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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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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아닌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HIV 감염인 62명 심층 인터뷰 담은 책 <선물> 나와
등록 2018-12-08 02:28 수정 2020-05-02 19:29

2017년 가을. ‘용인 에이즈(AIDS) 여중생 성매매 사건’과 ‘부산 20대 에이즈 여성 성매매 사건’이 연달아 보도됐다. ‘에이즈’는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사람들의 두려움은 클릭으로 이어졌다. 기사 제목에 ‘충격’ ‘발칵’ ‘비상’ ‘일파만파’ 같은 단어가 넘실댔다.

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은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KNP+)의 정욜 활동가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댓글을 보다보면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사람이고, 이야기가 있는데 가치가 없다고 평가받는 느낌이에요.”

에이즈 예방만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HIV 감염인의 삶은 잘 보이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묻지도 않고 보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이름과 얼굴과 목소리가 아닌 에이즈라는 질병으로 기억될 뿐이다.

바이러스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 정욜 활동가와 KNP+는 HIV 감염인에게도 삶과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책을 펴냈다. 12월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출간한 이다.

감염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감염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의 감정은 어떠했는지, 힘든 순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는 어떤지, 사랑에 대한 철학은 무엇이고, 어떤 사회가 되면 숨통이 트일 것 같은지, 실시간 검색어에는 담기 힘든 사람의 이야기가 묻어 있다.

30대 여성 ‘스텔라’씨는 최근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다. 남자친구에게 청혼을 받고 가슴속에서 꽃망울이 폭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스텔라씨는 HIV 감염인이지만 항바이러스제를 꾸준히 먹으면 감염률을 현격히 낮출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믿기로 했다. 남자친구는 HIV 감염인에게 모욕을 주는 기사 댓글에 잘못된 정보를 지적하는 답글을 묵묵히 달곤 한다.

30대 남성 ‘희망이’씨는 구의원을 목표로 하는 정치인이다. 2008년 경쟁 세력이 그가 성소수자에 감염자란 사실을 무기로 사용했다. 그에겐 느닷없이 목에 들어온 흉기였다. 희망이씨는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히 드러내니까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 늘었다. 지금의 도전이 또 다른 도전자를 만들 거라 믿고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는 평범한 HIV 감염인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2018년 3월부터 8월까지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질병을 넘어 사람을 보라’ 프로젝트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KNP+는 HIV 감염인 62명을 아홉 번 만나 심층 인터뷰를 했다.

손문수 KNP+ 대표는 “HIV/AIDS에 대한 편견 때문에 30여 년의 세월을 숨죽이며 살아온 이들이 우리 사회를 향해 ‘나 여기 있다!’고 소리치고 있다”고 발간사에 적었다. 그러면서 “이 스토리북이 우리 사회를 모두 변화시킬 순 없겠지만, 더 이상 질병으로 차별받는 일 없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길 기대해본다”고 밝혔다.

이 책은 서점에서 팔지 않는다.

구하고자 하는 분은 KNP+의 전자우편(knpplus2012@gmail.com)으로 연락하면 된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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