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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피플 파워

등록 2017-01-06 08:48 수정 2020-05-02 19:28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2016년 동아시아 정치 달력은 대만의 정권 교체(1월6일 총통선거)로 시작해 한국의 탄핵소추안 가결(12월9일 국회)로 2016년 동아시아 정치 달력은 대만의 정권 교체(1월6일 총통선거)로 시작해 한국의 탄핵소추안 가결(12월9일 국회)로 끝났다. 독재의 유구한 전통을 잇는 대만 국민당, 한국 새누리당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 세기말(한국 1998년) 세기초(대만 2000년)의 정권 교체까지 두 나라의 현대사는 지독하게 닮았다.

동아시아 전체가 심상치 않다. 2014년 대만의 입법원 점거운동, 2015년 홍콩의 우산혁명 그리고 2016년 한국의 촛불집회가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렸던 곳에서 대규모 저항이 있었다.

동아시아 개발주의 마감될까

규탄의 이름은 달라도, 전통적 지배세력에 대한 염증은 공통된 정조다. 아시아 개발국가에서 고성장은 추억이 되었고, 저임금은 오늘이 되었다. 치솟는 집값은 분노의 지수를 높였다. 대만의 국민당, 한국의 새누리당은 떨어지는 경제성장률을 부동산 부양 정책으로 메우려는 손쉬운 선택을 했다. 청년 세대는 살 만한 집을 살 만한 희망을 잃었다. 고착화된 ‘저임금·고비용’ 사회에서 계급이동의 사다리는 무너졌다. 고성장으로 유지된 아시아 개발주의가 한 순환을 그렇게 마감하고 있다.

동아시아 개발국가만이 아니다. 구지배 세력에 대한 탄핵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버마) 등도 다르지 않았다. 2014년 인도네시아는 개혁적 성향의 조코 위도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2015년 말, 민주화운동가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미얀마 총선에서 압승했다. 그리고 2016년 필리핀 대선에서 전통적 지배체제의 바깥 인물인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당선됐다. 요컨대 민중의 외침은 ‘구지배 세력 너네만 아니면 돼!’ 1980년대 후반 ‘피플 파워’라 불렸던 아시아 민주화의 재현이다.

그러나 순결한 대안은 없다.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대만의 천수이볜, 한국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등 민주화 세력의 정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실망스런 유산을 남겼다. 오히려 민주화 세력도 구지배 체제의 일부가 되었다.

한국과 대만은 다시 전통적 야당에 기대를 걸지만, 이들이 만들 세계가 신세계일 것이란 희망은 크지 않다. 그만큼 기대치도 낮아졌다. ‘안전이라도 했으면’ 하는 기대로 두테르테의 폭력적인 카리스마가 용인된다. ‘극심한 부패라도 없었으면’ 하는 기대가 아시아인이 정권 교체에 거는 최대치로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수치의 미얀마에서도 민주화운동 시절의 약속에 맞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민중이 변화를 원한 이유는, 구지배 세력이 숨 막힐 만큼 나빴기 때문이다.

옛것은 멈췄지만 새것은 오지 않네

역대급 저항은 있어도, 다른 대안은 조직되지 않는다. 그리스의 시리자만큼 급진적이거나 스페인의 포데모스처럼 사회운동적 정당이 조직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요컨대 상황은 ‘이렇게는 못 살겠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강한 오빠의 사이다 같은 매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그 달콤함은 지속 불가능하다. 다시, 옛것은 작동을 멈췄는데 새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도 나타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절망을 산산이 깨는 피플 파워가 문득 나타나기를. ‘차악이냐 최악이냐’를 넘어선 대안이 2017년 아시아의 태양처럼 떠오르기를. 나도 당신처럼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으므로.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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