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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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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불의, 차가운 정의

tvN 드라마 <비밀의 숲>

정의구현을 둘러싼 뻔한 문법이 전복되는 곳
등록 2017-07-13 08:31 수정 2020-05-02 19:28
tvN 드라마 <비밀의 숲> 주인공 이름 시목(視木)은 ‘나무를 본다’는 뜻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흔한 말을 뒤집는 여러 설정이 이 드라마의 백미다. tvN <비밀의 숲> 현장포토

tvN 드라마 <비밀의 숲> 주인공 이름 시목(視木)은 ‘나무를 본다’는 뜻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흔한 말을 뒤집는 여러 설정이 이 드라마의 백미다. tvN <비밀의 숲> 현장포토

tvN 드라마 은 검찰 스폰서 살해사건을 수사하는 추리극이다. 현재까지 희생자는 2명으로 살인사건의 규모가 크거나 엽기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건을 둘러싼 검찰조직의 비리가 미성년자 성상납을 포함할 만큼 추악한데다, 면밀한 추리 과정 묘사가 몰입감을 높인다. 이는 신인으로 믿기지 않는 이수연 작가의 필력과 세련되고 깔끔한 연출, 그리고 주·조연을 망라하는 배우들의 호연이 빚어낸 성과이다.

드라마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주인공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이는 메디컬 드라마 가 서번트증후군으로 사회생활에 장애가 있는 주인공을 내세워 한 차원 높은 의료윤리를 탐문한 것에 비견될 만큼 독특한 장치다.

감정이 부재한 검사

드라마는 시작과 함께 검사 황시목(조승우)의 어린 시절을 보여준다. 소리에 민감하고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신경학적 증상을 앓던 황시목은 뇌수술 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감정 부재는 일종의 장애이지만, 공정한 수사에 집중하는 검사 업무에는 오히려 유리해 보인다. 그의 추리 방식은 독특하다. 대개 사람들은 심증이 가는 대상을 특정한 다음 그 방향으로 수사를 집중해나간다. 또한 의심이 해소되면 대상을 믿으려 한다.

황시목은 심증이나 직관, 상식 등에 휘둘리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합리적인 경우의 수를 모두 돌려본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수사하면 이렇지 않을까. 가령 피살자의 노모를 다그치며 친족 살해를 의심하는 장면은 뜨악하다. 황시목에게 미묘한 감정을 품고 속내를 털어놓으며 협조하겠다고 접근하는 후배 영은수(신혜선) 검사를 아무 감정 없이 내치며 의심에 의심을 거듭한다. 검사장에게 품은 의심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인간미 혹은 공통감각이 결여되어 있으며, 네 편 내 편 없는 그는 지금껏 어떤 드라마에서도 못 본 주인공 모습이다.

감정 없는 주인공은 장르의 신선함을 안긴다. 흔히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 문제로 ‘전문성 없음’을 꼽는다. 메디컬 드라마는 의사들이 연애하는 이야기, 법정 드라마는 법조인들이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우스개처럼, 기존 한국 드라마는 전문성을 살리지 못한 채 로맨스에 함몰됐다. 그러나 황시목은 영화 의 인간형 로봇 데이빗이 연상될 만큼 무색무취 인물로 로맨스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검찰과 경찰 조직 모두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공조하는 한여진(배두나) 형사와 극히 건조한 교류가 잠깐씩 그려질 뿐이다.

요컨대 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을 내세워 기존 한국 드라마의 문법과 절연하고, 전문성 높은 순수 추리물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다. 과연 모든 인물의 행동이 의심스럽고 동시에 이성적으로 설명될 만큼 플롯이 치밀하다. 또한 검경 조직의 얼개와 수사 방식이 충실히 재현돼 장르 애호가들이 즐기던 미국 드라마를 보는 듯한 쾌감이 있다.

