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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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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상정의 인생철학

글과 그림으로 만나는 지혜의 장터 <생각 줍기>
등록 2018-01-06 15:11 수정 2020-05-02 19:28

수불석권(手不釋卷).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음. 이때 책은 세상사 모두를 아우르거니와, 손에 움켜쥐려고만 하는 게 집념(執念)이며, 멀찍이 두고 스치듯 볼 때 괘념(掛念)이라 한다. 괘(掛)는 걸어둔다는 뜻. 우리들 삶은 집념에 쏠릴 때 과유불급의 어리석음에 빠지기 쉽고, 괘념으로 기울 때 이기심의 폐곡선에 갇힌다. 집념과 괘념 사이의 중심잡이, 그것은 곧 삶의 시소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균형감각일 테다. 수불석권과 자기성찰을 같은자리말로 보아야 할 이유다.

(교양인 펴냄)는 자기성찰과 균형감각을 말하는 책이다. 120여 개 그림에 글을 포갰다. 그림은 간결하되 상징하는 바 뚜렷하고, 글은 단아하되 씨앗처럼 단단하다. 지은이 김영훈이 에 2013년부터 일주일에 세 차례씩 실어온 것을 추리고 다듬었다. 글·그림을 책으로 묶은 이유가 머리말에 보인다. “누구에게나 인생길은 초행이죠. 그 길, 물어물어 쉬엄쉬엄 가면 안 될까요. 내비게이션 필요 없다던데. (…) 그 길, 생각 나누며 가면 안 될까요. 혼자 걸으면 생각을 줍고 둘이 걸으면 생각을 나눈다던데.”

지은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은유와 대조의 문법이다. 먼저 은유. 은유는 같음의 논리로 서로 다른 것을 잇는 마음이다. 따뜻하게 다가가는 마음이다. “세상은 서로 낚고 낚이는 ‘낚시터’다. 돈으로 낚는 자는 하수요, 믿음으로 낚는 자는 ‘고수’다.” “세상은 다리 하나가 짧은 불완전한 의자이다. 앉은 자세가 조금만 비뚤어져도 ‘균형’ 잃고 넘어지기 일쑤다. 세상 탓하지 않고 비뚤어져 균형 잃은 ‘날’ 탓하련다.” “세상은 ‘누들’이다. 양껏 들어보지만 몇 가닥 못 건지고 미끄러지고 만다. 맘대로 되는 삶 ‘없다’. 쥘 듯 말 듯 애태우는 게 삶이다.” “‘조급’하게 구겨 신은 인생, 온 힘으로 뛰어야 할 때 달리기 어렵다. 구둣주걱은 ‘여유’다. 그게 인생을 온전하게 신게 해준다.”

그리고 대조. 대조는 차이를 가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마음이다. 냉정하되 분별하는 마음이다. “음식 찌꺼기는 ‘이’를 상하게 하지만 말의 찌꺼기는 ‘감정’을 상하게 한다.” “절망이란 부러지고 깨진 꿈의 ‘파편’이요, 희망이란 수습한 꿈에 덧댄 ‘부목’이다.” “‘공포’는 뒷덜미에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그 무엇이다. 유능한 권력은 이를 ‘제거’하고 무능한 권력은 이를 ‘조장’한다.” “‘선행’은 지우고 지워도 지워지지 않고 빛나게 드러나고, ‘악행’은 가리고 가려도 가려지지 않고 언젠가 드러난다.” “자물쇠를 내가 쥐면 ‘안’이고 남이 쥐면 ‘밖’이다. ‘갇힌’ 사회란 내 자물쇠를 남의 손에 넘겨준 것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인생은 한 묶음의 ‘쉼표’와 하나의 ‘마침표’로 이루어진 문장이다.” 그도 우리도 여전히 쉼표를 건넌다. 한 해를 또다시 보내고 맞았다. 인지상정의 인생철학이라 할 는 지은이가 주운 생각을 사람들과 나누려는 책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그림과 글 사이의 여백이 소중하다. 연필을 쥐고 책의 여백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나갈 때, 생각은 소유를 넘어 공유로 향한다. 지은이의 바람이다.

전진식 교열팀장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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