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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 이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해원>의 구자환 감독
등록 2018-05-09 01:44 수정 2020-05-02 19:28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解寃)은 산 넘고 강 건너가야 볼 수 있는 영 화예요.”

지난 4월25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구자환(51) 감독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상영관이 많지 않다는 것을 농담처럼 한 말이다. 은 한국전쟁 전후 전국 각 지역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다. 5월10일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현재 까지 확정된 개봉관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강원, 충 남, 경북, 경남 등 20여 곳뿐이다. 이마저도 대부분 소규모 독립예술영화관이다.

다큐멘터리영화 은 제주 4·3사건, 국민보도 연맹원 학살, 부역자 학살, 미군 폭격에 의한 학살 등 우리 현대사의 쓰라린 기억을 끄집어낸다.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처참함과 아픔을 오롯이 전한다.

민간인 집단학살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0년 한국전쟁 전후에 일어났다. 이 당시에 전남 여수·순천 사건, 국군 11사단의 빨치산 토벌작전, 거창·산청·함양 민간인 학살 사건 등이 일어났다. 국민보도연맹(이승만 정부가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의 사상을 전향시킨다며 좌익 출신 인사들과 민간인을 가입시켜 만든 반공단 체·보도연맹)원과 형무소재소자, 부역 혐의자 등이 학살 대상자였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규명범국민위원회에 따르면 미군과 남한군에 의해 사망하거나 집단학살된 민간인만 100만~130만 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억울한 거 국민들이 알게 해주오’

기자 출신인 구 감독은 2004년에 ‘국민보도연맹 사건’(한국전쟁이 터지자 국군과 경찰이 보도연맹원들을 인민군에 가담하거나 도울 수 있다며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을 취재하면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에 관심을 갖게 됐다. “보도연맹 유족분들이 저에게 항상 했던 말이 있어요. ‘우리 억울한거 전체 국민이 다 알게 해주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분들의 가슴에 맺힌 한이 저한테도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든 이분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어요.” 그는 그때 만났던 보도연맹 유족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영화 을 만들었다. 2004년부터 10년에 걸쳐 제작한 이 영화는 2013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구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자신의 숨겨진 가족사를 알게 됐다. “을 제작하던 2005년도에 어머니에게 보도연맹에 대해 물어봤어요. 그러자 엄마가 ‘너그 아버지도 창녕경찰서에 18일 안 갔다 왔나’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거예요. 에도 창녕 지역 보도연맹 사건 이야기가 나오는데 당시 잡혀온 보도연맹 가입자들이 너무 많아 나갈 사람 나가라고 경찰서 문을 열어준 적이 있대요. 그때 나온 사람들은 살고 남은 사람들은 학살당한 거예요. 저희 아버지는 그때 나온 겁니다. 그런데 엄마는 아버지가 거기서 죽을 수도 있었다는걸 전혀 몰랐던 거예요.” 35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던 사실을 뒤늦게 안것이다.

 

70년,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의 역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의 모습(위)과 학살터의 유골. 레드무비 제공/ 레드무비 제공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의 모습(위)과 학살터의 유골. 레드무비 제공/ 레드무비 제공

구 감독은 다큐멘터리영화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을 알리기 위해 인천, 대구 등 전국 학살 피해지 50~60곳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만난 민간인 학살 피해 가족들과 목격자들의 증언을 기록했다. 그들은 비료를 준다는 말만 믿고 보도연맹원에 가입한 농민이거나 지역 할당제 때문에 강제로 보도연맹에 가입한 청년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빨갱이로 몰려 처참하게 학살당했다. 마산·거제에서는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바다에 수장하고, 물 위로 떠오른 사람은 배 위에서 조준 사격해 죽였다고 한다. 학살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신원조사와 연좌제, 권력의 감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학살을 목격한 사람들은 평생 폭력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구 감독은 민간인 학살 피해를 통해 레드 콤플렉스의 광기를 드러낸다. “영화 에서 금정굴인권평화 재단 신기철 소장이 이런 말을 해요. ‘죽임을 당한 사람 들이 이념을 가져서 죽인게 아니라 오히려 이념 가진 사람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요. 그들을 죽이기 위해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은 거죠.”  

한국전쟁 전후 벌어진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은 70여년이 지났지만, 비극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을 제정해 항일독립운동, 반민주·반인권적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을 조사하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만들었다. 진실화 해위는 2010년 활동을 마칠 때까지 1만1175건을 조사 했다. 이 가운데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은 전체 73%인 8206건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가 책임으로 규명된 것은 300여 건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종료돼 더 이상 진상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는 여전히 국회와 정부가 과거사 기본법을 재개정하고 주동자를 조사해 처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세 번째 영화는 민간인 학살 가해자의 이야기

구 감독은 “진실을 기억하는 백발의 피해 유족들마저 사라진다면 진실은 영원히 묻혀요. 억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민간인 학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역사란 존재할 수 없어요. 이 문제를 덮어두고 인권과 평화를 이야기하는건 모래성을 쌓는 일과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구 감독은 카메라를 내려놓을 수 없다. 다음에 만들고 싶은 작품도 민간인 학살에 관한 것이다. “민간인 학살 가해자들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유족들의 삶과 달리 그들은 얼마나 영화로운 삶을 살아왔는지, 지금까지도 촉망받고 있는지를. 이건 에 이은 민간인 학살 세 번째 이야기네요. 영화로라도 피해자들의 원통한 한을 풀어드리고 싶습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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