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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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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인증’ 말고 ‘ 친환경 달걀 ’

인증제도 허점으로 이름뿐인 친환경 닭장 다수…

비공장식 축산농가 찾아 ‘살충제 달걀 사태’ 해법 묻다
등록 2017-08-22 04:59 수정 2020-05-02 19:28
한살림에 ‘안심대안사료 유정란’으로 달걀을 납품하는 경북 상주 박태호씨 농장의 산란닭들. 깃털에 윤기가 흐른다.

한살림에 ‘안심대안사료 유정란’으로 달걀을 납품하는 경북 상주 박태호씨 농장의 산란닭들. 깃털에 윤기가 흐른다.

“자, 이제 나가거라.”

8월17일 오후 3시. 경북 상주시 외서면 따박골 자연양계농장 주인 이승용(54)씨가 148.5m²(45평) 계사 문을 열었다. 털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미끈한 고려닭(토종 재래닭의 한 종류) 200마리가 우르르 계사 밖으로 달려나갔다. 성큼성큼 뛰는 모습이 타조 같았다. 닭발에서까지 근육이 느껴졌다면 과한 표현일까. 밖으로 나간 닭들은 계사 주변 825m²(250평) 너비의 숲에서 개망초 풀잎을 쪼아먹고, 벌레를 잡아먹었다.

닭들은 여기저기서 날개를 행글라이더처럼 쫙 펼치고 흙바닥을 구르며 흙목욕을 했다. 구덩이를 파고 들어앉기도 했다. 사진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카메라를 피해 달아났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해둬도 카메라가 없는 곳으로 몰려갔다. 활동성이 넘쳐 사진을 찍기 쉽지 않았다. 가로 50cm, 세로 50cm 케이지 안에 닭 5마리가 함께 갇혀 하루 130g 배급되는 사료와 물을 먹고 알만 낳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 속 산란닭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전국 뒤흔든 ‘살충제 달걀’ 대란

살충제 달걀 대란. ‘국민 음식’ 달걀이 ‘국민 우환’이 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8월14일 ‘친환경’ 산란닭 농가를 대상으로 잔류 농약 검사를 하다 농장 2곳에서 닭 등 먹는 가축에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 피프로닐·비펜트린 성분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대형마트가 달걀 판매를 중단했고 작은 빵집들은 달걀을 구하지 못해 문을 닫았다. ‘1일 1달걀’ 하던 도시인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3천 수 이상의 산란닭을 기르는 농가 1239곳을 전수조사한 정부는 8월18일, 친환경 농가 31곳, 일반 농가 18곳 등 모두 49곳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전국 달걀 생산량의 4%에 해당하는 양이다.

살충제 달걀 대란에서 사람들이 더욱 혼란에 빠진 것은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달걀 대부분이 ‘친환경 농가’의 달걀이란 점이다. ‘친환경’ 축산농가로 일컫는 곳은 법에 따라 둘로 나뉜다. 하나는 유기축산 인증 농가, 또 하나는 무항생제 축산 인증 농가다. 산란닭 농가가 유기축산 인증을 받으려면 좁은 케이지에서 닭을 사육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개방 조건에서 사육되며 야외 방목장의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농가들은 모두 ‘무항생제 인증’ 농가다. 무항생제 인증 기준에는 사료에 항생제·성장촉진제 등이 첨가되면 안 되고 축사에 살충제나 농약을 뿌리면 안 된다는 조건은 있지만, 축사 밀도 조건은 따로 없다. ‘친환경 농가’라고 부르지만 사육 밀도와 관련해서는 ‘친환경 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친환경유기식품법)이 정한 기준(마리당 0.22m²)이 아니라 일반 농가에 적용되는 ‘축산법’이 정한 기준(케이지 사육은 0.05m², 평사(땅에서 키우는 것)는 마리당 0.11m²)을 따르는 것이다.

친환경? 종이 한 장 크기에 평생 갇혀
이승용씨가 하루 서너 시간씩 자연 방사하며 키우는 고려닭들. 계사 문을 열면 우르르 달려나가는 닭들은 너무 활동적이어서 사진으로 그 건강한 모습을 담기 조차 힘들다. 이승용씨는 “사람이 욕심을 줄이면 동물도 사람도 모두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이승용씨가 하루 서너 시간씩 자연 방사하며 키우는 고려닭들. 계사 문을 열면 우르르 달려나가는 닭들은 너무 활동적이어서 사진으로 그 건강한 모습을 담기 조차 힘들다. 이승용씨는 “사람이 욕심을 줄이면 동물도 사람도 모두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A4용지 한 장도 안 되는 곳에서 하루 종일 지내며 사료만 배급받는 닭이 낳은 알도 ‘친환경 무항생제 인증’ 달걀이 된다. 닭을 가로 22cm, 세로 22cm의 최소 공간에서 살게 하면서 ‘무항생제 사료’를 준다고 ‘친환경 달걀’ 이름을 붙이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박영석 공주대 교수(특수동물학·한국동물복지학회장)는 “사람을 평생 엘리베이터 한 칸 크기 공간에 하루 종일 불 켜놓고 살라고 하면 미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아무리 ‘무항생제 사료’를 줬다 하더라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한 닭이 낳은 알은 절대 건강한 달걀이 될 수 없다. 그런 달걀을 친환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나 인간 중심적인 용어다”라고 말했다.