한국 장르물에서 로맨스 못지않은 폐단이 감정과잉이다. 영화 등에서 인간미 넘치는 주인공의 파토스가 관객을 흡인했다. 투박한 열정을 지닌 주인공의 맞은편에 냉혈한 사이코패스가 존재했다. 최근 장르물들이 거대한 사회문제를 다루면서, 악은 단순한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냉혈 조직으로 대체됐다. 가령 드라마 나 처럼 가족애와 사회정의를 품은 주인공이 폭풍 같은 파토스로 인간의 감정이 말소된 조직적 악과 맞서는 구도가 자주 등장한다.

시목(視木), 나무를 봐야 숲이 보인다

은 그 구도를 뒤집는다. 오히려 감정 없는 주인공에게 정의구현의 기회가 주어진다. 범인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검찰조직의 해묵은 비리와 얽혀 있다. 그 조직의 일원인 서동재(이준혁) 검사를 보라. 그는 질투, 증오, 복수심, 탐욕, 야망, 두려움 등 오욕칠정에 휩싸였으며 궁지에 몰리면 가족을 내세워 연민을 호소한다. 이것은 중요한 역전이다. 냉혈 조직에 맞서는 인간미 넘치는 영웅 구도가 아니라, 온갖 인간적 감정으로 들끓는 자들의 조직에 맞서는 차갑고 건조한 개인의 구도는 새로운 선악 관념을 일깨운다. 뜨거운 가슴이 정의가 아니며, 그들이 모여 불의의 구조를 쌓을 수 있다.

드라마는 검찰조직의 비리를 정면으로 비춘다. 한두 검사가 뇌물과 상납을 받은 게 아니다. 살해된 박 사장은 “무수히 많은 접대를 했는데 거절한 사람이 딱 두 명”이란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접대는 상시로 이루어진다. 밥 한 끼에서 시작해 미성년자 성상납까지 가는 것은 연속된 수순이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치부를 알고 밀어주고 끌어준다. 또 서로 약점을 덮어주며 감시한다. 검찰과 경찰 사이에 견제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검사장(유재명)과 경찰서장(최병모)이 친구이자 같은 소녀를 상납받은 사실은 두 조직이 쌍둥이임을 말해준다. 이토록 질펀한 비리의 똥밭에서, 황시목 검사와 한여진 형사만 비리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예 감정이 없어서 어울리지 못하거나 여성이라서 추악한 남성연대에 낄 수 없었던 사람만이 뿌리 깊은 적폐와 거리를 둘 수 있었다는 뜻이다.

황 검사와 한 형사는 차분하게 사건을 파고들어 거대한 비리의 몸통을 드러낸다. 검경 조직 안에서 묻힐 것 같은 일은 언론에 터뜨리고, 인권유린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는 타협하거나 무리하게 돌파하지 않고 인권단체를 통해 우회적으로 폭로한다. 이는 섣부른 정의감이나 열정이 아니라, 차갑지만 비타협적 원칙으로 한국 사회의 적폐와 싸워나가는 모범 사례다. 제목이 ‘비밀의 숲’인 드라마에서 주인공 이름이 ‘시목’(視木)인 것도 암시적이다.

흔히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사소한 것에 매몰되어 전체를 놓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하지만 숲 안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숲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을까. 나무를 깊이 관찰하고 나무와 나무의 관계를 측량하는 과정을 통해 숲의 전체 그림이 차츰 채워지는 것 아닐까. 오히려 숲 전체를 보겠다는 성급함으로 진영논리 등 거대담론을 현실에 거칠게 적용하다가 음모론 같은 오류에 빠지는 게 아닐까.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는다는 핀잔이 정작 중요한 문제를 놓치게 할 수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강조하는 ‘뜨거운 형제애’가 오히려 적폐의 본령일지 모른다.

적폐의 본령

‘검찰 비리’라는 적폐를 정조준하는 이 드라마의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 들끓는 감정이나 섣부른 거대담론에 휩쓸리지 말고 당면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어 적폐를 캐내야 한다는 것. 둘째, 적폐의 대표 구조인 타락한 남성연대에서 벗어난 존재들로 과감한 인적 청산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초기 내각의 30%를 여성으로 채우겠다던 공약이 결국 무산됐다. 적폐 청산과 개혁 의지 후퇴를 뜻하는 것이 부디 아니길 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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