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독고탁, 늙지 않는 소년과 자라지 못한 시대

1970~80년대 폭압의 시기 고통·고난 이겨낸 아이콘 그린 ‘마구 투수’의 아버지 이상무 화백, 그라운드를 떠나다
등록 2016-01-14 08:57 수정 2020-05-02 19:28

탁이 아빠, 만화가 이상무 화백이 눈을 감았다. 2014년 한국만화박물관에서 ‘돌아온 독고탁’ 기획전이 열렸고, 화백 스스로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며 창작 의지를 보였던 터라 안타까움은 더욱 크다.

한겨레

한겨레

그의 주인공 독고탁은 1970~80년대 한국 만화의 간판스타이자 그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독고탁은 온갖 모습으로 우리를 울리고 웃겼다. 그는 천방지축의 축구 소년, 고아원에서 뛰쳐나온 반항아, 마구를 뿌려대던 투수였으며, 도시의 뒷골목에서 우리의 신세 한탄을 들어주던 포장마차의 주인이기도 했다. 유신 독재의 냉기가 시간을 거스르며 달려드는 겨울이다. 그 시절 이상무는 독고탁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던 걸까?

이상무 화백의 본명은 박노철로 1946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국민학교 때부터 그림에 흥미를 느꼈지만 가정 형편상 연필로 공책에 낙서하는 재미에 만족했다. 그러다 김천 중앙고 시절, 서울에서 만화가 문하생을 하던 친구가 전학을 왔다. 그의 권유로 에 투고하고 어린이 지면에 잠시 연재할 기회를 얻었다. 이제 목표는 분명해졌고, 졸업 직후 상경해 인기 작가 박기정·박기준 형제의 문하에 들어갔다. 그의 스승들은 등으로 한국 스토리 만화를 개척하고 있었다. 반항과 의지로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는 박기정의 주인공 ‘훈이’는 독고탁의 직계 선배가 된다.

반항과 의지로 극복하는 시대

1965년 박기준의 주도로 잡지 이 창간된다. 소설·만화 등 여러 분야의 인재들이 함께했는데, 훗날 드라마 작가로 인기를 모은 김수현·양인자도 창간 멤버였다. 만화로는 김성환의 , 정운경의 , 박기정의 이 실렸다. 박기준은 이상무라는 필명으로 를 구상하고 그림을 문하생 박노철에게 맡겼다. 머지않아 박노철이 작품의 글과 그림을 모두 맡았고, 이상무는 평생의 필명이 된다.

는 남학생 노미호의 이웃에 예쁜 여학생 주리혜가 이사 오면서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다룬 학원 러브 코미디다. 명랑한 남학생과 새침한 여학생의 대비는 이후 이상무 만화의 전형과도 연결된다. 소년 노미호는 음흉스러운 성격으로 짜릿한 일탈의 재미를 주기도 했다. 여학생 잡지였지만 즐길거리가 부족했던 시대라 남녀 모두의 사랑을 받았고 20년 동안이나 연재됐다. 이 장르의 계승자는 1970년대 으로 인기를 모은 김수정이다.

1970년대 초반, 대본소용 만화 출판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신인 만화가들이 대거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1971년 를 발표한 이상무였다. 부모의 반대에도 야구를 하기 위해 변장을 하고 나타난다는 스토리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매력의 초점은 독고탁의 등장이었다. 이전의 주인공들은 착하지만 평면적이었다. 그런데 이상무는 삐딱하고 자유분방한, 그러니까 조연급에 어울릴 만한 성격을 주인공에게 부여했다. 만화업계의 혹독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특단의 구상이었던 것이다. 이름은 ‘독고’라는 독특한 성에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거센 발음 ‘탁’을 더했다.

