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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고 또 즐겨라 그리하면 일을 얻으리라

인디의, 인디에 의한, 인디를 위한 인디음악 축제 잔다리페스타
등록 2018-10-13 09:04 수정 2020-05-02 19:29
10월6일 밤 서울 서교동 무브홀에서 열린 잔다리페스타 ‘브리티시 나이트’ 파티에서 ‘러브 쎄가’가 공연하고 있다. 잔다리페스타 조직위  제공

10월6일 밤 서울 서교동 무브홀에서 열린 잔다리페스타 ‘브리티시 나이트’ 파티에서 ‘러브 쎄가’가 공연하고 있다. 잔다리페스타 조직위 제공

가을이다. 이맘때면 전국 곳곳에서 음악 축제가 열린다. 해마다 매진되는 인기 축제가 있는가 하면, 한두 차례 하다 슬그머니 사라지는 축제도 있다. 지난 10월4~7일 서울 홍익대 앞 일대에서 열린 음악 축제 ‘잔다리페스타’는 좀 특별하다. 우선 홍대 앞으로 상징되는 인디음악 기획자와 뮤지션들이 자발적으로 연다는 점부터 그렇다. 하나의 특정 장소가 아니라 여러 공연장과 라이브클럽에서 동시다발로 열린다는 점도 여느 음악 축제와 다르다. 무엇보다 그저 즐기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해외 진출 같은 음악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는 점이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출연료도 없이 외국에서 온 밴드들

잔다리페스타는 2012년 처음 열렸다. 음악기획자 공윤영씨가 박다함, 홍세존, 김민규, 정문식, 기명신 등 음악계 사람들과 함께 준비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정부기관이 우리 음악인의 해외 진출을 직접 지원하는 것도 좋지만, 외국 음악 산업 관계자들을 한국으로 꾸준히 불러들여 우리 음악인들과 접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일을 저질렀다. ‘잔다리’는 홍대 앞 서교동에 있던 작은 다리의 옛 이름이다. 자신만의 음악을 지키며 고군분투하는 인디음악인들과 음악기획자, 대중 사이의 가교가 되겠다는 뜻에서 축제 이름으로 삼았다.

언뜻 보기에 얼마나 갈까 싶었던 축제가 올해로 벌써 7회째를 맞았다. 록, 펑크,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장르의 국내 밴드 63팀과 영국, 프랑스, 헝가리, 인도네시아 등 외국 밴드 43팀이 공연을 펼쳤다. 이들은 여느 축제와 달리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 자신들의 음악을 선보이고 판매하는 ‘쇼케이스’ 무대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온 밴드들은 항공료와 숙박비까지 스스로 부담했다. 그런데도 이 무대에 서려고 402팀이나 지원했다. 주최 쪽은 무대에 오를 106팀을 최종 선정했다.

반면 외국 음악산업 관계자들을 초청할 때는 항공료와 숙박비를 대준다. 그래야 와서 이곳 밴드들의 음악을 듣고 향후 계약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해는 외국 음악 페스티벌, 레이블, 에이전시 관계자 40명을 초청했다. 여기에 따로 초청하지 않은 외국 음악산업 관계자 60여 명이 더 왔다. 그들은 잔다리페스타에 오는 음악산업 관계자들과 음악인들을 만나려고 직접 비용을 들여 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스스로 비용을 내고 오는 음악산업 관계자는 10~20명에 그쳤다고 한다. 올 들어 잔다리페스타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0월5일 저녁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잔다리페스타 공연장들을 돌아다녔다. KT&G 상상마당에서 카르코사(Karkosa)가 공연하고 있었다. 영국의 무명 인디밴드인데도 제법 많은 국내 팬들이 몰려들어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들은 유튜브와 SNS를 통해 팬이 됐다고 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 연결돼 있으면 물리적 거리 따위는 문제되지 않는 듯 보였다. 롤링홀에선 벨기에 밴드 토트(THOT)가 얼마 안 되는 관객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고 있었다. 보컬리스트는 “아시아에서 공연하는 건 처음이다. 정말 멋진 페스티벌이다”라고 말했다. 무브홀에선 헝가리 밴드 몽구즈 앤드 더 마그넷(Mongooz and the Magnet)이 연주하고 있었다. 기골이 장대한 베이시스트가 커다란 콘트라베이스를 작은 일렉트릭 베이스처럼 다루는 게 인상적이었다. 작지만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라이브클럽인 클럽 FF에선 국내 밴드 ABTB가 공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크라잉넛의 한경록이 찾아와 공연을 보고는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축제 넘어 비즈니스 연결을 목표로

