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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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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교 신자인가 상처받은 이웃인가

박정희·박근혜 숭배하는 노년층과 대화 시도하는 다큐멘터리 <미스 프레지던트>

김재환 감독 “괴물 치부않고 조롱·풍자 배제”…“삶의 열쇠 잃어버린 세대의 슬픔 배어나와”
등록 2017-11-09 01:53 수정 2020-05-02 19:28
다큐멘터리 <미스 프레지던트> 포스터. 단유필름 제공

다큐멘터리 <미스 프레지던트> 포스터. 단유필름 제공

#대화

“영화는 박정희와 박근혜 지지자들을 조롱하거나 풍자하지 않는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 그것이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 사이에 놓인 장벽을 넘어, 대화하고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정기동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두 글자로 정리했다. 대화! “나와 비슷한 중늙은이에게도 이삼십 대 젊은이들에게도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영화 도중에 뛰쳐나올지 모르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청주 노인과 울산 부부의 내면에 한 걸음 다가갈 수도 있다. 그것이 대화의 첫걸음이 아닐까?”

#즐거운 나의 집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돼 청와대에 들어갈 때, 그리고 집으로 쫓겨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세 차례 깔려 나온다. 톨스토이 문학을 전공한 천정근 목사는 “박정희와 육영수라는, 자기 삶을 이해하는 열쇠를 잃어버린 그 세대의 슬픔이 배어나온다”고 했다. “숭배자에겐 결별과 진혼의 카타르시스를, 반대자에겐 연민과 이해의 페이소스를, 우리 모두 돌아갈 즐거운 나의 집은 어디인가?”

#달콤한 죽음

영화 전문 블로거 홍준호씨는 “사랑으로 끝장내는, 인상적인 다큐멘터리”라고 평했다. “대통령이 여자(miss)였든, 잘못(mis)됐든, 신화(myth)였든, 그립게(miss) 만들었든 간에, 이제는 박정희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작품은 보여준다. …일말의 유머도 섞이지 않은, 묵묵히 진지하게 경청하는 연출이 박사모와 박정희 일가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박사모의 배알을 뒤틀리게 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사랑한 시대의 관 뚜껑을 닫는다.”

‘태극기’와 ‘촛불’ 양쪽서 비난 댓글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삶을 정면에서 응시한 다큐영화 가 10월26일 개봉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비극을 맞았던 날이다. 영화는 아침마다 박정희 사진에 절을 하고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는 청주의 노인과, 박정희 육영수 박근혜를 절절하게 사모하는 울산 부부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상황을 설명하는 한마디 내레이션도 없다. 어떤 풍자도 재미도 가미하지 않고, 모두가 외면하고 싶은 가장 미묘하고 불편한 지점을 건드린다. 김재환(47) 감독은 “단지 투명인간 취급하고 싶고 말을 섞는 것도 불편하고 그래서 덮어버리고 싶은 세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의 맛을 보태려다보면 자칫 그 세대에 대한 조롱과 모욕으로 비칠 수 있지 않을까 염려했다. 대화하는 자세를 흐리게 할 수 있는 요소는 최대한 배제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2011년 이후 가장 힘센 권력자들을 골라, 처절하게 풍자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누구도 감히 다루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신랄하고 용감하게 작품으로 연출했다. (2011)에서는 돈을 받고 식당을 소개하는, ‘맛이 간’ 지상파 3사의 뺨을 거칠게 후려갈겼다. 「MB의 추억」(2012)에서는 이명박이란 거울에 비친 우리 모두의 욕망을 들춰냈다. 감독의 말대로 “이명박을 비웃다가 스스로 기분이 나빠지는 영화”다. (2014)에서는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한테 카메라를 들이댔다. “예수 믿는 사람이 맞냐”는 질문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교회 목사의 거짓 권위와 경직된 모습을 한껏 조롱했다. 최고의 권력자들을 땅바닥에 패대기친 반대급부는 당연히 고난의 연속이었다. 숱한 소송과 보복을 당했다.

