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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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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감당

등록 2017-03-16 13:38 수정 2020-05-02 19:28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2014년 중반쯤이었을 게다. 중국 베이징에서 특파원 동료로 만난 한 일본 기자가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지방 출장을 갔다가 역에서 표를 사려고 할 때였어요. 외국인은 역무원에게 여권을 보여줘야 하는데 돌려주지 않는 거예요. 일본인인 걸 확인하더니 대뜸 험악한 인상으로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의 중국명)가 중국 땅이냐, 일본 땅이냐’고 묻는 겁니다. 참 당혹스럽고 난감하기 짝이 없었죠.”

또 다른 일본 기자도 그랬다. “택시 탈 때 한국인이라고 둘러대야 할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일 감정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웠죠.” 당시 중국과 일본은 불거진 센카쿠열도 영토 문제와 일본의 역사 왜곡 탓에 험악한 관계로 치달았다. 중국에선 반일 감정이 불붙었고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그해 11월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시선을 외면했을 정도다.

뭔가에 쫓기듯 들여온 사드

문득 3년 전 기억이 떠오른 것은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격화한 중국과의 갈등을 보면서다. 정부는 마치 뭔가에 쫓기듯 사드 발사대 2기를 국내에 들여왔다. 롯데와 경북 성주 골프장 부지 교환 계약을 체결한 지 불과 일주일 만이다. 논의부터 배치까지 모두 깜깜이었다. 성주 주민들의 반발도, 검증이 입증되지 않은 사드 유효성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 관계는 과거 중국과 일본 관계만큼 급추락했다. 사드가 북한이 아닌 자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으로 여기는 중국은 전방위적 보복 조처를 쏟아낸다. 쉽게 물러설 태세가 아니다. 롯데를 겨냥해 중국 내 롯데마트 체인점들의 영업을 중지시켰고, 전세기 운항과 여행상품 판매 중지 등으로 한국을 압박한다.

중국의 대응은 다분히 거칠고 감정적이다. 그러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박근혜 정부였다. 미국과 물밑에서 사드 배치 논의를 진행하면서도 “배치 요청도, 협상도, 결정도 없다”며 ‘3무 대응 기조’로 일관해 불신을 자초했다. 미국 정가와 언론에서 사드 배치 협의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말이 흘러나오는데도 눈 가리고 아웅 하기는 계속됐다.

황당한 것은 호기롭게 사드를 밀어붙인 정부가 보복 조처엔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보복은 예고돼 있었고, 외국의 선례도 수두룩했다. 관광객 제한과 불매운동은 중국이 일본, 필리핀, 대만 등 주변 나라들과 외교 갈등을 겪을 때마다 내놓던 단골 메뉴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사드 배치가 끝나고 나면 달라질 것” “중국의 대규모 보복은 없을 것”이라며 근거 없는 낙관만 늘어놨다. 응답자의 80% 이상이 ‘중국의 보복 조처에 정부가 대응을 못하고 있다’고 답한 여론조사 결과는 시민들의 당혹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부패와 무능의 대통령이 남긴 것

부패와 무능함으로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던져두고 간 사드의 뒷감당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중국과 거래하던 기업이나 사업자들도 한층 의뭉스러워진 ‘죽의 장막’을 경험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17조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중국에 머무는 교민 80만 명 역시 몇 년 전 재중 일본인들이 마주쳤던 적대적 시선과 불안을 감내해야 한다. 교민 사이에선 벌써 생계와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는 말이 나온다. 주중 한국 공관은 “중국에 거주하거나 방문 중인 한국인들은 신변 안전에 더 유의해달라”고만 한다. 사실상 ‘각자 알아서 조심하라’는 말과 다름없다.

다시 보기 힘들 무능한 대통령은 자리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그가 박아두고 간 대못을 빼려면 시간이 한참 더 걸릴 것 같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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