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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

등록 2016-12-09 06:26 수정 2020-05-02 19:28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의 목수다. 가난한 동네에 살지만 집은 깨끗하고 훈기가 돈다. 치매를 앓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사진 액자가 집 한쪽에 아늑하게 놓여 있다. 다니엘은 평생 다루던 나무를 매만지며 적적함을 달랜다. 혼자 사는 그에게 일이 있다는 건 경제적, 심리적으로 위안이 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면?

불러도 응답 없는 이름, 국가

영화 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심장마비로 작업대에서 떨어질 뻔한 그는 주치의로부터 절대 안정과 휴식을 권고받는다. 직업을 잃으면 생계에 문제가 생기므로 질병수당을 받기 위해 정부기관 콜센터에 전화한다. 매뉴얼대로 질문을 해대던 담당 직원은 다니엘을 심사에서 탈락시킨다. 항의하려 해도 돌아오는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수화음뿐.

재신청을 하거나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인터넷으로 서류를 신청해야 하는데, 그는 지독한 컴맹이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각자 자기 역할에만 충실한 관공서 직원들은 원칙만 내세운다. 컴퓨터를 못 다루는 신청자를 돕는 직원이 없다면, 마땅히 그는 소외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온라인에 실업급여 신청서를 등록해 복지사와 마주 앉았지만, 좌절은 다시 한번 찾아온다. 그는 구직활동의 증거로 연필로 촘촘하게 기록한 일기장 같은 것을 제출하는데, 담당자는 이를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항의하는 다니엘에게 오히려 벌점을 준다.

한국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해본 사람이라면, 어쩐지 비슷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까. 실업급여 신청자 대부분은 급여를 받는 기간 동안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하고 아무 회사에 무작위로 지원한다. 오로지 구직활동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러다 취업이 되면 당장 실업급여가 끊기므로, 어쩌다 전화가 걸려와도 면접을 못 가겠다고 한다. 이게 뭐하는 걸까. 구직자나, 다른 일에 마음이 있는 이에게 전화를 건 어떤 회사의 인사담당자나, 껍데기뿐인 서류를 확인하는 고용노동부 관계자나 모두 쓸모없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 아닌가.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식 시스템이 낳은 비효율이다.

제도로부터 외면과 좌절을 겪은 다니엘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을 의미한다면, 싱글맘 케이티는 또 어떤가. 막 뉴캐슬로 건너와 삶을 일구려는 케이티는 실업급여 신청 센터에 10분 늦었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이 되어 수당을 받지 못한다. 케이티가 그나마 남은 돈을 긁어 마트에서 아이들 먹을 것을 사고, 생리대를 훔치다 적발되는 장면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자꾸만 발생하는 사각지대를 효율과 비용의 측면에서 외면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복지제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니엘은 질병수당과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한 끝에 결국 포기를 선포한다. 그는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라고 말하며 차라리 고립과 빈곤을 택한다.

그에게 기본소득이 있었더라면

다니엘과 케이티는 왜 질문을 받아야만 할까. 성실한 시민이었을 때 충실하게 낸 세금을, 혹은 나보다 부자인 누군가가 조금 더 많이 낸 세금을 나눠 쓰는 것이 왜 이토록 어려울까.

영화는 특정 계층과 집단에 국가가 주는 수혜가 되어버린 복지제도의 허점과 자본주의의 폐해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모두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생을 영위할 수 있는 소득이 보장되면 어떨까. 만약에 그에게 기본소득이 있었더라면, 영화는 해피엔딩일 수 있었을까.

켄 로치 감독은 올해 이 영화로 칸 황금종려상 수상 뒤 이런 소감을 발표했다.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 더 이상 ‘만약에’가 아닌 다른 세상을, 우리는 곧 만날 수 있을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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