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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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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던 마음의 근육을

인류의 숙제 ‘소통과 인간’

마음을 바꾸면 소통이 열린다
등록 2017-02-01 13:06 수정 2020-05-02 19:28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해마다 스위스 다보스에선 세계 40여 개국 정상과 각계의 리더들이 모여 그해 세계경제의 향방을 논의하는 세계경제포럼이 열린다. 우리에겐 ‘다보스포럼’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행사는 오래전부터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을 행사해오고 있다. 그런데 올해 주제가 바로 ‘소통과 인간’이라고 한다. 지난해 주제가 ‘제4차 산업혁명’인 것에 비하면 1년 만에 다시 기본 혹은 본질로 돌아온 셈이다.

‘무조건 따르라’ vs ‘왜 그것도 모르지?’

소통과 인간이란 주제가 기업이나 조직의 경영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몇십 년 전부터 줄기차게 강조해온 주제이기 때문이다. 잭 웰치 등에서 시작해, 조직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 리더도 한두 명이 아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그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다보니 이젠 거의 신물이 날 정도다. 그럼에도 이번 다보스포럼의 주제가 ‘소통과 인간’이라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한마디로, 긴 세월 그토록 수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강조해왔음에도 소통과 인간은 여전히 우리 숙제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나에게 가장 빈번하게 상담이나 강의 요청이 들어오는 주제가 ‘소통과 인간’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마 기업이나 조직의 리더십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 역시 그 주제가 아닌가 한다. 그런데 막상 기업이나 조직의 현장에 나가보면 많은 직원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그들은 냉소적으로 말한다.

“소통이오? 그거 윗사람들 말 잘 들으라는 뜻 아닌가요?”

그런 반응을 대할 때마다 ‘윗사람’들이 생각하는 소통과 직원들이 생각하는 소통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실제 위에서 바라는 소통은 ‘내 말 잘 듣고 시키는 일 잘하는 것’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직원들은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위에서 알아주기를 바란다. 일종의 평행선에 놓인 셈이라 둘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윗사람들을 만나보면 소통에 대해 썩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이런 반응을 가장 많이 보인다. “리더가 무슨 인기투표 하는 자리도 아니고, 인간관계니 소통이니 하는 것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신경에 거슬립니다. 무엇보다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없습니다. 그거 아니어도 늘 뇌에 부하가 걸린 느낌이라고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나쁜 소통의 악순환

그런가 하면 어느 임원에게서는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저도 소통이 중요한 걸 모르지 않습니다. 직원들한테 신경 써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사건건 불평불만이나 늘어놓는 친구들을 상대하고 있으면 그런 마음이 싹 달아납니다. 회의하는 자리에서 기껏 의견이라고 내놓는 것이 옆 파트는 회의할 때 샌드위치 주는데 왜 우린 김밥 한 줄로 달랑 때우느냐고 할 때는 정말 지치는 기분입니다.”

“임원회의 뒤 담당 팀장을 불러서 회의 결과를 일일이 설명해주고 팀원들이 해야 할 일을 말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그럼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되묻는 친구들이 꼭 있습니다. 정말 꼭지가 돈다는 말이 적절하겠군요. 그런 형편에 뭘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리더가 있는 한편으로, “내가 아랫사람일 때 역할 모델은 카리스마 넘치고 화끈한 리더였다. 그런데 내가 임원이 되니 왜 소통, 배려, 칭찬만 하라는 거냐? 내가 보고 배운 게 그게 아니니 잘되지도 않고, 이제 와서 뭐야 싶어 억울한 느낌도 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 위에서 나를 쪼는데 내가 무슨 천사도 아니고…”라며 말을 흐리는 리더도 있다. 어떤 임원은 아예 대놓고 화를 내기도 했다. “난 칭찬이란 말도 싫다. 일도 못하는 친구들에게 무슨 칭찬이냐?”

예전에 한 의과대학 선배는 그 위의 선배로부터 매번 야단을 맞았다. 그때마다 우리한테 와서 “내가 매일 당하는 거 너희도 알지? 나도 인간인지라 기분이 매우 나쁘다. 그러니 너희도 나한테서 칭찬이니 배려, 존중 이런 거 기대하지 마라” 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실은 나의 불안이 문제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리더십에서 아무리 인간의 중요성,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현실에선 냉소적 반응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때때로 놀랍도록 변화하는 사례가 없지 않다. 지난번 상담한 어떤 임원은 실수를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군기반장’이라고 스스로 밝힐 정도였다. 당연히 소통이나 배려가 들어설 자리가 있을 리 없었다. 자신은 완벽을 추구한다지만 직원들이 보기에 가차 없는 독불장군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상담하면서, 그렇게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불안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불안에도 이유가 있었다. 상사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너무 크다보니 직원들의 사소한 실수에도 불안을 느끼고, 그것이 군기반장이라는 역할로 연결된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알게 된 그는 변화의 첫걸음으로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직원들의 실수에 너그러워지자 결심하고 실천해나갔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직원들이 사적인 전화를 하거나 고객에게 잘못된(여기서 잘못됐다는 것은 그의 완벽하게 짜인 고객 응대 매뉴얼에서 아주 약간 빗나가는 경우도 해당됐다) 이야기를 하는 것을 지나가다 들으면 그는 당장 해당 직원을 야단쳤다. 이제는 그 직원이 전화를 끊을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상대의 단점보다 장점을 먼저 살펴보기로 결심했다고.

그러자 지금까지 놓치고 있던 상대의 장점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언제부턴가 직원들과의 관계가 좋아졌고, 자신의 기분도 좋아지면서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변화는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쓰지 않고 있던 마음의 근육을 조금씩 써나간 것뿐이다. 우리가 마음의 근육을 쓰지 않는 이유는, 몸의 변화는 조금만 운동해도 바로 드러나지만 마음의 변화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것을 남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니 나만 손해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영향을 미친다. 한마디로 의미를 모르겠다는 마음이 있어서다. 그때마다 남에게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말을 어떤 도구로 쓰는가

언젠가 한 중소기업 대표가 상담이 끝난 뒤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간혹 직원들이 나에게 직접 와서 월급을 올려달라고 할 때가 있다. 지금까지는 그 직원이 나에게 올 때까지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서는 그 친구의 마음 역시 미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은 내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무조건 야단쳤는데, 이제는 그 전의 과정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말은 오로지 내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로만 생각했는데, 남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도구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처럼 내가 말을 어떤 도구로 쓰는지 한번 깊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통’은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화는 입을 통해서 나가고 병도 입을 통해서 들어온다’거나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던가.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이 가장 충실한 해법인 셈이다. 그것을 알기에 이번 다보스포럼에서도 ‘소통과 인간’이란 주제를 택한 게 아닐까 싶다.

양창순 마인드앤컴퍼니 대표·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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