’늙지 않는 소년, 이상무’ 누리집

’늙지 않는 소년, 이상무’ 누리집

독고탁은 1975년부터 나온 시리즈로 인기를 더해간다. 이 만화는 장르나 기법으로는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프로야구 만화를 따라갔지만, 주제는 극일의 테마를 다루고 있다. 독고준과 탁은 재일 한국인이다. 탁은 한국인인 걸 자랑스러워하지만, 준은 독고 성이 적힌 문패를 부숴버리고 아버지가 “두만강 푸른 물에” 노래를 듣는 걸 깍두기 냄새가 난다고 타박한다. 준은 이름을 ‘마사오’로 바꾸고 일본 국적을 택해 자이언츠에 입단하고, 탁은 타이거즈에 입단해 맞서 싸운다. 탁이 무작정 야구단을 찾아가 입단시켜달라고 떼쓰는 등 특유의 뻔뻔함이 이때부터 나왔다. 당시로서는 도전적인 장편 연재이기도 했다.

독고탁이 국민 남동생이 된 것은 1976년부터 에 연재한 을 통해서다. 택시 기사를 하는 홀아버지와 오남매의 이야기인데, 어린 탁의 눈으로 여러 연령의 가족들을 관찰하게 한다. 만년 고시생, 복싱 선수를 꿈꾸는 고등학생, 소설가 지망의 여학생…. 그들은 가난 때문에 고통받고 서로에 대한 오해를 만들어간다.

만화는 그들이 고난을 이겨내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특히 봉구가 링에서 쓰러진 뒤 입원해 있을 때, 영아가 자신의 소설을 읽어주는 장면이 많은 이의 눈물샘을 터뜨렸다. 봉구가 자신의 불치병을 모른 채 말한다. “네 소설은 너무 슬프고 어둡기만 하구나. 걸핏하면 울고 죽고….” 그 시절 이런 말이 돌았다. “엄희자는 여자만 울리지만 이상무는 남자와 여자 모두를 울린다.”

남자와 여자 모두를 울린 독고탁
’늙지 않는 소년, 이상무’ 누리집

’늙지 않는 소년, 이상무’ 누리집

이어 에 연재한 (1978)은 축구만화다. 산골에서 천재적인 축구 기술을 익힌 독고탁은 아버지의 죽음 뒤에 서울로 올라온다. 탁은 어린 시절 헤어진 엄마의 국숫집을 찾아내는데, 엄마는 그가 아들이라는 걸 모른다. 탁은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형 준을 질투하고, 준은 탁의 축구 실력을 시기한다. 둘은 국가대표팀에서도 툭탁거리고, 준 때문에 탁이 다리를 다치기도 한다. 결국 둘은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간 뒤 화해하고, 황금의 콤비플레이로 한국 팀을 월드컵 본선 4강에 올려놓는다. 까까중머리가 부끄럽다고 학생모자를 쓰고 다니는 독고탁의 독특한 외모, 그리고 피날레의 골인 장면에서 배경을 깜깜하게 바꾸는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1981년은 프로야구 개막 직전, 선린상고와 경북고로 대표되는 고교야구가 마지막 전설을 만들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역시 전설의 고교야구 만화가 된다. 독고탁은 걸핏하면 고아원을 탈출하는 문제아로, 언젠가 부자가 되어 고아원장의 딸인 숙이와 결혼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이 고아원에 열혈 교사인 옥기호가 들어와 야구를 가르치려 하지만 모두가 시큰둥하다. 고아원장의 아들인 준은 고아들이 야구를 꿈꾸는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러다 탁이 야구를 삶의 탈출구로 여기고, 모자를 사서 나눠준 뒤 야구부를 이끌어간다. 그러나 야구는 천진난만한 공놀이가 아니었다. 신분을 숨기던 봉구가 부잣집으로 돌아간 뒤 숙과 사귀면서 우정도 붕괴된다. 탁은 필사의 승부욕으로 준과 봉구를 이겨낸다. 하지만 마음은 철저히 무너진 상태, 탁은 숙에게 피 묻은 야구공을 들이민 뒤에 사라진다. 1970년대 일본 스포츠 극화의 비극적 세계관을 옮겨온 것이기도 하고, 폭압적 군사정권하에 좌절될 수밖에 없는 청춘의 꿈을 그린 것이기도 하다.