이날 공연장 8곳에서 열린 쇼케이스가 모두 끝난 뒤 무브홀에서 ‘프렌치 나이트’ 파티가 열렸다. 프랑스 밴드들이 잇따라 무대에 오른 가운데 여러 나라에서 온 음악 관계자들과 뮤지션들이 자유롭게 술과 대화를 즐겼다. 자연스럽게 비즈니스의 장이 마련된 셈이다.

올해 잔다리페스타의 모토는 “노는 것도 실력이다. 즐기면 일이 된다”이다. 즐겁게 노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로 연결하려는 주최 쪽의 고민이 녹아든 결과다. 그리고 그 고민과 노력은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축제를 통해 잠비나이, 이디오테잎, 세이수미, 피해의식, DTSQ 등 국내 밴드들이 해외 진출 기회를 얻었다. 올해는 국내 밴드에 대한 관심과 문의가 지난해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고 한다.

7년에 걸친 노력이 서서히 결실을 얻고 있지만, 재정 면에선 늘 적자다. 2016년과 2017년 서울문화재단의 축제지원사업에 선정돼 일부 재정 지원을 받았지만, 올해는 시민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탈락했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 공연지원사업에 선정됐지만, 올해는 탈락했다. 정부나 공공기관으로부터 아무런 재정 지원 없이 진행한 올해 축제는 1억원가량의 빚을 남겼다. 그나마 스태프가 돈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했기에 이 정도다. 1회 때부터 공동 주관사로 참여하며 공연장을 무료로 내준 KT&G 상상마당, 10월5~6일 이틀간 열린 음악 콘퍼런스 장소를 무료로 빌려준 라이즈호텔, 맥주를 제공해준 네덜란드 맥주회사 그롤쉬 바이젠 등도 큰 도움이 됐다. 남은 빚은 잔다리컬처컴퍼니의 공윤영 대표와 이수정 사무국장이 다른 일을 하며 갚아야 할 처지다.

이렇게 중요한데 왜 정부 지원 못 받나?

매번 빚만 남는데도 왜 하는 걸까? “지금은 힘들지만 앞으로 좋아질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7년간 쌓아온 노하우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결과를 내기 시작했거든요. 홍대 앞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도 실력만 있으면 멋지게 성공할 수 있는 비즈니스 토대를 만드는 것이 저의 오랜 꿈이자 신념입니다. 잔다리페스타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유죠.” 공 대표의 말이다. 외국에서 온 음악산업 관계자들은 그에게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데 왜 정부 지원을 못 받냐?”고 묻는다. 그러면 공 대표는 “우리 정부는 사업을 직접 하려 한다. 자신들의 성과로 가져갈 수 없는 외부 사업엔 잘 지원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잔다리페스타는 어쨌든 계속 갈 것이다. 공 대표는 “인건비 빼고 3억원만 있으면 축제를 걱정 없이 만들 수 있다. 이를 마련하기 위해 연계 비즈니스 수익 모델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당장은 막막하고 길이 잘 안 보여도 그들은 결국 해답을 찾아낼 것이다. 잡초처럼 질기게 살아남은 홍대 앞 인디신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서정민 문화부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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