식은 확장되고 사는 방법은 축소되고

미세먼지도 별로 없고 날씨도 따뜻한 드문 겨울날,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당 있는 집, 출판사 겸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을 방문했다. 그는 책 제목의 ‘좋은 사람’으로 가는 길을 ‘찡이’가 놓아주었다고 말한다.

‘징기스칸’을 줄여서 찡이라 부르던 강아지는 김 대표의 언니가 데리고 온 유기 강아지였다. 온 가족의 사랑을 받던 강아지와 지내면서 다른 생명체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집에 마당이 있어 종종 오는 고양이가 보여 집 안에 물과 먹이를 갖다두었다. 외진 집 마당이라 동네 사람들과 트러블(마찰)도 없으니 쉬운 마음으로 내놓은 것이었다. 어느 날 찡이랑 동네 마실을 갔는데 어미 고양이가 비닐봉지를 물고 종종걸음 치는 것을 보았다. 새끼들에게 비닐봉지를 먹이려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니 더 책임감이 생겼다.

“우리 찡이만 예뻐, 찡이만 소중해라는 수준에서 시야를 조금 더 확장하게 되었다. 한번 시야가 넓어지면 그 확장은 끝이 없다. 동물원의 동물도 측은하고, 동물실험에도 반대할 수밖에 없고, 공장식 축산에도 반대하고, 브라질의 사라지는 원시림에도 관심 갖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책임지겠다는 것이고, 그 사랑을 위해서 행동하겠다는 것이다. 4장으로 이뤄진 책도 개인적인 것에서 사회적인 것으로 확장된다. 1장 동물을 대하는 것으로 알 수 있는 사람 됨됨이, 2장 길거리 동물, 3장 사회가 동물을 대하는 방식, 4장 인간과 동물이다. 삶의 확장이지만 삶의 방식 축소이기도 하다. “길고양이 밥을 주면서 동물 문제에 관심 가져 채식을 하게 되었고, 오리털 옷을 못 입으니 겨울에 춥게 지낸다.”

마당에 먹이 그릇을 내놓는 일로 시작된 ‘캣맘’은 ‘직업’이 되었다. 집고양이가 된 길고양이 대장이, 집으로 밥 먹으러 오는 대장이 딸 민호, 구내염을 앓는 노랑이, 동네 골목에서 밥 먹는 갑수 등 10마리를 보살핀다. “캣맘은 정말 일이 많다. 하루 두 번 그릇을 챙기고, 그러다보면 누가 안 먹었네 어디 아픈가, 누가 안 보이네 알게 된다.” 그렇게 해서 동네의 중성화수술(TNR)을 책임지고 길고양이 개체를 유지하는 일을 맡게 된다. 맨 처음 중성화수술은 대장이로부터 시작됐다. “봄에 임신했는데 가을에 또 배가 불러오는 것 같아서 병원에 데려갔다. 다행히 임신은 아니었다. 봄에 낳은 세 마리 중에서도 한 마리 민호만 남았던 터다. 의사는 계속 출산해서 자궁이 손상됐다고 했다. 또 임신하면 큰일이었다.”

현재 동네에서 고양이는 태어나지 않아, 있는 애들의 병을 살피고 늙어가는 것을 보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캣맘의 일이 되었다. 이런 경험들이 출간 목록에 그대로 녹아 있다. 늙어가는 반려동물 곁이라 를 내고, 돌보던 동물이 아픈 걸 지켜보다 , 아이들이 떠나니 , 캣맘이 되다보니 를 냈다.

동물의 예쁘지 않은 모습 보여주는 게 일
이제 ‘적어도’ 18살이 된 장군이와 함께한 책공장더불어 김보경 대표. 김진수 기자

이제 ‘적어도’ 18살이 된 장군이와 함께한 책공장더불어 김보경 대표. 김진수 기자

그런데 이 좋은 사람이 화내고 소리를 친다. 중년 남자가 발을 구르며 “에잇” 하는 걸 본 김 대표는 “왜 그러시는데요, 우리 고양이예요”라고 말한다. 고양이에게 돌을 던지는 아이에게 달려가 이야기해준다. “너보다 약한 동물에게 해코지하는 거 아니다.”

출판사에는 어린이 독자도 많다. ‘사지 말고 입양하자’ 시리즈 덕이다. 작은 동물까지 건드릴 생각은 없었는데, 학교 앞에서 햄스터를 팔고 한국 교육 현실에서 이런 작은 동물들이 스트레스 해소용이 된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책을 보면 이렇게 힘들게 햄스터와 토끼를 키워야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 일이 많다. “이렇게 하면서까지 기르고 싶어?”라고 묻는 책이다. 그렇게 동물에 대해 공부한 어린 학생들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묻는다. “학교에서 닭을 기르겠다는데 괜찮나요?” “○○동물원의 ○○이 안 좋아 보이는데요, 어떡하죠” 등등.

어린이들의 전자우편을 받을 때 말고도 보람 있었던 순간은 많다. “라는 책을 내기 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홍보했는데, 한 임신한 여성이 부탁을 해왔다. 시부모님이 같이 지내는 고양이를 버리라고 한다며 책이 언제 나오느냐고 물었다. 들어온 원고를 보내주었다. 그 책을 보고 시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 는 동물권이 생소하던 시절에 냈다. 필자를 섭외했는데 ‘그럼 동물원에 동물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라고 반문하는 학자가 있을 정도였다. 나중에 동물원 동물 시민단체가 이 책을 보고 모임을 조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뿌듯했다.”

출판사 걱정을 독자들이 더 많이 한다. “최근 동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인터넷 신문사나 유튜브 중계 등이 많이 생겨났는데, 인기 많은 이유가 ‘예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근데 우리 책은 문제행동, 중성화수술, 병원, 노화, 유기 등 이런 것만 다루니까.” 하지만 예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그의 일이다. 한때 보호소에 시추가 그렇게 많았다.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독자와 보호소에 가면 “왜 문제행동 없고 아프지도 않은 아이가 이렇게 많냐”고 물어온다. 유기동물은 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많아지고, 소비자에게 맞춰 동물을 공급하는 시스템은 생산·판매업자들과 연결되고, 이 시스템은 식용 산업과 연결된다.

출판사가 생기고 통과해온 2000년대는 이런 문제가 공론화되고 동물권 운동이 성장한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최근 유기동물 구조단체 케어에서 유기동물을 안락사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휴먼소사이어티라는 영국의 동물단체는 안락사를 한다. 공간, 돈 때문이라 밝히고 1년에 한 번 실시한다. 그런데 케어는 그런 일 절대로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케어의 박소연 대표가 안락사 문제를 이제부터 논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안락사가 아니라 살처분이다.”

반려동물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

동물을 만나서도 ‘좋은 사람’까지 안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냥하는 사람들도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히틀러도 개를 끔찍하게 챙겼고 동물보호법도 만들었다. 동물을 만나서 겪는 가장 큰 변화는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 내 곁에 있다가 떠난 반려동물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아이가 변화시켜준 모습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좋은 사람이 된다.” 김 대표는 서문에서 ‘좋은 사람’ 앞에 ‘아주 조금, 살짝, 요만큼’을 넣고 싶었다고 말한다. 동물을 만나기 이전 김보경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의 그는 ‘아주 좋은 사람’임이 틀림없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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