결국 건강한 달걀을 위해서라도 축산업에 동물복지 기준을 전면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산란닭 농업 종사자들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경제성 없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제 ‘적자 보지 않고 건강한 달걀을 생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귀농 3년차, 재래닭 농장 운영 2년차인 따박골 초보 농부 이승용씨도 “달걀만으로 생계를 꾸린다는 것은 힘들다”고 말했다. 이씨 농장의 닭은 200마리밖에 되지 않는다. 이 닭들이 하루에 낳는 달갈은 50개 안팎이다. 이번에 가장 먼저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경기도 남양주 농장의 산란닭은 8만 마리, 하루 얻을 수 있는 달걀은 2만5천 개였다.

직접 배합한 사료를 먹이고, 닭장 안 면적만 계산해 닭 1마리당 0.74m² 공간을 확보해주며, 하루 3~4시간씩 산책까지 시켜주는 닭이 낳은 달걀 한 알을 이씨는 800원에 판다. 보통 대형마트에서 유통되는 ‘동물복지 유정란’은 한 알에 400~500원 선이다. 한 달에 이 달걀을 다 판다고 해도 손에 쥐는 돈은 고작 120만원이다. 여기에 한 달 사룟값 30만원을 빼면 답이 안 나온다. 게다가 이씨는 아직 고정 판로를 확보하지 못했고, 그램수가 작은 달걀도 있어 다 팔지는 못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이승용씨는 “내가 욕심을 조금 버리면 된다”고 말했다. “고려닭들은 새와 비슷한 속성이 있어요. 3월에는 알을 많이 낳고 점점 줄다가 다시 봄에 많이 낳는 방식으로 1년 주기로 알 낳는 리듬을 조절하지요. 그래서 봄이 되면 산란율이 올라갑니다. 인위적으로 산란율을 조정하기 위해 욕심부릴 생각은 없어요.” 그는 사육 두수를 300~400마리로 늘려 고정 생산량을 확보하고, 직거래를 늘려 ‘착한 달걀 사업’을 안정화할 계획이다.

‘착한 달걀’로 경제성을 확보한 사례도 있다. 경북 상주 사벌면 원흥2리에서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에 달걀을 납품하는 농부 박태호(53)씨와 친구 2명이 함께 운영하는 ‘천마산농원’이다. 이쪽 농원은 따박골 농장에 비하면 규모가 꽤 크다. 박씨 등은 이곳에서 산란닭 5천 마리를 키운다. 가로 48m, 세로 8m(116평)로 길게 지은 개방형 평사, 즉 닭이 흙을 밟으며 클 수 있는 곳이 6동 있다. 긴 평사를 각각 9.5평 정도로 공간을 나눴다. 이 한 칸에 산란닭 120여 마리와 수탉 7~8마리가 산다. 이렇게 했을 때 닭 1마리가 확보하는 공간은 0.25m²다. 친환경유기식품법이 정한 기준보다 더 넓은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욕심을 조금 버리면 된다”

완전한 개방형 평사 바닥에는 흙과 짚을 깔았다. 닭들에게 푹신한 바닥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박씨 농장의 닭들은 따박골 농장과 달리 닭장 밖을 산책하지는 못하지만, 평사 흙바닥에서 흙목욕을 하며 ‘진드기 떼기’ 작업을 한다. 사료는 비유전자조작(Non-GMO) 옥수수를 사용하고 성장촉진제, 산란촉진제, 성장호르몬제 등을 넣지 않은 ‘안심대안사료’를 쓴다. 일반 사료가 1kg당 370원인 데 반해, 안심대안사료는 720원으로 350원가량 비싸다. 한 달에 5천 마리 닭이 먹는 사료는 25t에 달하기 때문에 한 달 비용으로 따지면 875만원이 더 든다.

‘공장식 축산업’을 하는 보통의 양계농장에 비해 박씨와 닭들의 관계는 훨씬 밀착돼 있다. 박씨가 키우는 닭들은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데려왔다. 마치 아기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아빠의 마음으로 병아리를 기다렸다가 농장으로 데려온 셈이다. 그리고 평사 안에서 병아리가 산란닭이 될 때까지 120일 동안 ‘소출 없이’ 길렀다. 사료만 주는 ‘마이너스 기간’을 감수하는 것은 닭들이 환경에 잘 적응하고 행복하게 지내게 해주기 위해서다. “닭은 환경 변화에 민감하고, 자기 영역과 식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동물이다. 중간에 닭을 데려오면 닭이 죽는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행복한 닭, 착한 달걀

이런 과정을 거쳐 키우는 닭들은 ‘공장식 축산’에 비해 비용이 들지만 위험부담은 훨씬 적다. 박씨는 2008년 양계업을 시작한 이래 닭이 병이나 바이러스에 걸릴까 걱정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살충제, 농약 등을 생각해본 적도 없다. 지난해 여름, 박씨도 이번에 문제가 된 닭 진드기 ‘와구모’를 봤다. 평사 안 닭들이 올라가서 알을 낳는 산란장 한 귀퉁이에 빨간 벌레들이 눈에 띄었다. 와구모였다. 그러나 햇빛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는 박씨의 평사에서 와구모는 금방 줄었다. 닭 몸에 달라붙은 와구모는 닭이 스스로 흙목욕으로 떼어낸다. “세균이나 벌레 등이 없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닭을 병들게 하고 해롭게 할 만큼의 개체 수가 이곳에선 번식할 수 없습니다. 닭이 항상 햇볕을 보고 건강한 먹이를 먹기 때문에 면역력도 높지요.” 박태호씨가 자신 있게 말했다.

행복한 닭은 아파도 금방 낫는다. ‘착한 달걀’을 만들어내는 두 농부는 입을 모았다. “사람이 욕심을 조금 줄이면 사람도 동물도 같이 즐겁다.”

상주(경북)=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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