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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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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해빠진 ‘정자왕’의 엄마

성적 영역에서 둔하고 순진한 건 미덕이 아냐

자녀에게 올바른 성지식을 심어주자
등록 2018-09-16 11:29 수정 2020-05-02 19:29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들 중에는 자칭 타칭 ‘카사노바’가 여럿이다. 어떤 아이는 여친이랑 손잡고 심야영화를 보았다고 하고, 다른 아이는 길거리 헌팅을 당해 그 여자아이와 사귀게 됐다고 하며, 또 다른 아이는 여친이랑 길을 가다 깡패들을 만나 싸웠다고 한다.

이 카사노바 소년들이 자랑하는 여친들은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찌찌 크고 키도 크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반드시 다른 학교에 다닌다(일부는 중학교). 여기까지 듣다가 푸하하하 아이 얼굴에 밥알을 뿜었다. “대체 그 비슷한 여친이 존재하긴 하는 거야?” 내 물음에 아이는 “백퍼 개뻥 같긴 한데, 재미있어. 우히히!” 하며 몸을 비튼다.

바야흐로 호르몬의 농간이 시작된 나이이니, 이해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길 가던 초등학생에게 반해 그날부터 ‘1일’(사귀기 시작한 첫날) 하기로 한 중학생 누나는 너무한 거 아니니. 깡패들하고는… 13 대 1로 싸웠으려나.

내가 사는 수도권 소도시는 초등생 커플을 위협하는 불량배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곳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지만, 불량배 못지않게 위험한 것은 일부 엄마들이다. 자기 아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아이들 사이에서 ‘야마왕’(야동을 많이 보는 아이)으로 불리는 한 소년의 엄마는 “우리 아이는 순진해빠져서 걱정”이라 하고, ‘정자왕’이라 불리는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우울증인지 틈만 나면 혼자 방에 처박혀 있어 걱정”이라고 한다. 다수의 전언과 복수의 증언을 들은 나로서는, 난감하다. 아는 척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땀 삐질 흘리며 에둘러 말해보지만, 아이 아빠가 바빠서 아들 성교육을 안 시킨다는 한탄에 이르면, 아 정말 어쩔…. 아들 성교육을 꼭 아빠가 시켜야 한다고 법에 나와 있나요.

확실히 더 민감한 쪽은 여자아이 엄마들이다. 하지만 어떤 민감함은 당황스러울 뿐만 아니라 부적절하다. 아이들이 주말 초저녁에 노래방에 가겠다고 조르자 한 엄마가 “이 시간에는 오빠들이 많아서 안 돼”라고 막았다. “어떤 남자애가 책상을 옮기다가 갑자기 몸에서 뭐가 나왔대”라는 아이에게 어느 엄마는 “그런 남자애들을 조심해”라고 했단다. 대체 왜 이러세요. 두 엄마 모두 아이들에게 ‘몹쓸 사인’을 주었다. 오빠들이 많지 않은 시간과 장소만 다녀야 하나. 청소년기의 발육과 성장이 무슨 호환·마마라도 되는가. 절대 안 될 일이지만 혹시라도 아이가 성적인 피해를 당했을 때, 가해자의 잘못은 인지하지 못하고 그 시간 그 장소에 간 내 탓이라고만 여기면 어쩌려고. 겪을 만큼 겪고 볼 만큼 보지 않았나.

성적 영역에서 둔하거나 순진한 것은 결코 미덕이 아니다. 자식을 키우는 처지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이들이 게임 채팅방에서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몸캠 피싱이 어느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 청소년이 출장 마사지사를 집으로 부르기도 하는 지경인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내 자식도 남의 자식도, 나도 당신도 지킨다.

우리 멍청한 어른은 되지 말자. 가둔다고 아이들이 가둬질 것이며, 경계한다고 발기가 안 될 것인가. 반편이나 불능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성장기의 성징들을 기꺼이 축하하고 축복하자. 동시에 그것이 본인과 타인에게 불행이나 악몽의 씨앗이 되지 않도록 책임감 있는 처신을 알려주자. 가해 예방교육과 올바른 피임법이 두 기둥이다.

특히, 거절하면 해선 안 된다고만 가르칠 게 아니라 명백한 동의가 있을 때만 해야 한다고 각인시키자. 어떤 게 동의에 해당하는지 4지선다 5지선다, 골든벨 문답 풀이라도 하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야기 나눌 필요가 있다. 역할 바꾸기나 상황극도 좋다. 아이를 믿되 내 아이만은 다를 거라고 여기는 것은 절대적으로 경계할 일이다.

아이들은 가르치겠지만 ‘순진해빠진 어른이’들은 어쩐담. 다음에 계속.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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