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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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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여성들의 격렬한 목소리

미국 급진 페미니즘의 본령 담은 <페미니즘 선언>
등록 2016-11-29 08:24 수정 2020-05-02 19:28

1960~70년대 미국은 여러 의미로 엄청났다. 인류를 달에 처음 착륙시킨다. 흑인 민권운동의 기운은 최고조. 그 와중에 10여 년 동안 베트남전쟁을 치른다. 반전시위가 끓어오른다. 결국 그 전쟁에서 미국이 사실상 처음으로 진다. 이데올로기와 가치체계의 거대한 전환기. 그런데 이때를 회상할 때 자주 누락되는 흐름이 있다. ‘급진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이다. ‘제2물결 페미니즘’(the second-wave feminism)이 등장한 게 바로 이 시기다.

(기획·번역 한우리, 현실문화 펴냄)은 60~70년대 발표된 미국 급진 페미니즘 선언문 9편을 번역해 묶은 책이다. 급진 페미니스트는 선배 여성주의자의 이론을 물려받아 발전시키는 동시에 이론의 장 밖으로 나아갔다. 브래지어를 풀어 던졌다. 미인대회 폐지를 요구했다. 낙태 사실을 공개 발언했다. 국가의 낙태 허용을 요구했고, 이끌어냈다(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판례). 이 화력은 유럽으로 옮겨붙어 시몬 드 보부아르, 프랑수아즈 사강 등 프랑스 여성 지식인 수백 명이 낙태 허용 촉구 운동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여성을 ‘계급’으로 처음 규정했다. 여성 계급을 억압하는 자로 남성을 지목했다. 연애와 결혼제도에 의문을 제기하고 가정의 철폐(슐라미스 파이어스톤)를 주장하기도 했다. 여성을 억압하는 구조의 뿌리까지 파고들어가 남성 중심의 판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기 위해 ‘행동’하기 시작한 급진 페미니스트는 당시 모나고 극렬한 여성으로 비쳤다.

래디컬(radical)의 어원인 라틴어 라딕스(radix)는 ‘뿌리’를 뜻한다. 선언문도 행동이다. 의견은 선언문(manifesto)에 담길 때 응축된 힘이 붙는다. 그리고 동시대 다른 장소로, 미래의 모든 장소로 전해지기 용이하다.

지금, 미국 급진 페미니즘 운동을 복기해보는 의미를 이 책을 기획하고 번역한 한우리씨에게 물었다. “오늘날 한국 페미니스트, 특히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모습은 60~70년대 여성주의자들과 무척 닮아 있다. 낙태죄 폐지 운동, ‘#○○○ 내 성폭력’ 해시태그로 폭발한 성폭력 경험 공개 발언 등은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과 폭력이 정치적 영역임을 우리 사회에 웅변하고 있다. 급진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구호 중 하나가 이거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메갈리아의 ‘미러링’ 역시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의식화(consciousness-raising)를 통해 주로 쓰던 방법이다. 요즘 한국 여성주의는 운동이 이론을 앞지르는 중이다. 역사에서 확인했듯, 이론이 다시 운동을 따라잡고 더 정교한 분석을 내놓을 것이다. 그런 뒤엔 미국 제2물결 페미니즘처럼 새로운 형태의 운동이 시작된다. 즉, 한국 페미니즘은 이론과 운동의 겸비로 더 풍성하게 성장할 것이다.”

백인뿐 아니라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의 선언문이 고루 실려 당시 페미니즘 지형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각 선언문에 해제가 달렸고, 원문은 들어 있지 않다. 선언문들은 시간순으로 편집되지 않았고, 말미에 ‘60~70년대 미국 페미니즘 운동사’ 연보가 수록됐다.

석진희 디지털뉴스팀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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