’늙지 않는 소년, 이상무’ 누리집

’늙지 않는 소년, 이상무’ 누리집

이어 1983년부터 나온 는 본격적인 마구만화다. 야구선수를 꿈꾸며 상경한 탁이는 듬직한 포수인 봉구를 만난다. 그런데 봉구의 아버지 조규식은 마구를 개발하다가 타자였던 탁의 아버지를 죽인 존재다. 탁은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조규식의 ‘드라이브 볼’을 이어받아 완성한다. 그는 이것으로 고교야구를 제패하지만 혼혈아 타자인 챠리 킴의 벽에 막힌다. 그래서 새로운 마구, 타석 앞에서 먼지를 일으켜 공이 보이지 않는 ‘더스트 볼’을 개발한다. 이어 프로야구 제7구단인 ‘패거리들’이 탄생하고, 메이저리그 출신 타격 코치인 탱크장과 고교 출신들로만 팀을 꾸린다. 패거리들은 일본 야구의 강자들과 맞서게 되고, 탁은 제3의 마구 ‘바운드 볼’을 만들어낸다. 당시에는 이 3대 마구를 흉내 내며 폼을 잡는 야구 소년들이 적지 않았다.

포장마차 주인·성인 극화 주인공 변신도

1980년대 중반 한국 만화는 활력이 넘쳤다. 만화를 일회적 오락이 아니라 예술작품으로 그려야 한다는 자각도 본격화됐다. 특히 1985년 창간된 이 허영만의 , 김혜린의 , 이희재의 같은 신선한 작품들의 산실이 되었다. 이상무는 여기에 연작을 게재했다. 이제 어른이 된 독고탁은 도시의 유흥가에서 포장마차를 열고 불우한 인생들의 술주정을 들어준다. 항상 주눅 든 채 들어왔다 술의 힘으로 고래고래 소리치고 나가는 만년 계장, 고시생 뒷바라지를 하는 술집 여급, 훔쳐낸 지갑에서 부인이 몸을 팔아 보험 고객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매치기 같은 이들이 그의 손님이다.

’늙지 않는 소년, 이상무’ 누리집

’늙지 않는 소년, 이상무’ 누리집

이상무는 등의 성인 극화를 그리기도 했으나 큰 영광은 누리지 못했다. 그러다 1990년 창간 때 골프 레슨 만화를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등 골프만화를 그렸다. 은 알코올중독 노인과 꼬마 천재의 이야기 속에 전문적인 골프 지식을 녹여내고 있다. 하지만 표지에서부터 여성 골퍼를 관음증의 대상으로 삼는 등 노골적이고 전형적인 성인 극화의 양식을 따라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자신의 유년을 그린 논픽션 만화 를 펴냈다. 그러다 2011년 조갑제 원작의 를 내놓았다. 분명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는 서문에서 말한다. “우리 만화인들은 군사정부에 기진맥진하고 박정희에 절망했습니다.” 그는 과거 여러 인터뷰에서도 만화 심의로 창작의 팔다리를 잘렸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복싱만화도 두 쪽 이상 격투 장면을 그리면 혐오스럽다고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커지게” 된 이후로 박정희를 재평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화는 내용적으론 박정희의 미화에 여념이 없고 형식적으로는 기진맥진하다.

탁이가 살던 시대, 2016년으로 돌아와

1970년대와 군사정권의 시절이 먼저 문화적 추억과 향수로, 이어 시대착오의 정치적 현실로 되돌아오고 있다. 독고탁은 이를 보고 뭐라 할까? 의 탁이는 군대식 뺑뺑이를 돌라고 하면 일부러 명령 이상으로 운동장을 돌았다. 에는 애국심에 호소하며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중단해달라고 하는 기업인이 나온다. 그는 아들이 국회의원에 출마하자 독립운동을 하다 모진 고문을 받았던 할아버지를 찾아 거액의 수표를 전한다. 자신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입막음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의 탁이는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민족의 자존을 버리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마사오’로 개명한 것이 준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명석 대중문화평론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