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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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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연극으로, 가자 인간으로

인간과 연극을 이해하는 1109개 단상 담은 <야생연극>
등록 2016-07-19 09:46 수정 2020-05-02 19:28

망징패조(亡徵敗兆). 흔히 망조라 한다. 나라꼴이 그렇다. 연극판은 어떨까. “우리 연극은 ‘사람 보는 관점’이 너무 낡은 것은 아닌가? 우리는 연극이라는 엄청난 그릇을 고작 주전부리나 담는 데 쓰고 있는 건 아닌가?” 지은이의 문제의식이다.

지은이는 이상우(65). 1977년 극단 연우무대 창단에 동참. 1995년 극단 차이무 만듦. 현재 차이무 예술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 그가 연출한 작품들이 그를 증거한다.

(나의시간 펴냄). 스무 해 넘게 쓰고 모아온 창작 노트와 독서 편력을 담았다. 40년 연극판 인생의 첫 책. 깊되 무겁지 않고, 웃되 가볍지 않다. 등마루 같은 물음이 책에 흐른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연출 노트가 아니다. 이런 문장들이 숱해도. “‘흐름’은 생명체의 특성. ‘흐름’은 액상. 죽은 공연은 고체이고 덩어리가 됩니다. 죽은 공연은 흐르지 못합니다.” “연극의 속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연극은 ‘실재’가 아니라는 사실. 영화를 ‘착각’의 매직이라면, 연극은 ‘했다 치고’의 매직!”

에세이도 아니다.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경이로움이다. 그것은 참된 과학과 예술의 요람 곁에 서 있는 근본적인 느낌이다.” “고3 때 진학 상담하러 찾아갔던 국어 선생은 이런 조언(?)을 했습니다. ‘비서학과나 가라.’ 당시 비서학과는 여자대학교에만 있었습니다.”(지은이는 서울대 미학과를 다녔다) “전쟁 때 함경도에서 피난 내려오신 할아버지 옛날이야기: ‘개마고원 5월은 천지가 시끄럽다. 여름이 짧아서 한꺼번에 싹을 틔우느라 그런다.’”

독후감인 것도 아니다. “사람의 행동은 뇌 측두엽에서 계속 불 지르라고 충동하고 전두엽에서 말리는 과정에서 생긴다. -올리버 색스, ” “무언가를 믿기 위해서는 ‘증거’야말로 훌륭한 이유가 되는 거란다. 그런데 네가 무언가를 믿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세 가지 있다. 전통, 권위, 계시가 그것이다. 그것들은 증거와 아무 관계도 없는 것들이란다. -리처드 도킨스, ”

반성문만도 아니다. “연극은 억지이고 어색하고 과장이고 재미없다는 선입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말에는 ‘연극하고 있네’라는 말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반성이 필요합니다.” 아포리즘 다발도 아니다. “아름다움에 기준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독재사회에서는 코미디언을 범죄자로 만듭니다.” “‘단순’과 ‘간결’은 다릅니다. ‘단순’은 구조의 문제이고 ‘간결’은 표현의 효율.”

이 책은 연출 노트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며 독후감도 아닐뿐더러 반성문이나 아포리즘 다발도 아니다. 동시에 그 모두인 책이다. 주제는 이것. 인간을 알아야 연극을 알고, 연극을 보면 인간이 보인다. 그러려면 과학과 예술, ‘두 문화’에 섶다리를 놓아야 한다. “과학과 이별한 예술이 예술일까? 과학을 버린 연극이 연극일까?”

망징패조의 대척점에 기운생동(氣韻生動)이 있다. 연극판에 이상우가 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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