는 김 감독이 만든 종전의 영화들과 결이 많이 다르다. 권력자도 없고 풍자도 없다. 박정희와 박근혜를 직접 다루지 않고, 추종하는 세대를 다뤘다. 비틀어 조롱하지 않고, 불편한 존재에게 공존의 대화를 시도했다. 김 감독은 “권력자를 조롱한 종전의 영화를 만들었을 때보다 오히려 이번에 욕을 더 많이 먹고 있다. 욕먹을 각오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생각 못했다. 내 기대수명이 80살이라면 120살로 늘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지지자와 반대쪽, 이른바 ‘태극기’와 ‘촛불’ 양쪽에서 비난 댓글이 쏟아진다. “내가 만든 과거 영화를 알고 있는 박정희 지지자들은 ‘보수 파괴 음모가 있는 영화다. 아예 영화관에 가지 마라. 보는 순간 마수에 빠져든다’고 퍼뜨린다. 보지도 않고 욕한다. 반대쪽에서는 ‘우리가 왜 대화를 해야 해! 적폐 청산에 에너지를 모아야 할 때에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불온한 영화’라고 욕한다.” 그는 “국정원이 40억원을 지원했다는 화이트리스트 영화가 드디어 나왔다는 소리도 들었다”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나의 믿음은 믿을 만한가?”
11월1일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미스 프레지던트>의 김재환(47) 감독을 인터뷰했다. 그는 “우리는 가운데 선을 그어놓고 저 너머에 괴물이 산다고 치부해버린다. 그런 내 믿음이 믿을 만한지, 우리 스스로 돌아봤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11월1일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미스 프레지던트>의 김재환(47) 감독을 인터뷰했다. 그는 “우리는 가운데 선을 그어놓고 저 너머에 괴물이 산다고 치부해버린다. 그런 내 믿음이 믿을 만한지, 우리 스스로 돌아봤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감독 너는 누구 편이냐, 좌냐 우냐!” 양쪽에서 공격받는 그의 대답은 이렇다. “보수 농부가 생산한 건지 진보 농부가 생산한 건지 가려서 밥을 먹느냐. 보수 농부가 지은 쌀이라고 구토라도 하느냐?” 그는 “지금까지 나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작품을 했다. 누구 편이다,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만든 적 없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는 (적폐) 청산 이후를 생각하는 영화이다. “사람들은 가운데 선을 그어놓고 저쪽에는 괴물이 산다고 생각한다. 보려고도 하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과격한 박사모’라는 여섯 자로 그 세대를 치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박정희·육영수를 사모한다는 것 말고는 주위의 선한 이웃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많다. 그런 분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이렇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 말고 (지금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있는가. 안타깝게도 다른 길이 없다.”

가 대결을 넘어 대화를 희구하는 내면의 감정을 표출하고 공론화하는 구실도 하고 있다. 경북 구미가 고향인 청년 최상관씨는 에 올린 영화평에서 “사람은 공감받고 위로받길 원한다”고 적었다. “우리가 나이 든 세대를 향해 던져야 할 것은 과연 정죄의 칼날일까? 그들의 시대가 끝이 났다고 하여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며 뒤에서 등을 떠밀 수는 없다. 박정희, 육영수, 박근혜라는 마음의 거처를 잃어 방황하는, 순박한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상처를 위로받고 치유할 마음의 거처가 필요하다.” 닉네임 ‘이션’이란 청년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영화평에서 “시대의 변화가 버거운 사람들도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도 존중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적었다.

김 감독은 “최씨나 이씨처럼 부모님 세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같은 하늘 아래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있느냐면서 영화를 보고 충격받았다는 젊은이도 많았다”고 말했다. “윗세대들은 영화를 보고 눈물을 많이 흘리더라. 자기 시대를 떠나보내는 분들한테 애도의 기회를 드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영화를 보면서 훌륭한 크리스천이고 농부셨던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박정희 이야기만 나오면 아버지 말씀을 자르고 내 주장을 했는데…. 영화가 따뜻했다. 어떤 비난도 없었다”고 말했다.

“나의 믿음은 믿을 만한가?” 김 감독은 “이 영화는 믿음에 대한 영화”라고 말했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박정희 동상이 나온다. 거꾸로 서 있던 동상이 마지막 장면에서는 박근혜의 모습과 겹치면서 바로 서 있는 모습이 물에 비친다. “사물이 물에 비치면 거꾸로 보여야 정상이다. 마지막, 바로 서 있는 박정희 동상 모습은 내가 영화에서 뒤집은 것이다. 바로 서 있다고 생각한 것이 뒤집어진 모습일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들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해봤으면 한다.”

‘박정희 유령’ 완전히 극복 못해

영화는 감독 나름의 세계관과 휴머니티에 몰입한다. 다수의 생각에 부응하고 다수의 감정을 격발하기보다, 소수의 잔잔한 마음을 살피려 한다. 김 감독은 우리 사회가 좀더 유연해지기를 바라는 자신의 마음, 자유인의 마음을 영화에 담았다고 했다. 갈등의 허들을 넘어, 개인의 다양성과 독립성이 커지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의 유령이랄까 그림자, 그늘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 이는 박근혜 탄핵으로 단숨에 사라질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삶과 격리해 외면할 수 있는 괴물도 아니다. 우리가 개혁을 이야기할 때 늘 극복하려는 그 모든 것을 상징하는 이름일 게다.” 그는 ‘촛불 사람’과 ‘태극기 사람’이 지금보다 더 유연하게 대화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는 내년에는 욕 안 먹는 다큐영화를 하나 내놓을 생각이다. 지금 같은 스타일로만 계속 영화를 만들면, 스스로 지겨워서 이 일을 계속하기 어려워질 거란다. “어머니가 대범하신 분인데 내가 평탄치 않은 길을 걸으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 내가 영화를 만들면 친구분들과 같이 보시는데, 마음 졸이지 않고 까르르 웃으실 수 있는 영화 한 편 만들어드리려고 한다. 살짝 힌트를 드리자면, 경북 칠곡 할머니들이 처음 글을 배우면서 세상 모든 게 시로 보이는 ‘문학할매’가 되는 내용이다.”

그가 생각하는 영화 제목은 이다. 김 감독의 자유로운 도전이 기대된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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