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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보다 위험한 각자도생

종군 저널리스트의 미국 사회 비판서 <트라이브>
등록 2016-12-09 07:27 수정 2020-05-02 19:28

화두는 ‘생존’이다. 살아남기. 저자 시배스천 영거는 미국의 종군 기자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참전군인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변화를 세밀하게 포착한 다큐멘터리 (Restrepo, 팀 헤더링턴과 공동 연출)로 2011년 선댄스국제영화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런 이력을 더듬으면 그가 어느 전쟁 지역 이야기를 풀어놓으려나 싶지만, 그게 아니다. 미국 사회에서 개인이 살아남는 법, 미국 공동체가 살아남는 법, 인류 생존법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

주장은 간단하다. 공동체의 결속과 연대를 중시하는 ‘트라이브(부족)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역사학 논의와 자신의 경험담을 쉬운 언어로 엮었다. 비문명 예찬론자들의 전통을 잇는 진부한 주장이지만, 흥미로운 논의거리가 포함돼 있다. 책은 건국 초기 백인 문명 사회보다 인디언 부족 사회를 택한 백인들의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참전용사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다루는 부분이 돋보인다. PTSD 당사자이자, 직접 참전용사들을 취재한 내용에 바탕해서다.

“참전용사들이 귀국하면 깨닫게 된다. 국가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칠 용의는 있지만, 어떻게 해야 국가를 위해서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선 자신이 없다는 사실을.” 참전용사들이 겪는 소외감에 대한 이야기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저자는 ‘불편한 진실’을 더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상당수가 전쟁을 “그리워한다”. 전쟁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참혹하고 거대한 폭력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그런 현장을 온몸으로 살아낸 이들이 어째서 전쟁을 그리워할까.

저자는 참전용사들의 일자리, 사회적 인정 문제를 언급하지만 그 영역을 핵심으로 내세우진 않는다. 참전용사 관련 복지 정책 등 영역을 제한해 분석하는 대신, 참전용사들이 전쟁을 그리워하는 요인을 뽑아내 전체 사회 시스템에 대한 성찰의 거울로 들이민다.

참전용사들에게는 동료끼리 ‘결속’해 ‘연대’하고 ‘공동체에 대한 충성’으로 생존을 보장받으며 자존감을 지킬 수 있던 경험이 중요했다. 그러나 정작 ‘지키고 싶었던’ 공동체는 기득권 세력의 탐욕으로 양극화가 좁혀지지 않는다.

예컨대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인 900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고 500만 가정이 보금자리를 잃었다. 은행들은 수천조원에 이르는 국민 혈세를 투입받고도 자기 생존에만 몰두했으며, 어떤 금융기관의 고위직도 기소되지 않았다. 심각한 공동체 파괴 행위가 벌어졌는데도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저자는 인디언 부족 사회나 전쟁 상황이라면 ‘공동체의 이름으로’ 행위자를 적발해 사형에 처했을 법한 일이 현대사회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어지는 데 의문을 제기한다. 개인의 각자도생과 ‘노오오오오력’이 답이라고 여기는 건 개인이나 공동체의 생존에 오히려 해롭다고 주장한다.

책의 단점은 뚜렷하다. 역사학자 조앤나 버크가 영국 언론 북리뷰에서 지적한 것처럼, 전쟁·재난과 인디언 공동체에 대한 ‘미화’, “결코 존재한 적 없었던 세계에 대한 향수”는 문제적 지점이다. 다만 책을 읽고 나면 ‘전쟁 대 평화’라는 이분법은 무너진다. 전쟁터 못지않게 비전쟁터도 평화롭지 않다. 일상의 저항, 일상의 연대를 둘러싼 고민이 이어진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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